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회룡포(回龍浦) & 장안사(長安寺)

박삿갓의 여행 이야기 2017. 2. 12. 16:00

예천 회룡포(回龍浦)는 예천의 주관광지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높이 190m을 비룡산을 끼고

마을을 350° 휘감아 돌아서 흘러 내려가는 곳으로 [육지 속의 섬마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회룡(回龍)이라는 말은 태고에 용이 내성천을 타고 상류를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2017. 2.  11 (토요일, 정월대보름)  13:10 영월 출발.. 김삿갓계곡을 지나.. 

14:00 마구령 도착.. 오늘은 백두대간 마구령을 넘어 영주.. 예천으로 간다. ㅎ

 

 

마구령(馬驅嶺)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 위치한 고개다. 높이는 해발 820m이다.

국가지원지방도 제28호선과 지방도 제935호선이 이곳을 지난다. 이 고개를 넘어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위치한 의풍리로 갈 수 있으며, 의풍리에서 충청북도와 강원도 지역으로 갈 수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양백지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감록의 십승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고 해서 마구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는 경사가 심해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단양 영춘면의 의풍계곡에서 민초들이 부석장으로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다고 전하고 있다.

길이 매우 험해 영주와 단양 사이를 오갈 때는 주로 죽령고개를 이용했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따라 걷는 등산객이 찾기 전까지만해도 인적이 드문 고개이기도 했다. (*위키백과 참조)

 

 

 

15:20 비룡산장안사(飛龍山長安寺) 도착.. 입구는 범종루를 겸한 누문(樓門) 형태이다.

 

 

* 천상의 정기 서린 곳에 비룡(飛龍)이 꿈틀거리는 곳, 장안사 *
천년 신라에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정상 가까이에 장안사가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이곳 용궁면 용궁리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이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장안사(長安寺)는 허물어질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라는 분이 젊은 나이로 전국을 행각하던 중 이곳 장안사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들어오셨다. 혼자 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옮기며 새롭게 가람을 중수하셨다.

기와를 머리에 이고 흙을 지고 나르는 스님의 모습에 마을주민들도 감복해서 스님을 도와 불사를 거들었다.

모두의 간절한 원력으로 마침내 장안사가 옛 모습을 보이고 다시 신도들이 찾아들자

두타(頭咤) 스님은 말없이 절을 떠나셨다. 오실 때의 모습 그대로 걸망 하나만 매고 조용히 떠난 스님은

출가 때 세운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태백산 어디선가 공부만 하고 계신다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안사(예천)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장안사(長安寺)

경북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비룡산에 있는 절로서 정확한 창건 연혁은 알수없다.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응향전, 승방, 마룻집, 산령각이 있다.향석리 구읍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남산사라 불리우기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義湘)의 제자인 운명(雲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예천군지)에서는 고려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의 기록만이 전한다.1627년 (인조5)덕잠(德潛)이 증창하였고,

1709년(숙종35) 청민(淸敏)이 범종각(梵鐘閣)을 증수하였으며, 1755년(영조31) 법림(法琳)과 지묵(智默)등이 증수하였다.

1800년(정조24)효일(孝日)이 증수하였고, 1867년(고종4) 설산(雪山)이 향로전(香爐澱)을 증수하였으며,

1872년 설곡(雪谷)이 법당 및 요사채를 증수하였다. 1876년 백암[白巖]이 종각을 증수하였고,

1881년 백암이 산령각[山靈閣]을 증수하였다 그뒤 응봉[膺峰]이 1896년에 산령각을 증수하였고

이듬해에는 법당을 증수하였다. 1925년에는 법당의 기와를 갈고 대방을 증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참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위로는 금강산이요, 아래로는 양산, 그리고 국토의 중간인 용궁(龍宮) 비룡산 장안사이다.

