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선암마을 뗏목체험

특집 할아버지 어디가? 2026. 4. 28. 15:20

오랜만에 외갓집에 놀려온 손녀와 함께 선암마을 뗏목체험을 하였다.
한반도지형을 돌아 흐르는 평창강을 뗏목을 타고 둘러보는 체험이다.

한반도지형 (국가지정명승 제75호)
한반도지형은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에 위치한 곳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모습을 강이 흐르고,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우리나라의 지형을 닮은 곳이다.

'선암마을'의 유래는 신선 선(仙) 자에 바위 암(巖) 자를 써서 선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뗏목배는 '단종대왕호'와 '엄흥도호' 2척이 30분 정도 번갈아가며 교대로 운항되고 있다.

강 가로 내려서자마자..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고.. 물가에 앉아 손을 물에 담근다.

구명조끼 밴드의 줄을 맞추어 보면 어느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출항한 '단종대왕호'가 강 아래쪽에서 다시 돌아 와 선착장에 닿으면.. '엄흥도호'가 출발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뱃사공의 구수한 설명을 들으며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체험이다.
*설명에 따르면 선암마을 박봉천이라는 분이 단종대왕이 방울재에서 흘린 말방울을 주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엄청 시원하다고 하는데.. 사공님이 삿대로 찔러보며, 제일 깊은 곳은 수심(水深)이 9m가 넘는다고 한다.
*삿대는 배를 물가에서 떼거나 물가로 댈 때, 또는 물이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밀어 갈 때 쓰는 긴 막대이다.

뱃고물(배의 뒷부분)에는 모타보트용 엔진이 장착되어 있으며, 뱃머리(이물)에는 길다란 노(櫓)가 달려 있다.
노(櫓)는 배를 움직이게 하는 추진 도구로, 손잡이 쪽 노착과 물에 잠기는 노깃으로 구성된 장대형 도구이다.

뱃사공의 물수제비 시범은 항상 첫 번째, 두 번째 실패.. 세 번째 성공인 것 같고, 뱃사공과 노젓기 체험도 직접 할 수 있다.

뼝창(절벽) 아래로 보이는 깊은 물빛에 으스스하다.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 쪽으로 다가 앉는다.

한반도지형을 돌아 흐르는  주천강변 일대의 하천은 한반도습지(韓半島濕地)라는 이름으로 2015년 5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람사르 습지로는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신안 장도 산지습지, 순천만 보성 갯벌 등 25곳이 있다.)

*람사르 습지(영어: Ramsar site)는 1971년 2월 2일 이란 람사르에서 유네스코 후원으로 체결된 국제 환경 조약인 "습지 협약"으로도 알려져 있는 람사르 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로 지정된 습지다.
*람사르협회에서는 '물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따라 독특한 생물지리학적 특정을 가진 곳이나 희귀동식물종의 서식지, 또는 물새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가진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람사르습지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뗏목배에서 올려다 본 반도지형 전망대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전망대를 지나 절벽 아래로.. 산에서 자라는 고사리, 고비같이 생긴 식물 등이 물가 쪽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지형 동해안 쪽은 평창강이 마을을 돌아 서해안 쪽으로 흘러내리고, 주천강과 합류하여 서강으로 흐른다.

주천강과 만나는 동해안 쪽으로 오면.. 멀리 신천리의 현대시멘트 공장이 보인다.

6.25 전쟁 때 선암마을 주민들이 폭격을 피해 숨었다는 방공호(?) 동굴.. 실제로는 길이가 잛아 많이 못 들어 간다고 한다.

뗏목마을 깃발을 달고..  동해, 서해,  남해  바다를 돌아.. 다시 뗏목마을 선착장으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상투를 틀고, 마이크를  목에 건.. 힙(hip)한 포즈의 '엄흥도호' 선장님과 기념 촬영.

뗏목체험을 하고 나서..  한반도지형 전망대로 올라간다.

영월 한반도 지형(寧越 韓半島 地形)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에 있는 지형이다. 2011년 6월 10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75호로 지정되었다. 이 곳을 포함한 일대의 하천은 한반도습지(韓半島濕地)라는 이름으로 2015년 5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되었다.
한반도를 닮아 ‘한반도 지형’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사계절마다 특색 있는 경관을 보여 주는 명승지이다.
영월 한반도 지형은 서강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 중 하나로,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하천의 침식과 퇴적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 지형이다. (*이상 위키백과 참조)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뗏목배.. 평강강 물길은 한반도지형을 돌아 내려가 주천강을 만난다.

돌아오는 길.. 전망대까지 왕복 1.6Km(소요 시간 35분) 거리지만.. 오랜만에 걸었더니.. 힘이 좀 든다.

