증평 좌구산 산행

박삿갓의 산행일기 2018. 11. 6. 15:00

좌구산(해발 657m)은 충북 속리산 천황봉(千皇峰)에서 경기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고자 하는 산꾼들에게나 알려졌을 뿐 이름 없는 산골마을 사람들의 터전으로 그 넉넉한 품을 내어주던

때묻지 않은 산이었다. 이처럼 산꾼들과 산골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 그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산은

2003년 8월 30일 증평군이 개청하면서 군의 관심을 받았고, 명상구름다리 개통과 더불어 등산객도 찾고 있다.

 

▶ 산행일시 : 2018. 11. 3 (토요일)  * 산행인원 : 4 名
▶ 산행경로 : 숲 명상의 집 → 명상구름다리 → 자작나무 숲길→ 등산로 →방고개 → 제1쉼터 → 제2쉼터 →

                   좌구산 정상 → 병영체험장 → 바람소리길 → 숲 명상의집 원점 회귀 (*총 산행거리; 약 7.5Km)

▶ 산행시간 : 5시간 20분 (10:20 ~ 15:40)  *점심식사 30분 포함.  
▶ 날씨 : 날씨는 맑지만.. 미세먼지 농도 60~70 수준으로.. 시야가 조금 흐림 (*산행기온; 12~18℃) 
▶ 산행일정 : 2018. 11. 3(토요일) 08:10 영월 출발.. 10:10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솟점말길 107 도착..

 

 10:20 좌구산 숲 명상의 집 앞에 주차하고.. 명상구름다리로 올라간다. *^^

 

 

명상구름다리는 40억을 들여 국내 현수교중 최장인 총연장 230m로, 아찔한 계곡 위에 50m 높이로 작년 7월 개장했다.  

중간 출렁다리(길이 100m)의 아찔함과 좌구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증평군의 랜드마크이다. *^^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하는 좌구산.. 명상구름다리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야 되는데.. ㅎ

 

 

별로.. 흔들리지도 않고..

 

 

내려다보면.. 별로.. 무섭지만.. 명상도 안하고.. 230미터 구름다리를.. 그냥 부지런히 건너간다. ㅎ

 

 

좌구산 (해발 657m)은 한남금북정맥의 최고봉이다. 백두대간상의 속리산에서 갈라져나간 한남금북정맥은

충청북도를 동서로 가르며 북쪽으로 올라가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진다.

60여 km에 걸쳐 뻗어 있는 이 구간은 눈에 띄는 봉우리가 드물고, 대부분의 산 높이가 600m에 미치지 못해,

일부러 찾아갈 만큼 뚜렷한 매력은 없다. 좌구산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볼거리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산세가 힘차고 물이 좋아 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로 인기 있었으며,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으로

숲이 울창해 산길 분위기가 편안한 것이 특징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도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구름다리가 생기며 좌구산이 증평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상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여름 좌구산자연휴양림 지구에 명상구름다리가 개통되며 조용하던 산골이 떠들썩해졌다.

구름다리 덕분에 한적한 산자락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산행지로 좌구산의 이름도 알려지고 있다. ㅎ 

 

 

거북바위정원.. 곳곳에 토끼 모형도 있고.. 토끼와 거북이 놀이터 같다. ㅎ

 

 

거북이는 만나지 못하고.. 바로 자작나무 테마 숲길로 올라간다.

 

 

자작나무 테마숲길 입구 현지 고도.. 333m.. 좌구산 657m.. 쉽게 올라갈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길 옆으로.. 점적관수용 물포대를 달아놓은.. 새로 심은 자작나무가 보이고.. 위쪽으로는 자생 자작나무도 있다.

 

 

자작나무 쉼터로 올라가는데.. 경사가 은근히 심해.. 첨부터 은근히 힘든(?)다. ㅠ,ㅠ

 

 

데크 쉼터.. 앞 산등성 너머로 좌구산천문대가 있다.