 

안내판 하단에 장안사에서 대웅전 주련(柱聯)을 알기 쉽게 잘 풀이해 놓았다. *^^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은 두루 온 세상에 계시어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과거 현재 미래에 한결같이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크나큰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나니

汪洋覺海妙難窮   왕양각해묘난궁   광대한 깨달음의 바다는 가히 측량할 수 없어라

 

 

*참고로 한자 사전 등을 찾아서 나름대로 직역(直譯)해 보면 아래와 같다. *^^

 (아래 구절 풀이는 영월박삿갓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상이하거나 이견이 있을 수 있음)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 곳곳에 널리 퍼져 계시며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은 모두 한 몸이시라네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크나큰 원력의 높으심은 오래도록 다함이 없으니

汪洋覺海妙難窮   왕양각해묘난궁   깊은 깨우침의 바다에 달하기가 묘하고도 어렵네.

 

*불신(佛身) : 불교 최상의 이상을 실현한 부처의 몸

*보편(普遍) :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通)함. 널리 퍼져 있는
*시방(十方) : 불교에서 우주에 대한 공간적인 구분. 동ㆍ서ㆍ남ㆍ북의 사방(四方)과,  동북ㆍ동남ㆍ서남ㆍ서북의

                    사유(四維)와, 상ㆍ하의 열 가지 방향. 시간 구분인 삼세와 통칭하여 전 우주를 가리킨다.

*삼세(三世) :  ①아버지, 아들, 손자(孫子)의 세 대(代). 3대(三代)  ②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

*여래(如來) :  부처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 범어(梵語)로는 타타아가타( tathāgata)라고 한다.

*일체(一切) : ①모든 것. 온갖 것  ②모든 것을 다  *광대(廣大) : 크고 넓음

*원력(願力) : 부처님이 보살이던 때에 세운 본원이 완성되어 그 업력을 나타내는 힘.

*운(雲) : 1. 구름 2. 습기(濕氣) 3. 높음의 비유 4. 많음의 비유 5. 멂의 비유 6. 덩이짐의 비유

*항(恒) :  영구하다. 영원하다. 영속하다. 오래다. 꾸준하다. 불변하다.  *왕(汪) : (깊고)넓다

*妙 (묘할 묘) : 묘하다(妙--: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하다.  *난( 難) : 어렵다. 힘들다.

*窮 (다할 궁, 궁할 궁) :  다하다. (극에)달하다(達--)
*達 : 통달하다(通達--: 사물의 이치나 지식, 기술 따위를 훤히 알거나 아주 능란하게 하다.

 

*三世如來라는 뜻은.. 과거•현재•미래에 나타나시는 부처님은 본래 한 분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관세음•지장•문수 등 보살을 포함한 모든 보살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포함한 모든 부처님이

 한 부처님 곧 미륵부처님(하나이신 부처님)이시다. *^^*

 

 

*영산전(靈山殿)에 걸린 주련(柱聯)을 보니.. 맨 오른쪽 한 글귀는 알겠는데..

  다른 글귀들이 다른 사찰에서 보이는 주련과 달라(?) 쉽게  알 수가 없다.   

 

* 참고로 다른 사찰의 주련(柱聯)을 아래에 풀이해 보면..

  (보통 네 개의 주련 글귀를 모으면 한 수의 詩가 된다.)

 

無邊風月眼中眼  무변풍월안중안   끝 닿은데 없는 풍월은 눈(眼) 속의 눈이요,

不盡乾坤燈外燈  부진건곤등외등   다함없는 하늘과 땅은 등불 밖의 등불이라

柳暗花明十萬戶  유암화명십만호   버들이 우거지고 꽃은 십만 호에 환히 피니,

叩門處處有人噟  고문처처유인응   문 두드리는 곳마다 대답하는 사람이 있네..  

 

*무변(無邊) : 끝이 닿은 데가 없음  *부진(不盡) : ①끝나거나 다하지 않음  ②없어지지 않음

*풍월(風月) :  ①청풍(淸風)과 명월(明月). 아름다운 자연(自然)  ②바람과 달에 부쳐 시가(詩歌)를 지음

*건곤(乾坤) : ①하늘과 땅을 상징적(象徵的)으로 일컫는 말  ②온 세상(世上)

*유암화명(柳暗花明) : 버들은 무성(茂盛)하여 그윽이 어둡고 꽃은 활짝 피어 밝고 아름답다는 뜻.