단종문화제 행사장으로 와서 전국 아동-청소년 합창대회를 관람하였다. 특히 봉화 손녀가 사는 곳이라.. 봉화팀을 더 열심히 응원하였다.
*경상북도봉화교육지원청 소속 '봉꽃송이청소년합창단'은 인천 송도 일원에서 개최된 ‘대한민국국제합창대회(KICC)’에 참가하여,
Children 부문 은상과 더불어 전체 70여개 팀 중 단 2팀에게만 수여되는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한 바 있다.

합창대회가 끝날 무렵.. 창말농악대의 풍물소리가 들리며.. 동편 칡줄부터 들어온다.

이어서 서편도 태극기를 용머리에 꽂고 행사장으로 들어온다.

영월 칡줄다리기에서 쓰이는 줄은 암줄과 수줄로 구성된 쌍줄 형태를 하고 있다. 암줄과 수줄은 ‘용머리’라 부르는 둥근 고리 모양의 머리[줄 머리] 부분이 약간 다를 뿐이다. 둥근 형태이지만 수줄의 용머리를 좀 더 좁고 길쭉한 형태로 만들어 암줄 머리에 삽입한 후 ‘용두목’으로 결합하기 쉽게 만든다. 칡줄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예전에는 20일 이상 걸렸으나, 현재는 칡줄의 규모가 축소되고, 새로운 술비통이 제작되어 약 15일 정도 걸린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술비통(술비桶) : 줄다리기를 할 때 사용하는 굵은 줄을 꼬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틀.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두꺼운 송판을 틀에 올린 것으로, 구멍을 통과한 세 가닥의 줄이 일정하게 꼬이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약 30초간 시범 경기.. 영차~ 영차~ 칡줄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읍,면 대항 경기를 다 보려면  시간이 늦을 것 같아.. 그냥 할머니와 왕사남(?) 사진 찍고.. 봉화로 간다.

왕실 문양이 그려진, 검은  종이 두건(黑巾)은 햇빛 방지용 종이 모자로.. 행사장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동강변에.. 작은 대문이 세워져 있고  대문 기둥에 걸린 문패에는 '이홍위'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이 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단종이 살고 있을까? 아니다. 동강 물고기가 살고 있다.

2026년 제 59회 단종문화제 행사장에 세워진.. 단종대왕과 정순왕후의 조형물.  (*왕사남 출연 배우들의 사진도 전시됨.)

※ 아래 사진은 철도다리 아래 동강변에서 동서 양편이 칡줄다리기를 하던 모습이다.
(*아래 사진 플래카드에 단종문화제라는 글자가 보이니.. 1990년대 초인 것 같다.)

제1회 단종제 때 칡줄다리기는 영월경찰서 앞 도로에서 한 것으로 기억되며, 동강 동편에 살던 덕포 주민과,
동강을 중심으로 동강다리 서편에 살던 주민들이 인원 제한 없이 참가하여 실제로 줄다리기 시합을 하였다.

그 당시는 현 영월문화예술회관 자리에 영월군청이 있었고, 현 영월농협 자리에 영월읍사무소가 있었다.
군청에서부터 읍사무소까지 긴 칡줄은 음양에 따라 동편이 수줄을 만들고 서편이 암줄을 직접 만들었다.

한 달 전부터 산에서 칡줄을 걷어오는것 부터가 행사의 시작으로 칡를 다듬고 가늘게 꼬아 다시 크게 모아 꼬는데
한 편의 길이가 약 50m, 굵기가 약 60Cm에 이르렀고, 굵은 칡줄에 갈래 갈래 가는 줄에도 주민들이 붙어 당겼다.

동편에서 만들어진 칡줄은 동강다리를 건너오는데.. 칡줄 행렬 앞으로 부녀자가 지나지가 못하게 하였다.
암,수 형태로 만들어진 칡줄은 용두목으로 암,수줄을 결합하여 양편이 승부를 겨루었던 흥겨운 놀이였다.

영월 칡줄다리기는 복원 초창기에 칡과 짚을 섞어서 줄을 제작하였으나, 점차 칡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1980년대 초반부터는 칡만으로 줄을 제작하였다. 따라서 1985년부터 줄다리기 명칭도 '칡줄다리기'로
바뀌었으며, 1988년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칡줄다리기'라는 명칭으로 참여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영월군에서 전승하는 설화 가운데 단종 복위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로 인해 영월 칡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단종 복위를 꼭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친구와 어린 단종보다는 세조가 조선을 통치하여야 한다는 두 친구 간의 갈등을 줄다리기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영월은 논이 적어 볏짚 구하기도 어려웠고, 또 짚만으로 줄(새끼줄)을 만드니 튼튼하지 못하여 산(山)의 칡으로 줄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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