 

 

혼자 좌구산 산행을 온.. 산객 한 분을 만나.. 같이 올라오고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위쪽 데크에서는.. 바로 앞으로  좌구산이 펼쳐진다. *^^

 

좌구산(坐龜山)은 앉을 좌(坐)자에 거북 구(龜)자.. 거북이가 앉아있는 모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래는 거북 구(龜) 대신 개 구(狗)자.. 좌구산(坐狗山)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그 이유는 전에 이 지역에는 민가가 없었고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면 개 짖는 소리가 울리는 곳이라고 해서 좌구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개 구(狗)자를 쓴 좌구산(坐狗山)의 이름 유래에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예전 조선 광해군 시절..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 은거하고 있던 김치(金緻)라는 인물이 있었다.

김치는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인조반정을 모의하고 있었다. 이때 좌구산에서

개가 짖어대는 3번의 소리에 깨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거처를 옮겼고 변고를 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능양군을 옹립하여 인조반정을 성공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개가 3번 짖었던 산은 좌구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 자료 참조)

 

 거북이가 앉아있는 형상이라는데.. 토끼 눈을 뜨고 보아도 거북이는 보이지 않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ㅎ

 

 

오른쪽 산등성 너머로는.. 좌구산천문대가 모습을 보인다. *^^

 

 

능선으로 올라가려니 길이 헷갈려.. 지도까지 꺼내 놓고.. 좀 전에 만났던 산객 분이.. 천문대 쪽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ㅎ 

 

 

11:33 휴양림(황토방)에서 올라오는.. 천문대(좌구산)길 이정표가 보인다. *^^

 

 

11:38 능선길.. 이제야 등산로를 제대로 찾은 것 같다. ㅎ

 

 

밤고개로 내려가는.. 삼거리 이정표 (↙밤고개 0.87Km, 휴양림 0.71Km↘, 좌구정 1.76Km→)

 

 

갈잎이 수북이 깔린 능선길.. 조금 앞서가더니.. 언제 한 장 찍었다. ㅎ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느낀다. *^^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고..

 

 

이정표가 밤고개.. 방고개.. ?  (↙방고개(좌구산천문대) 0.54Km)

 

 

떨어진 밤송이도 한, 두 개 보이는..  경사진 길에 마른 갈잎이 수북이 쌓여 엄청 미끄럽다. ㅠ,ㅠ.

 

 

벤치가 또 있어.. 또 쉬어간다.

 

 

방고개(좌구산천문대).. 이제 조금 남았다. ㅎ

 

 

느림보유아숲 쉼터를 지나..

 

 

12:30 방고개 도착..  안내도를 보아도.. 현위치가.. 밤고개인지? 방고개인지?

 

 

증평 좌구산천문대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356mm 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다른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천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

 

 

괴산군 증평읍 율리의 부점촌과 청주시 미원면 화원리의 삼흥을 잇는 방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지금은 임도가 잘 닦여 있고 원래의 고갯길은 아니지만 포장도로가 생겨 승용차 통행이 가능하지만

원래는 율치(栗峙, 해발 360m)라고 부르는 '밤고개'였다. 이곳 밤고개 밑에는 밤티라는 마을이 있는데

인조반정 때의 공신인 김치의 후손들이 정착하면서 이룬 마을이라고 한다.

김치의 아들인 백곡 김득신 문학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뒷산인 좌구산에 휴양림이 생기고

천문대도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명소가 되었다.

(*충청일보(2017, 7, 19) 충청지방 산책 오피니언 >기고 기사 내용 참조) 

 

방고개에서.. 좌구산천문대 입구 좌측에 있는 계단길로.. 좌구산으로 올라간다. (좌구산 2.7Km↗)

 

 

증평좌구산휴양랜드 내에 위치한 증평좌구산천문대는 주민 및 청소년들에게 천체관측기회제공 및

과학문화보급을 위해 건립되었으며, 국내 최대 356mm 굴절망원경 및 천체관측장비를 갖추고 있고,

타 천문대에 비해 깨끗한 밤하늘을 간직하고 있어 은하수 및 Deepsky 관측이 가능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증평좌구산천문대 (과학관 여행 길라잡이)

 

 

천문대를 지나면.. 경사 심한 계단길.. 휴양림이라 트레킹 코스인 줄 알고 따라왔더니.. 힘들다며 투덜이다. ㅠ,ㅠ

 

 

능선 위로 올라서니.. 대체로 길이 좋은 편이다.