 

삼천 대천세계의 곳곳마다 버드나무 그늘이 우거지고, 집집마다 환한 꽃이 피어나니,

여기 불러도 "예"하고 저기 불러도 "예"하니 곳곳마다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이 없으며,

곳곳마다 진여(眞如, 있는 그대로의 모습)가 아닌 곳이 없고, 다함(不盡)이 없다.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하니..

모든 존재는 다함이 없는 것이.. 불가의 우주론이요, 만물의 인과관계인 것이며..

우주 삼천 대천세계(三千大界; 소천, 중천, 대천)의  근본은 인간 마음의 근본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태양계ㆍ은하계ㆍ우주계 전체를 다 말한 것이다.

  이처럼 광대 무량한 세계가 일불교화(一佛敎化)의 범위가 된다고 한다.

  삼천대천세계를 줄여서 삼천대계ㆍ삼천세계ㆍ삼천대천이라고도 한다.

 

*주련(柱聯)은 사찰에서 부처님의 경전이나 큰스님들의 법문 등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전언들을 새겨

  기둥에 걸어두는 것으로, 기둥[柱]마다에 시구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柱聯)이라 부른다.  

 

 

대웅전 [大雄殿]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웅전 [大雄殿] (두산백과)

 

불심(佛心)이 깊은 친구는..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를 드리고..  

 

 

장안사를 드나드는 길목에 있는 범종루.. 마루 위로 오르는 계단 발판이 노후되어

'위험하니 올라서시면 안 됩니다'라는 안내문이 쓰인 기왓장으로 막아 놓았다. *^^ 

 

 

장안사에서 조금 올라와 산등성이에 있는.. 용왕각(長安寺 龍王閣)..

*용왕각(龍王閣)은 산신각(山神閣)과 마찬가지의 개념으로 불법수호신인 용왕을 모신 전각이다.
  용왕전, 용왕당이라고 한 곳도 있다.

 

 

용이 휘감아 도는 물 이름은 회룡포(回龍浦)요, 용이 웅비하는 형상의 산은 비룡산(飛龍山)이며,

승천하여 구름에 노니는 용의 형상은 용바위에 있으니, 가히 용궁(龍宮)이라 할만하다. (*안내문 참조) 

 

 

용왕신(龍王神)은 산신, 칠성님과 더불어 우리 조상들의 고유한 민속 신앙이었다고 한다.. 

옛 천축국의 고대 신앙으로서 모두 불교에 수용된 후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으로 모셔져 왔다.

 

신중 [神衆]

불교의 수호신·호법신. 주로 인도의 토속신과 대승 불교의 전개 과정에서 상정된 신,

그리고 불교의 전파 지역에서 흡수된 신들로,

제석(帝釋)·범천(梵天)·사천왕(四天王)·금강역사(金剛力士)·팔부중(八部衆)·칠성(七星)·산신(山神) 등이 있음.

[네이버 지식백과] 신중 [神衆]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시공사)

 

‘신중(神衆)’은 부처나 보살보다 위계가 낮은 불교의 수호신들을 일컫는 말이다.

천축국(天竺國)은 중국에서 인도를 부르던 옛 명칭으로, 이 신들은 본래 인도의 토속신이었지만,

불교에서는 이 토속신들을 모두 수용하여 부처와 그 가르침을 지키는 수호신·호법신으로 삼았다.

 

 

산신, 칠성신과 함께 민족 고유의 신앙이며 불교에 수용된 뒤 불법의 수호신으로 역할을 해온 용왕신을 모시는 곳이다.

