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계곡 겨울 트레킹

박삿갓의 산행일기 2019. 2. 19. 13:20

무릉계곡 겨울 트레킹.. 겨우내 눈도 별로 안오고.. 산행을 못해 갑갑하여.. 무릉계곡으로 트레킹이다.

 

무릉계곡은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2008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7호로 지정된 곳으로,
"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다"하며,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도 불린다.

 

▶ 트레킹 일시 : 2019. 2. 16(토요일),   동행인원: 4 명 
▶ 트레킹 경로 : 무릉계곡관리사무소 -1..7Km→ 관음암 -1.1Km→ 하늘문 -0.3Km→ 장군바위 갈림길

                       -0.3Km→ 쌍폭포, 용추폭포 -약 2.6Km→ 무릉계곡관리사무소  (*총거리 : 약 6Km)

▶ 트레킹 시간 : 4 시간 10분 (11:10 ~ 15:20)  *점심 식사 시간 30분 포함
▶ 날씨 : 전날 미세 먼지도 사라지고, 공기가 맑아져 하늘이 파랗게 개던 날 (산행 기온 : 2~6℃)

▶ 트레킹 일정 : 09:00 영월 출발.. 사북이 가까워지자.. 응달에는 눈이 하얗게 쌓였고 눈발도 날린다.

 

 

11:10 무릉계곡관리사무소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입장료는 전원(경로, 국가유공자 해당) 무료.. ㅎ

(*입장료 :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  *면제 : 경로, 국가유공자, 장애인, 동해시민)

 

 

무릉계곡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정자가 ‘금란정(金蘭亭)’이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향교가 폐교되자

이 고장의 유림 선비들이 나라 잃은 수치와 울분을 달래기 위해 금란계(金蘭契)를 만들고 정각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훼방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서생계원과 자손들이 선인의 뜻을 받들어

처음 북평동 단봉 석경지의 계남 심지황 생가 근처에 건립한 정자로, 1958년에 무릉계곡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금란정에는 당시 계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으며, 근처인 무릉반석에도 계원들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다.

 

 

금강사군첩 - 무릉계 [金剛四郡帖 - 武陵溪] - 김홍도 作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은 김홍도(金弘道)가 1788년(정조 12) 정조의 어명으로 그린 화첩으로,

김홍도가 44세 때 김응환(金應煥)과 함께 다닌 금강산 및 관동8경 지역을 그린 것이다.

 

 

두타산 삼화사(頭陀山 三和寺) 일주문.. 두타는 불교 용어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사찰의 첫 번째 관문인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나란한 두 개의 기둥만으로 지붕을 지탱하며 서 있다.

이렇게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一心)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무릉계곡은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릴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곳곳에 기암괴석들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무릉반석, 학소대, 병풍바위,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 문간재등 빼어난 경승지와
임진왜란 시 격전지로 이름난 두타산성을 비롯한 삼화사, 금란정과 같은 많은 유적지가 남겨져 있는 곳이다.

 

 

11:20 삼화사(三和寺)를 지나는데.. 지난해 여름에 만났던.. 12지신상(十二支神像)이 반기는 듯이 서있다.  

12지신상은 십이지(十二支)를 상징하는 수면인신상(獸面人身像)으로 얼굴은 동물, 몸은 사람의 형상이다.

천왕문 앞쪽에 있는 12지신상은 인천공항 동편 입국장에 전시되었던 것을 2015년 9월경 현 위치로 옮겼다.

 

 

삼화사로 들어가는 천왕문(天王門)..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을 거쳐야 사찰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청정도량()을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여,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는 수행자의 마음속에 깃든 번뇌와 좌절을 없애고 정진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11:28 갈림길에서 관음암으로 올라간다. (↖관음암 1.1Km, 무릉계곡관리사무소 0.6Km→)

 

 

오랜만에 산길을 걸으니.. 은근히 힘든 코스다.  

 

 

두타산(頭陀山, 해발 1,353m)은 예로부터 삼척 지방의 영적인 모산(母山)으로 숭상되었다.

 

 

 

골짜기마다 잔설(殘雪)이 남아 있는 두타산(頭陀山)이 우람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첩첩산중(疊疊山中)으로.. 깊숙이 이어진 계곡.. 바위 틈에 자란 소나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치다. *^^

 

 

12:22 관음암(觀音庵)에 이른다.

 

 

조계종 4교구본사 월정사 말사 삼화사의 산내암자인 관음암은 지조암(指祖庵)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설명에 따르면 ‘관음암중건모연기’엔 고려 태조 1년인 918년에 용비(龍飛)대사가 창건해

오랫동안 지조암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단다.