 

 

13:00 제1쉼터 도착.. 산길 곳곳에 벤치가 있어.. 좋다 ㅎ

 

 

제1쉼터 이정표 (←밤고개 -0.98km, ↙주차장 1.72Km, 좌구산정상 1.25Km→)

 

 

점심 식사.. 일행 두 사람은.. 김밥 한 줄 반씩.. 우리는 두부, 김, 깻잎장아찌, 생채 등..

등 뒤에서 따뜻한 햇살이 비치니..  옆에 놓아둔 배낭 온도계가.. 23℃까지 올라갔다. *^^

 

 

13:30 점심 식사를 마치고.. 또 험한 산길.. 행군... ㅠ,ㅠ

 

 

13:48 제2쉼터.. 또.. 벤치에 앉아.. 또.. 쉬어 간다. ㅎ

 

 

제2쉼터 이정표 (↙주차장 1.44km, 밤고개 1.24km↘).. 자작나무 쉼터에서 만났던 산객이.. 정상까지 갔다가 벌써 내려온다. 

 

 

14:00 경사 심한 산길에.. 마른 갈잎이 수북하여 미끄럽고.. 오늘 괜히 따라왔다며.. 뒤처진다.

 

 

아직 감기 기운이 있어.. 영 못 올라온다.

 

 

약 10분 이상 이어지는 밧줄길에.. 지난 주 지리산 칠선계곡-천왕봉 산행 시 쌓인 피로가 겹쳐..  ㅠ,ㅠ

 

 

좌구산 4지점.. 누군가 번호판에.. 해발 600m로 적어놓았다. (*스마트폰 고도계 앱 598m)

 

 

14:20 좌구산 4지점에서.. 조금 위에 있는 봉우리를.. 정상인 줄 알고 올라왔는데.. 정상이 아니라며.. 다음 봉우리를 살펴본다.  

 

 

여기는 좌구산 5지점.. 돌탑봉.. 나뭇가지 틈새로 보이는.. 다음 봉우리가 좌구산 정상이다

 

 

돌탑봉에서 조금 내려와.. 정상 직전 이정표 (↙바람소리길 0.93Km, 좌구산천문대 2.60Km, 좌구산정상 0.1Km↗)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다.. 힘내어.. 정상으로 올라간다.

 

 

(앉을 좌) (거북 구)   2018 10.17 증평군   정상표지석이.. 한 달도 채 안 된.. 새 표지석이다. *^^

*전에는 「한남금북정맥 최고봉 좌구산(坐龜山) 해발 657m」 오석에 새겨진 작은 표지석이 있었다.

 

 

구형 디카.. 배터리가 오전부터 방전되어.. 서로 스마트폰으로 찍어주다 보니.. 사진 분위기가 영 다르다. *^^

 

 

증평군은 울릉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작은 군으로, 괴산군의 일부였던 증평은 2003년 증평군으로 승격되었다.

 

* 증평군은 2003년 8월 30일 괴산군에서 분리해 읍에서 군으로 승격됐다.

  면적 81.84㎦, 인구 3만3472명, 1읍 1면으로 된 초미니 군이다. (*증평군 참조)

 

 

정상표지석 바로 옆에 삼각점이 있고.. 좌구산정상 이정표가 또 있다. *방고개 이정표하고 거리가 다르고..? 전망은.. 그렇다. *^^

 

 

14:38 좌구산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에서 100m 내려와.. 바람소리길로 내려가는데.. 등산로가 좋은 편이다.