지리적으로 감미로운 샘물이 솟는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에 물이 휘감아 돌아가는 회룡포(回龍浦)가 있으며,

장안사가 위치한 산 이름 또한 비룡산(飛龍山)이니 이곳이 비록 바다가 아니더라도 용왕각이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용왕각 옆에는 거대한 아미타부처님이 자리하고 계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의 ‘나무’는 ‘돌아가서 의지한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돌아가 의지한다.’ 라는 뜻이 된다.

 

나무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 어이다. 나무는 namas:namo 인데 번역하여 귀명(歸命),

귀의(歸依), 귀경(歸敬), 경례(敬禮), 구아(救我), 도아(度我) 등 여러가지 뜻으로 번역된다.

나무는 본심(本心)으로 돌아감(歸還本心, 귀환본심)이다.

나무는 나 없는 마음 아무심(我無心)으로 돌아간다. 귀무아심(歸無我心)이다.

 

 

용왕각을 둘러보고.. 약 300m 거리에 있는 회룡대(전망대)로 향한다.

 

 

행운의 계단길(약 100m).. 계단을 오르며 무슨 소원을 생각해 볼까?

 

 

계단길 옆으로 시화판이 보여.. 모가지가 긴 사슴처럼 고개를 내밀고.. 뒷발로 서서.. 몇 수 읽어본다. ㅎ 

 

사슴 / 盧天命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관(冠)이란.. 사슴의 뿔, 관(冠)과 같은 뿔을 말함.

 

 

회룡포 / 위초하 (예천읍 출신 詩人)

 

 

장안사 [長安寺]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비룡산(飛龍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義湘)의 제자인

운명(雲明)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예천군지』에서는 고려 때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 (중략) ..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에 주지실로 사용하는 응향전(凝香殿)이 있고 우측에 승방(僧房)이 있으며,

건너편에 ‘飛龍山長安寺(비룡산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린 마룻집이 있고, 뒤편 언덕에는 산령각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조선 말기에 지어진 건물이며, 전각 내에는 목조 아미타삼존불과

3점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나 모두 최근작이다.

그러나 산령각에 봉안된 산신탱화는 1812년(순조 12)에 조성한 것으로 확실한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마룻집에는 1727년에 쓴 중창기를 비롯하여 각종 중수기 현판이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등촉계기(燈燭契記)·불량계중설서(佛粮契重說序)·불사기문(佛事記文) 등이 있고, 1953년에 만든 높이 55㎝의 범종이 있다.

절이 향석리 구읍(舊邑)의 남쪽에 있으므로 일명 남산사(南山寺)라고도 하며, 향석리에 있는 석불좌상과 3층석탑을

이 절에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안사 [長安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산등성이로 올라오며 언덕배기에서 뒤돌아 보이는 장안사의 전경..

 

 

산(山)은 녯 산(山)이로되 / 黃眞伊

원문(原文)

산(山)은 녯 산(山)이로되 물은 녯 물이 안이로다.
주야(晝夜)에 흘은이 녯 물이 이실쏜야.
인걸(人傑)도 물과야 가고 안이 오노라.

(현대역)

산은 옛날의 산 그대로인데 물은 옛날의 물이 아니구나.
종일토록 흐르니 옛날의 물이 그대로 있겠는가.
사람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는구나.

 

 

詩를 읽어보다가.. 계단수를 세어보지 못했으니.. 황진이를 만날 행운이 없는가 보다. ㅎ

 

 

계단을 내려가 다시 올라오며 세어 보면.. 황진이를 만나 볼 수 있을까?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그러고 보니 황진이도 옛 황진이가 아니구나. ㅎ

 

황진이 황진이 황진이 내일이면 간다 너를 두고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이제 떠나면 언제 또 올까 사랑아 사랑아 내 사랑아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뻐꾸기가 울텐데 그리워서 어떻게 살까? 

 

 

황진이를 두고.. 아쉬운 마음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육지속 회룡포 우체통.. 이곳에서 편지를 보내면 350일 후에 배달된다고.. 

물이 350° 돌아 흐르는 곳이니.. 편지도 350일 후에 배달되는가 보다.