그런데 잘못된 해석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고. 용비는 임금이 등극하는 일을 뜻해서다. 용비라는 말이 등장했으니,

관음암이 창건 때부터 왕실의 주목을 받았다는 정도로 미루어 짐작해봄직 하다.

해서 태조 4년, 즉 921년 창건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왕실 지원으로 중건도 됐다고 한다.

 

태조 왕건 즉위 20년인 934년, 통일 전쟁으로 수많은 살생을 저질렀던 왕은 민심을 다독이고자 했다.

신라시대 고찰 삼공암(三公庵)을 삼화사(三和寺)로 바꾸고 노비와 밭을 하사했다. 후삼국을 통일했다지만

서로 칼을 겨눴던 마음은 쉽게 치유할 수 없었을 게다. 그리고 죽어간 생명붙이들의 원망을 어찌 다 달래랴.

“셋이 조화를 이룬다”는 ‘삼화(三和)’라는 말에 왕건의 깊은 참회와 백성의 안녕을 담았으리라.

삼화사는 날로 번창해 8개 암자를 뒀고, 이 때 관음암이 중건됐다는 얘기다.

 

관음암은 부침을 겪었다. 조선 정조 17년인 1793년 화마로 소실된 암자를 당시 삼척부사였던 윤청의 주선으로 재건했으나,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 때 연기와 함께 잿더미가 됐다. 1959년인지 1956년인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다시 중건되면서

관음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작은 암자에 모셔진 관세음보살님이 중생을 자비로 품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관음암에 걸음해서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두타산 관음암 ( 2013.06.24 15)

 

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입고 있는 인법당(人法堂)은.. 처마 아래에 관음암(觀音庵)의 편액을 달고있다.

인법당은 큰 법당이 없는 절에서 승려가 머무르는 곳에 불상을 함께 봉안한 전각, 혹은 승방을 가리킨다.

 

관음(觀音)은 관세음보살()의 준말이며,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은 괴로울 때 그의 이름을 정성으로 외면 음성을 듣고 구제하여 주신다는 보살(菩薩)이라고 한다. 

 

 

관음암(觀音庵)은 예전에는 지조암(指祖庵)이라 했으며, 일설에는 산쥐들이 길을 안내하여 지은 암자라 하여 쥐조암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옛날 어느 스님이  땔감을 하려고 나무를 베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쥐가 그 나무에서 나온 톱밥을 물고

사라졌는데, 이상히 여긴 스님이 쥐를 따라갔다가  톱밥을 한 군데에 모아둔 것을 보고 이곳이 암자를 지을 장소인가 여겨 

그곳에다 암자를 지었고, 이 암자가 바로 지조암이라는 전설이 있다. (*아래 사진은 관음암에서 마주 보이는 두타산의 모습) 

 

두타산(頭陀山)의 두타(頭陀)는 산스크리트어의 두타(Dhuta)를 이두식으로 한자화한 것이다. 두타(Dhuta)에는

“의식주에 대한 탐욕과 세상의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수행·정진한다.”는 불교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인법당 뒤쪽으로.. 독성과 칠성, 산신을 함께 모신 삼성각(三聖閣)과 돌에 새긴 산왕대신이 보인다. 

 

 

친구가 옆에서.. 사자(獅子) 형상이 보이고, 지팡이를 든 모습이.. 지장보살(地藏菩薩) 같다고 한다. *^^

 

“땅속에 감추었다”는 지장(地藏)이라는 보살 이름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아 멀고도 먼 길을 떠난 18세 소녀가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옷마저 모두 벗어 주고 몸을 구덩이 속에 가렸다는

지장보살 전생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특히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자비를 베풀고 있다고 한다.

 

 

12:30 일행 중 2명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관세음보살에게 인사를 드리고.. 관음암을 출발한다.     

 

 

그늘진 사면에는 잔설이 남아있어.. 오랜만에 눈을 밟아 보니 겨울 산행 기분이 난다. ㅎ

 

 

신선바위 (神仙岩)란 옛날 아름다운 무릉계곡의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신선이 앉았던 자리로

천기가 흐르는 신성한 장소로 불리게 되었으며, 또한 이곳 엉덩이 모양의 장소는 인근의 남근바위와 함께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자식을 점지해 주는 소원 명당으로 유명하며,

KBS, MBC, jBS 등 많은 방송사 프로그램에 방영된 곳이다. (*이상 안내판 내용 참조)

 

 

아래까지 내려가 엉덩이 모양 찍다 보면 뒤처질 것 같아.. 그냥 바위 위쪽에서 찍고 간다. 