 

 

커다란 산뽕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지만.. 이 정도쯤이야..

 

 

낙엽도 푹신푹신.. 이리로 내려오길 잘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한다.

 

 

골을 따라 내려오다.. "동맥이 지게골"  먹고살기 힘들 때의 이야기에.. 마음이 짠하다. ㅠ,ㅠ

 

 

 

병영체험장을 지나..

 

 

15:22 임도같은 길로.. 내려선다.

 

 

비포장길에 낙엽이 쌓여 있는.. 이 길이 바람소리길인가? 낙엽소리길인가?

 

 

제2쉼터에서 내려오는 이정표.. 이 코스로 내려왔으면.. 경사진 밧줄길에.. 무릎 좀 아팠을 것 같다.  

 

 

길 아래로는.. 좌구산썰매장이 보인다. *^^

 

 

이런 길이 트레킹 코스라고.. 힘든 산길보다 너무 좋다며.. 여유롭게 걷는다. ㅎ

 

 

길 완쪽 편으로.. 또 보이는 이정표.. 제1쉼터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 같다.

 

 

이제 다 왔나 보다.. 명상구름다리가 보인다.

 

 

좌측 계단길은.. 좌구산천문대 쪽으로 올라가는 길 같다. *^^

 

 

15:40 숲 명상의 집으로 내려서.. 산행을 완료한다.

 

 

 

명상구름다리 위로.. 구름은 보이지 않고.. 다리만 보인다. *^^* 

 

 

증평 좌구산 자연휴양림은 한남금북정맥 최고봉 좌구산(657m)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예부터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가 앉아있는 형상인 좌구산은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휴양림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근접한 거리에 있는 삼기저수기는 안개 낀 날에 좌구산과 함께 운치를 더한다. 또한 좌구산 휴양림은

다양한 체험시설(숲 명상의 집, 명상구름다리, 좌구산 천문대 등) 및 산림레포츠시설(좌구산 줄타기, 좌구산 썰매장,

숲속모험시설) 등 다양한 시설물이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증평군청 홈페이지 참조)

 

좌구산 하산 후.. 안내도를 다시 보아도.. 여러 코스들이 마치 미로 같아.. 등산로 찾기가.. 영 헷갈린다. *^^

 

 

산행을 마치고.. 명상의 집에서 방고개를 넘어 비포장길(포장 예정)로.. 화원리로 내려가니.. 초정약수가 11Km 남짓.. ㅎ

 

16:40~ 18:10 초정리 초정약수

 

초정약수는 세계 3대 광천수로.. 세종대왕께서 한글 창제 작업을 하던 중 눈병이 나자 초정약수를 찾아( 1444년 3월)

행궁을 짓고 안질을 치료했다고 한다. (*현재 초정약수 원탕 인근에.. 세종대왕 초정행궁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세종대왕이 치료하던 곳, 초정약수 *

청주에서 동북쪽으로 약16km 지점에 위치한 초정약수는 세계 3대 광천 중의 하나로

약6백년전에 발견되었다. 동국여지승람 제15권과 왕조실록 제 103권에 그 유래가 밝혀져 있다.

매콤하고 차가운 천연 탄산수가 용출하는 영천으로 일찍부터 전국에 널리 알려졌으며,

또한 세종대왕이 행차하여 60일간 이곳에 머무르며 안질을 치료한 바 있는 유서 깊은 약수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초정약수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세계광천학회에서 미국의 샤스타 광천, 영국의 나포라나스 광천과 함께 세계 3대 광천수(鑛泉水)로 손꼽히는 초정약수는

 약 600여 년 전에 발견된 광천구로, '광천수(鑛泉水)"라 함은 땅에서 솟아나는 미네랄워터 중에서 온도가 25℃ 이하면

 '냉천'이라고 하는데, 초정약수는 이 '냉천'에 해당된다. *또한, 성분에 따라 탄산천, 알칼리천, 산성천, 등으로 구분된다.