사랑하는 황진이에게 편지라도 보내려 하나.. 엽서가 없구나.. ㅠ,ㅠ

 

 

회룡포(回龍浦)는 낙동강(洛東江)의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용(龍)이 비상(飛翔) 하듯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飛龍山)을 다시 350° 되돌아서 흘러 나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 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산책코스가 있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의 천년고찰인 장안사(長安寺)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룡산(飛龍山)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洛東江),내성천(乃城川),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三江)이 보이는데 깍아지르는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三韓時代)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일명 용주성)이 있다.천혜의 요새로 토석혼축으로 된 성(城)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烽燧臺)가 남아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때 마한(馬韓)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圓山城)을 점령한 후 백제(百濟)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원산성이 위치한 용궁 일대는 근초고왕 25년(370)에 백제 영토가 되었다가 512년 고구려 문자왕이 점령하여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그 후 진흥왕 26년(565)에 신라의 땅이되어 오늘에 이른다.이러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원산성은 4세기 말부터 6세기 말까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였음을 알 수 있다.이 저역 지명에서도 나타나듯 전사한 병사의 피가 강물을 따라 흘러 맞은편 언덕에

엉키어 붙었다 하여 (피묻끝)이라고 부르고 통곡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하여 강 건너 마을을 달읍(達泣)이라 부르고 있다.

인근 용궁향교, 하마비, 황목근, 무이서당, 삼강주막, 산택지, 청원정 등이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이곳 회룡포 마을에는 야영(野營)과 민박(民泊)이 가능하다.  (*안내문 참조)

 

 

 

 

 

화살표 방향으로 강 건너에 하트 모양이 보인다고.. (하단 안내도 참조)

비룡산의 정기나 받아 갈까 하니.. 경로 나이에는 소용이 없다네.. ㅎ  

 

 

회룡포가 내려다 보이는 회룡대(回龍臺)로 내려간다.

 

 

회룡포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회룡대(回龍臺).. 하천 침식에 의해 깎여진 비룡산의 능선 바로 아래에 있다.

 

 

예천 회룡포 [Hoeryongpo, 回龍浦]

2005년 8월 23일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태백산 능선의 산자락이 둘러싸고,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도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내성천 줄기가 마을 주위를 350도 휘감아 돌아나가서 마을 주위에 고운 모래밭이 펼쳐지며

산과 강이 태극 모양의 조화를 이룬다. 마을 건너편 비룡산의 전망대인 회룡대에 오르면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강에는 쏘가리, 은어 등이 서식하고 강가의 모래밭을 따라 나무가 심어져 있다.

1997년부터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어 회룡포 주변 둑길에 왕벚나무를 심었고, 주변에 공원과 산책로를 내고

잔디를 심었다. 1997년 11월 봉수대를 복원하였으며, 철쭉군락지를 조성하여 민속마을로 완성할 예정이다.

마을 건너편 비룡산에는 통일신라 때 세운 장안사와 원산성 등이 있고, 주변에 용문사 대장전(보물 145) 외에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용문사와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천연기념물 294) 등의 관광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천 회룡포 [Hoeryongpo, 回龍浦] (두산백과)

 

 

국가명승 제16호 회룡포(回龍浦)..

수천 년 자연의 힘에 의해 저절로 형성되어온 보물과도 같은 하천지형이다.

 

장안사(長安寺) 뒷산인 비룡산에 오르면 저 멀리에는 태백산이 학가산을 거쳐 힘차게 뻗어오고,

소백산이 주흘산을 거쳐 회룡포를 감싸고 펼쳐지며, 오른 편을 보면 낙동강 건너 팔공산이 북쪽으로 달려

비봉산을 이루니 천하의 삼산이 모여들고.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휘돌아 삼강(三江)을 이루며 모여드니

삼룡득수형국(三龍得水形局)의 천하명당이다.  전설에 의하면, 태백산 청룡과 소백산 황용리 여기서 만나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비룡산회룡포(飛龍山回龍浦 )라 하니 국가명승 제16호이다. (*용왕각 안내문 참조)

 

 

지명의 유래

이곳 회룡포는 예전에는 의성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해서 '의성포(義城浦)'라고 지칭되었으며,

1991년 간행된 <한국 땅이름 큰사전>에 보면 '의성포(義城浦)는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내성천이 감돌아 흘러 섬처럼 되었고, 조선조 때 귀양지였으며, 고종 때 의성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지명이 의성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예천군에서는 몇 년 전부터 회룡포로 부르기로 했다는데, 이는 의성포라고 하면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까 싶어서였다고 한다.