 

 

그렇다고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룬다는 남근바위를 안 보고 갈 수 있나?  (*하늘문 방향 산비탈.. 줌 촬영)

 

 

신선바위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우뚝한 남근석(石)이 바로 저기 서 있는데..   

 

 

남근석만 바라보고 가다가는.. 자칫 바윗길에서 미끄러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낙락장송(松).. 휘휘 늘어진 소나무 가지 아래로 펼쳐진 풍광이.. 남근석보다 더 멋지지 않은가?

 

 

12:50~13:20 널찍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점심 식사..

 

 

보온밥통에 싸 온 잡곡밥에 김, 두부, 감자, 김치 등.. 한, 두 숟갈 먹다가 식도의 거부 반응으로 더 못 먹고,

친구가 타 온 부드러운 블랙커피 한 컵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ㅠ,ㅠ  (*나중에 쿠키와 바나나로 보충)

 

 

계곡 건너편으로 보이는 얼음폭포는.. 두타산성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산성 일대로 떨어지는 폭포로,

12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어 산성12폭포라 하고 하며, 얼어붙은 모습이 물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거북바위.. 거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가 무릉계곡을 굽어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안내판 내용 참조)

 

 

맨눈으로 보기에는 거북바위가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 

 

 

무릉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산길..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어가며 경치를 즐긴다. *^^

 

 

두타산 무릉계곡에 있는 화강암 지역은 급사면인 동해 사면으로서 수직 절리가 이루어 놓은 경관이다.

무릉계곡을 따라 그에 평행한 방향으로 수직 절리가 발달되어 있어 급벽과 폭포 등이 발달되어 있다. *^^

 

 

이제 여기만 돌아 내려가면 하늘문이다.

 

 

13:30 하늘문을 내려간다. 보통 아래에서 위로 하늘문을 오르곤 했는데, 내려가려니 더 가파른 것 같다. 

 

 

중간 아래쪽 일부분은.. 거의 수직 계단이라.. 양손으로 난간을 꼭 잡고 한 칸씩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철계단 아래쪽의 피마름골은 피나무가 많아서 피마름골이라고도 하고,

임진왜란 때 죽은 이의 피가 많이 흘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되돌아 올려다 본 하늘문, 70도가 넘는 경사에.. 300여 개의 철계단이 하늘로 솟구쳤다. (*철계단은 2000년에 개방됐다)

 

 

역시, 인간은 땅 위를 걸어 다녀야 편한 법이라.. 쌍폭포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13:50 장군바위 갈림길에서.. 쌍폭포, 용추폭포 방향으로 향한다. (선녀탕, 장군바위 150m, 쌍폭포 300m→)

 

 

왼편은 박달령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하얗게 덮인 눈이 겨울 같다. ㅎ

 

 

갈림길을 지나면.. 바로 병풍바위, 장군바위 안내판이 있다.

 

 

장군바위는.. 장군 얼굴 같기도 하고..

 

 

병풍바위는.. 병풍 같기도 하다 *^^

 

 

장군바위 갈림길에서 약 150m 올라오면.. 선녀탕이다.

 

 

선녀탕은.. 노천탕이라 난방이 안되니.. 겨울에는 선녀들도 추워서 못 오는 것 같다. ㅎ 

 

 

13:55 쌍폭포 도착..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용추폭포다.

 

 

쌍폭포는 20m에 이르는 높이에서 흐르는 두 개의 물줄기의 발원지가 서로 다른 것이 특색인데

왼쪽 폭포는 두타산 정상과 박달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층층이 쌓여진 계단을 타고 선녀의 모시처럼

투명하게 흐르고, 오른쪽의 폭포는 청옥산과 고적대에서 발원한 물이 용추폭포를 거쳐 떨어진다.

즉 두타산과 청옥산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쌍폭포이다. (*동해관광 홈페이지 자료 참조)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는 물과 박달계곡의 물이 만나 서로 얼어붙고, 눈 녹은 물이 얼음 속으로 흐른다.  