 

 

냉천 [ 冷泉 , cold spring ]  
다량의 고형물질, 가스상의 물질 또는 특수한 물질을 함유하고 천온(泉溫)이 20~25℃ 이하인 지중(地中)으로부터의

용출수(湧出水)를 말한다. 천온(泉溫)의 한계 25℃는 우리나라 온천법(1981, 3. 2, 법률 3377호)의 규정이며,

영국과 독일에서는 20℃, 미국에서는 21.1℃이다. 이 규정 이상의 천온을 가진 용출수는 온천으로 구분된다.

이 분류는 편의적인 것으로 지하수의 용천(湧泉)도 냉천이라고 할 때가 있다. 고형물질의 함유량이

리터당 1g 이상일 때와 그 이하 경우에도 방사성 물질을 규정 이상 함유할 때는 광천(鑛泉)이라 한다.

냉천중에는 지하수가 광화(鑛化)된 것도 존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냉천 [冷泉, cold spring] (자연지리학사전, 2006. 5. 25., 한울아카데미)

 

온천 [hot spring, 溫泉]

한국에서는 25℃ 이상으로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것을 온천으로 규정하며 지하수의 수온보다 낮은 것은

냉천(冷泉)이라고 한다.

또한 수온과는 관계없이 무기물질 또는 가스성분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는 것을 광천(鑛泉)이라 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온천의 한계온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극한지방에서는 아주 저온의 온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하여 편의상 각국에서는 자기 나라의 기온을 고려하여 적당한 한계온도를 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는 20℃ 이상, 미국에서는 21.1℃(70°F) 이상,

한국과 일본·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25℃ 이상을 온천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온천의 정의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온천법에서는 천원(泉源)에서의 온도가 25℃ 이상이거나, 온천의 용해물질의 한계값에 표시된

특정 물질 중 1종 이상을 규정량 이상 함유하는 물을 가리킨다. 즉, 법규상으로 25℃ 이상의 용천(湧泉)은

물 이외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지 않아도 온천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물 이외의 특정 성분이

그 규정량 이상 함유하고 있으면 25℃ 미만이라도 광천으로 온천법이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온천을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25℃ 이상의 온수로 그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지 아니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온천법(1981.3.2, 법률 3377호), 온천법시행령(1981.6.18, 대통령령 10354호)]. 온천학상으로 넓은 뜻의 온천은

물리적 ·화학적으로 보통의 물과는 성질이 다른 천연의 특수한 물이 지중에서 지표로 나오는 현상이다.

이 물을 온천수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온천 [hot spring, 溫泉] (두산백과)

 

초정리 인근 어느 중국집에서.. 오늘도 탕수육에. 짬뽕 한 그릇.. 맥주도 한 잔하고..  21:00경 영월 도착..

 

 

 

 

※ 참고 사항 (인터넷 검색 자료)

 

좌구산 [坐龜山, Jwagusan]

좌구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데,

'좌귀산'이라고도 읽는다. 또한, 한자 표기를 달리해 '좌구산(坐狗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은거해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김치(金緻)가 좌구산에서 개가 세 번 크게 짖어대는

소리에 깨어 몸을 피함으로써 훗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좌구산 [坐龜山, Jwagusan]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2010. 2., 국토지리정보원)

 

*龜 (땅 이름 구,거북 귀,터질 균) 1. 땅의 이름 2. 나라의 이름 a. 거북(거북목의 동물 총칭) (귀) (*한자사전 참조)

 

좌구산자연휴양림

증평 좌구산자연휴양림은 한남금북정맥 최고봉 좌구산(657m)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예부터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가 앉아있는 형상인 좌구산은 휴양을 목적으로 하는 휴양림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근접한 거리에 있는 삼기저수지는 안개 낀 날에 좌구산과 함께 운치를 더한다.