6.25 전란도 피해간 길지(吉地)라고 알려진 이 곳 회룡포에는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사람들이 살고 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풍양면 청운3리 사막마을에 살던 경주 김씨 조상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 자료)

 

전망대에서는 소나무 가지에 전망이 가리어.. 아래쪽 전망 데크에 내려가니.. 마을로 건너가는 '제2뿅뿅다리'가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아르방다리'로 부르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걸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해서 ‘뿅뿅다리’라고도 부른다.

 

돌도 없이.. 하얀 모래사장이 엄청 넒다. 이 모래들은 어디서 흘러와 이곳에 쌓였을까?

마을 앞으로 펼쳐진 백사장이 너무 깨끗하여 누구나 쉬어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ㅎ

1987년 조선일보에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곳 100곳'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 

 

 

마을의 면적은 대략 6만 평.. 이 땅은 억겁의 세월 동안 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배수 잘 되고 보습력도 뛰어난 충적토라 흉년 한 번 든 적이 없는 천혜의 땅이다. *^^  

 

요즈음은 회룡포라 불리지만 1990년 대 이곳이 알려질 때에는 예천의 물도리마을  의성포였다.

2000년 '가을동화' 촬영지로 알려지며 '의성포'라는 이름이 경북 의성군에 있는 마을이 아닌가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가서 의성포를 찾게 되자 2004년쯤 예천군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ㅎ 

 

 

회룡(回龍) 마을은 의성포 동북쪽에 위치하여 내성천이 새 을(乙) 자 모양으로 굽이돌아 흐르는 지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룡 서남쪽에 있는 의성포(義城浦)는 내성천이 감돌아 흘러서 섬처럼 생긴 마을이다.

회룡 마을과는 내성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의성포란 마을 이름은 지형이 기묘하고 의로운 자연환경을 갖추었다 하여 의로울 의(義) 자로 하고,

내성천(乃城川)의 성 성(城 ) 자를 따고 삼면이 강변이라 물가 포(浦) 자를 합하여 의성포(義城浦)라 한다.

 

또 1856년 대홍수 이후, 의성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았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 설과,

낙동강 소금배가 이곳에 머물다가 의성 방면으로 갔다고 하여 의성포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의성포는 두 마리의 용이 감싸고 있는 형국인데, 의성포 쪽으로 길게 나온 것은 숫용,

강 건너 푹 들어간 용포마을 쪽은 암용이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서로 교미하는 형국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이 일대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이상 자료는 네이버 블로그 '삽짝풍수' 게시글 내용을 참조한 것임.)

 

*위에 있는.. 조선 물도리동, 하회 이미지는 2009-02-25 국민일보 게재(인터넷 검색),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의 [김병종의 생명이야기] (11) 조선 물도리동 자료 인용

 

<물도리동>은 안동 하회동의 고유 지명으로, 물이 돌아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을 갖는다.

하회(河回)의 순 우리말은 '물도리'이다. 하회동을 '물도리동, 물도리 마을'이라고 한다.

동(洞)은 한자어로 마을 洞이니.. 순 우리말로 풀이하면 '물도리 마을'이 되는 것이다.

 

 

*영월 서강도 뱀처럼 구불대며 흐르는 사행천이어서 곳곳에 아름다운 물도리 지형을 품고 있는데,

  그중 경관이 빼어난 곳은 청령포(명승 제50호), 한반도지형(명승 제 75호), 선돌(명승 제76호)이다.