 

 

14:05 용추폭포(龍湫瀑布) 도착.. 하얗게 얼어붙은 어름폭포다. 용(龍)도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떠났는지 보이지 않는다. *^^

 

용추폭포 [龍湫瀑布]

청옥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가 침식과 마식작용을 통해 항아리 모양의 상ㆍ중ㆍ하 3단의 바위용소(Pothole)를 형성하면서

흘러내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제일 아래 계단을 밟으면 전체 암석이 동요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동석(動石)이라 불리며,

이 일대를 폭포골 또는 용추동이라 부른다. 상단ㆍ중단ㆍ하단 등 3단으로 연결되는 폭포는 전국에서 이곳뿐이며,

폭포들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형상과 주위 무릉계곡의 뛰어난 경관과의 조화는 매우 아름답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추폭포 [龍湫瀑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용추폭포 상, 중 ,하 3단 폭포 중.. 맨 아래 하탕폭포 밑은 둘레가 30미터나 되는 깊은 못(沼)인데.. 여기도 꽁꽁 얼음판이다.

 

 

상단폭포가 보이는.. 용추폭포 전망대 위까지 올라가 본다. *^^

 

 

용추폭포는 청옥산(1,403.7m)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가 상, 중, 하 3개의 항아리 모양의 깊은 바위용소로 되어 있다.

철다리를 건너 폭포 전망대 위로 올라가 보면.. 매끈한 항아리 모양의 중폭을 볼 수 있으나 상폭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단폭포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아직 겨울인데.. 양지쪽은 벌써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나이 많은.. 스마트폰 세대라.. 사진 찍기 바쁘다. ㅎ

 

 

아직 폴더폰인.. 나름 사진작가는.. 디카로 찍고.. ㅎ

 

 

14:10 하산 시작..

 

 

영문 표기가.. Balbadakbawi Rock 보다.. Sole of the foot Rock 이 좋을 것 같다. ㅎ

 

 

용추폭포 아래 철다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꼭대기쯤의 발바닥 바위..

판판한 발바닥에.. 발가락이 네 개 같기도 하고, 다섯 개 같기도 하다.

 

 

쌍폭포로 다시 내려와..

 

 

폭포와 바위 등 절경이 펼쳐지는 이 길은 옛날 과거 보러 가는 선비, 보부상인들, 공무수행 관리 등이 한양으로 오갈 때

이용했던 지름길로 계곡을 타고 산을 넘어 정선과 임계로 해서 서울로 오갔으니 최고의 절경을 가진 옛길이라 하겠다.

(*'동해관광' 홈페이지 자료 인용)

 

옥류동은 용추폭포 가는 중간쯤에 있으며, 이 일대는 석자암 같이 넓은 암반에 흐르는 계곡물의 수심도 깊지 않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이다. 이처럼 물이 옥처럼 맑다고 하여 옥류동(玉流洞)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

 

 

14:50 학소대(鶴巢臺)를 지나.. 화강암 바위가 쌓아 놓은 듯 절벽을 이루고 있고, 폭포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곳이다. *^^

상류의 동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이곳을 지나는데 이 바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鶴巢臺)라고 한다.

 

 

삼화사는 역사의 격동기마다 수난을 겪어 왔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방화로 폐허가 되었고 한말 일제가 짓밟았던

시절에도 삼척 지방의 의병들이 두타산에서 봉기를 하자 의병의 근거지라 하여 왜병에 의해 또다시 불태워진다.

그리고 1977년. 두타산 입구 삼화동에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며 삼화사도 그 채광권 안에 들어가게 된다.

근대 산업화 물결에 천년고찰의 절터는 결국 완전히 파헤쳐 져 채석장의 흙더미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삼화사는 그 위협과 시련마저 견뎌내고 스님들과 신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옛 절 모습 그대로를

지금의 터로 옮기기에 이른다. 그리고 증, 개축을 꾸준히 해 옴으로써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이곳 두타산에 이르러 절을 짓고 흑연대(黑連臺)라 한 것이 그 효시라고 하지만, 경문왕 4년(864)에

구산선문 중 사굴산파의 개조인 범일국사가 ‘삼공정’(三公頂)에다 삼공암을 지었을 때부터 뚜렷한 내력을 갖는다.

그 뒤 고려 태조 때에 와서 삼화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삼공암에서 후삼국 통일을 빌었으며,

삼화사(三和寺)라는 이름은 ‘세 나라를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삼화사는 지난 1977년 일대가 (주)쌍용양회의 시멘트 채광권에 들어가면서 사찰이 철거되고

무릉계곡 초입에 있던 중대사(中臺寺)의 옛 터에 사찰을 중창해 옮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척주지(陟州誌)』의 「두타산기(頭陀山記)」에 의하면,“중대사(中臺寺)는 산 속 하천의 암석이 즐비한 곳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중대사 앞의 계곡은 무릉계(武陵溪)라 하였다.


동해시는 2018년에 삼화사(전통사찰 제10호)의 창건 비밀과 그 실체를 밝히기 위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적광전이 공사 중(발굴 조사?)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양쪽에 두 칸 문이 새로 만들어졌다.