휴양림을 중심으로 휴양촌, 삼기저수지, 산림욕장, MTB코스 등산로 등의 시설들이 연계되어 있어

문화체험, 심신단련, 휴양을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종합 휴양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좌구산자연휴양림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아래 종합안내도는 클릭하면 좀 더 큰 사이즈로 볼 스 있음.

 

 

좌구산(해발 657m)은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최고봉으로 산의 모양이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인

거북이(龜)가 앉아(坐)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좌구산(坐龜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좌구산은 증평군의 최고봉으로 증평·청원·괴산 등 3개 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좌구산 자락에는

삼기(三岐)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삼기(三岐)는 세 개의 갈림길이란 뜻으로 저수지 인근에

증평·청원·괴산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이 있다고 해서 삼기저수지라 불렸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북 증평군 -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는 녹색도시 (신택리지)

 

 

좌구산  높이 : 657.8m  위치 : 충북 증평군
충북 괴산군과 청원군에 걸쳐 있는 좌구산은 증평읍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아 등산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전체적으로 수림이 우거진 육산으로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알맞은 산행지이며 장마끝무렵에는 온 산에 버섯이 지천으로 피어 등산객들의 손을 심심치 않게 한다.

 

""앉을 ´좌(坐)´자 거북 ´구(龜)´자. 거북이가 앉아 있는 형국이다 해서 좌구산이라 쓴다. 그런데 원래는 그게 좌구산(坐狗山)이 아니고 앉을 ´좌(坐)´자 개 ´구(拘)´자. 좌구산(坐狗山)이었다고 하는데, 왜 그런고 하니 전에는 민가가 없이 산밖에 없었는데, 그 산에 올라가면 개짖는 소리가 났다고 하여 좌구산(坐狗山)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풍수적으로 말해서 좌구산(坐狗山)으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증평에서 청안을 거쳐 청천쪽으로 가다보면 칠보산과 좌구산의 중간지점 쯤 되는 곳에서 봉천사 입구인 고개가 질마재 고개다. 이 고개를 넘어 조금 가면 봉씨가 난을 피해 살았다하여 봉천리라고 이름 지은 마을이 있다.

 

1106년(고려 예종 1년) 어느날, 경기도 강화군 하첩면 장정리 하음산 기슭 연못가에 상서로운 광채가 비치더니 이어서 비가 내리쳤다. 물을 길러 왔던 한 노파가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못 수면에 돌로 만든 상자가 떠 있었고, 그 상자 속에는 귀여운 사내 아이가 들어 있었다.

''노파는 이 아기를 궁중에 바쳤고 왕은 기이하게 여겨 왕실에서 키우도록 했다. 노파가 봉헌했다 하여 성을 봉(奉)이라 하고 장래 국가를 도울 인재라 하여 이름을 우(佑)라 붙인 '봉우'를 시조로 하는 하음 봉씨들의후손들은 그 후 많은 인재들이 등용됐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른 다음해인 1457년 성삼문, 박팽년 등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동료인 김질의 배신으로 발각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들은 박팽년의 매부 봉여해는 세조를 살해하기 위해 칼을 차고 어전으로 가던 도중 의금부에 붙잡혀 화를 당했다. 당시 그의 벼슬은 궁중요리를 검사하는 사옹원별좌였기에 어전 출입이 쉬웠다 한다.

봉여해는 어려서 재주가 뛰어나 박팽년, 성삼문 등과 함께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문하에서 수업, 학문을 떨쳤고 박중림의 사위가 됐다.

봉여해가 박팽년과 함께 단종 복위 모의에 참여했다가 화를 당한후 세조 이후에는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 거의 없고, 화를 면하기 위해 전국으로 흩어지던 중 일부가 이곳에서 살게 됐다 한다.

 

외봉천에서 서쪽으로 약 1km쯤 떨어진 망월산(해발 459m : 망탑봉)이 있어 이곳에서 보면 미호평야와 증평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이곳에 사는 봉씨들은 강화도를 쳐다보며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난을 피하는 사람으로 감시의 역할을 한 산이기도 하다.