 

*중심 전각인.. 적광전(寂光殿)은 화엄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나사나불이나 비로자나불 을 모실 때는 적광전이라고 한다.

 적광전 앞에 있는 삼화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 1277호이며, 적광전에 모셔진 철조노사나불좌상은 보물 제 1292호이다.

 

 

삼화사를 지나 반석교를 건너는데..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날씨도 좋다. *^^

 

 

15:10 두타산 삼화사 일주문을 나선다.

 

일주문은 모든 중생이 자유롭게 드나들라는 의미로 문을 달지 않으며.. 속세와 경계가 되는 산문(山門)이다.

 

*산문(山門)은 사찰로 들어가는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는 일주문(一柱門)과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천왕문(天王門)과 둘이 아닌 절대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不二門) 등을 말한다.

 

 

옛 풍월객들의 발이 끊이지 않던, 무릉반석

무릉계곡 금란정 위쪽에서부터 삼화사 입구에 이르는 1,500평 정도의 넓은 반석을 가리킨다.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천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다.

이 글씨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기간에 썼다는 설과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부사 재직기간에 썼다는 암각서로서

동해시에서 오랜 세 패에 글자가 희미해지고 마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보존하기 위해  모형석각을 제작하였다.

옥호 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1958년 세워진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는 은은하다. (*이상 동해시청 홈페이지>동해관광 자료 인용)

 

 

무릉반석에서 보이는 금란정(金蘭亭).. 풍광이 그만이다.

 

 

3일 후 정월 대보름 날이 절기 상으로 우수(雨水)다.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하는데,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절기가 우수(雨水)다.

 

 

무릉반석 암각서 (武陵磐石 岩刻書) 모형 석각

※ 동해시에서는 오랜 세파에 글자가 희미해지고 마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보존하기 위해

    1995년도에 모형석각을 제작하였다. (*금란정 앞 쪽 '무릉반석 암각서' 모형 석각 안내판 참조)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 물과 동리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  

 

※ 무릉반석은 무릉중대반석(武陵中臺盤石)의 약칭이라는 자료도 있다.. (*삼척신문.com  축제·관광> '무릉계곡명승지' 참조)

※ 반석 (盤石/磐石) : 1. 넓고 평평한 큰 돌. 2. 사물, 사상, 기틀 따위가 아주 견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어사전 참조)

 

※ 무릉(武陵)이란 이름은 중국 최고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에서 연유한다.

※ 무릉도원(武陵桃源) : 복숭아나무가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며,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로,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운 별천지(別天地)로 이상향(離想鄕, utopia)을 이르는 말이다.

※ 선원((仙源) : 예로부터 신선들이 노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을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고 부름.

 

※ 중대(中臺) : 연꽃 중심에 부처의 대좌(臺座)를 만드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국어사전 참조).

※ 천석(泉石) :  ①샘과 돌  ②산수(山水)의 경치(景致)  ③水石(수석)  (*한자사전 참조)

 

※ 두타(頭陀) : 불교용어로 '벗다, 씻다, 닦다'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를 음차(音借)한 것임. 

※ 두타 (頭陀) [명사] <불교> (*국어사전 단어)
   1.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
   2. 산과 들로 다니면서 온갖 괴로움을 무릅쓰고 불도를 닦는 일. 또는 그런 승려.

※ 동천(洞天) [dòngtiān]  1.신선이 사는 곳. 2.별천지. 딴 세상. 황홀경. (*중국어사전 참조)

※ 동천(洞天) : 1.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2. 깊고 큰 골짜기. (*국어사전 참조)

 

※ 암각서 아래에 옥호거사신미(玉壺居士辛未)라는 각서가 있는데, 신미년에 옥호거사가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초서 12자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1571~1576)중 신미년(1571)에 썼다는 설과

    옥호자 정하연이 삼척부사 재직(1750~1752)중 신미년(1751)에 썼다는 설이 있다.

 

 

15:20 무릉계곡관리사무소로 회귀.. 트레킹을 마친다. *^^

 

 

16:00 동해약천온천.. 18:30 태백 어느 메밀 전문식당에서 빈대떡, 수육, 메밀국수 등으로 저녁 식사.. 21:00경 영월 도착.. ㅎ

 

 

※ 아래 안내도는 클릭하면 좀 더 큰 이미지로 볼 수 있음.

 

 

*트레킹 [trekking]  전문적인 등산 기술이나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산악 자연 답사 여행.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산의 풍광을 즐기는 여행의 한 형태 (*등산상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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