 

망탑봉에서 보면 군사적 요충지인 두타산성, 이성산성, 구녀산성과 북이면 부연, 토성, 광암의 경계가 되는 낭비성, 삼보산맥들이 한눈에 보여 군사적 요충지로 적진의 활동을 탐색하고 감시하는데 적지임을 알 수가 있다.

남봉 김치(金緻 : 1577~1625)는 1597년(선조30)에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 설서(設書 : 세자시강원의 정7품)를 거쳐 1608년에 조정 관리들의 휴가연수를 담당하는 사가독서를 담당했다.

광해군 때 사북시정, 이조참의, 동부승지, 대사간을 거쳐 홍문관교리, 부제학등을 역임하고 정3품 병조참지에 올랐으나 독직사건으로 파면됐다.

이이첨의 심복으로 이조에 있으면서 흉한 일을 벌였으며 대사간이돼서는 영창대군 살해음모를 반대하는 정온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충남 병천면 백전리에서 괴산 능촌으로 이사해 살았다고 전하는데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차에 인조반정이 일어난 1623년에 자기의 관상을 보니 그해에 죽게 됐는지라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변성을 만나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인조반정이 있을 무렵 심기원과 사전에 내통해 벼슬길에 다시 올랐으나 대북파로 몰려 유배를 당했다.

광해군은 즉위한 후 정세변화에 따라서 왕위를 위협할 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과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등 학정을일삼으므로 인헌황후(좌찬성 구사맹의 딸)의 아들인 종(倧, 인조 : 1595-1637)은 조정에 대북파와 견원지간인 서인 일파와 경기 · 충청지방의 관리들을 포섭해 반정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다.

인조가 반정을 일으키기 전 어느 여름날 심기원이 그를 찾아와서 능양군(인조)의 사주를 봐 달라고 하기에 이곳 율리의 물치폭포에서 목욕한 후 소반에 보를 놓고 점을 쳐 보니 임금이 될 쾌인지라 이를 극비로 하고 반정을 일으킬 날을 잡아 주는데 천파일로 잡아주고 심기원의 심복이 될 것을 다짐한다.

 

""""""""그가 밀담을 마치고 오랜 노독으로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난데없이 한 밤중에 동편 산에서 개가 짓는 소리가 3번 들리므로 그는 잠에서 벌떡 일어나 "이 앞산이 무슨 산이냐?" 하고 물으니 그의 심복 하나가 대답하기를 "이 산은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좌구산이라고 합니다"하니 점술을 연구해 천문에 밝고, 풍수에 조예가 있는 백곡 김치는 말하기를 "아니다 저곳에서 개가 3번 짖었으니 저 산은 좌구산이 틀림없다"하면서 "누가 염탐을 하러 오는 것이 틀림없으니, 이곳을 빨리 떠나자"하고 서둘러 모두 이곳을 떠나므로 난을 무사히 피했다고 한다.

그 후 인조는 1623년 3월 13일 밤에 이귀, 심기원, 최명길, 김자점 등의 병력 700여명과 능양군이 이끄는 친병과 장단부사 이서의 병력 700여명이 합세해 인조 반정을 성공시킨다.

 

김치는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다시 유배에서 풀려나 동래부사를 거쳐 1625년(인조3년)에 경상도 관찰사가 됐으나 그 해에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그가 죽은 후 시신을 괴산 능촌으로 모시려했으나 상여가 이곳 율리재를 넘을 때 명정이 바람에 날려 현재의 그의 산소 자리에 앉으므로 그 곳에 안장했다고 그 후 후손들이 이 곳에 와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그가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닦으며 지낸 보천에서 율리에 이른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심고을 그의 호로 정했을 가능성과 유배를 당할 때는 근처에, 산소의 우연성으로 미루어 이 곳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상 좌구산 관련 내용 : 한국의 산하(www.koreasanha.net) > 좌구산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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