 

*선돌 강 건너편에 있는 문개실은 마을 한쪽에 물이 넘나드는 큰 개(浦·포)가 있는 마을이므로   

  비가 갠 뒤 물안개가 피어나 마을 전체가 물 위에 뜬 것처럼 보인다 하여 뜰 부(浮) 자

  ‘부개실(浮浦洞·부포동)’이라  불리다가 ‘문개실’이라 불리는 곳이다. 

 

 

                       청령포                                     한반도지형                                  선돌(문개실)

 

*경북의 3대 물도리 마을이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마을, 영주 무섬마을이라고 한다면,

  영월의 3대 물도리 지형은 청령포, 한반도지형, 선돌(문개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인 생각임.)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트림을 하는 듯한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특이한 지형의 육지속의 섬 마을..

회룡포는 태백산의 끝줄기가 만나 태극모양으로 휘감겨 있으며 마을은 소백산 줄기의 끄트머리이다.

그리고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내성천은 낙동강, 금천을 만나 몸을 섞는데.. 그곳이 바로 삼강과 마지막 주막이 있는 곳이다.

 

현재 마을은 9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으며, 모두 경주 김씨라고 한다.
경주 김씨가 풍양면 사막마을에 살다가 피난 와서 자리 잡은 곳이 여기다.
* '예천 회룡포마을' 홈페이지 (http://dragon.invil.org/index.html?menuno=2195&lnb=40101) 내용 인용

 

 

회룡포를 보고 나서 산등성을 조금 더 올라 봉수대(烽燧臺)까지만 가 본다.

 

봉수대 [烽燧臺]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은 곳.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烽]을 피워, 낮에는 연기[燧]를 올려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에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였다. 봉화는 밤에 피우는 횃불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도 포함해서 흔히 ‘봉화’라 통칭하였으므로 봉수대의 이름도 봉화의 ‘봉(烽)’자를 따서

여러 가지로 불렀다. .. (중략) ..

전국의 봉수는 경흥·동래·강계·의주·순천의 5개 봉수대 기점으로 하여 서울 목멱산(남산)의 제1봉에서 제5봉의 봉수대로

집결되었는데, 제1봉의 봉수대는 함경·강원도에서 오는 봉수를 양주 아차산(서울 강동구) 봉수대로부터,

제2봉 봉수대는 경상도에서 오는 봉수를 광주 천림산 봉수대로부터, 제3봉 봉수대는 평안·황해도에서 오는 봉수를

무악산 동봉의 봉수대로부터, 제4봉 봉수대는 평안·황해도의 해안에서 오는 봉수를 무악산 서봉의 봉수대로부터,

제5봉 봉수대는 전라·충청도에서 오는 봉수를 양천(서울 양천구) 개화산 봉수대로부터 각기 받았다.

이와 같이 전국에서 올라온 봉수의 정보는 목멱산 봉수대의 오원이 병조에 종합보고하면 병조에서는 매일 새벽

승정원에 알려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1894년(고종31) 봉수제도가 현대적 전화통신체제로 바뀌어 폐지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봉수대는 지방기념물로 지정하여 각 도·시에서 보호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수대 [烽燧臺] (두산백과)

 

 

비룡산 봉수대 (飛龍山 烽遂臺)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에 위치하며 옛날에 통신수단의 하나로 밤에는 불,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국방상의 중요한 임무를 도성[都城]에 신속히 전달하였다.봉수(烽燧)는 홰수(炬數)에 따라

1홰(炬) 평상시, 2홰 적출현, 3홰 국경접근,4홰 국경침범,5홰 적군교전으로 구분하여 알렸다.

비룡산 봉수는 동쪽으로 예천읍의 서암산(西唵山), 서쪽은 다인의 소이산(所以山), 북쪽은 산양의 가불산(加弗山)

봉수와 연락하였으며 설치년도는 고려(高麗) 의종(毅宗) 3년(1149)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며

1895년 봉수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없어진 것을 예천군에서 사방3.7m, 높이2.7m의 정방형 규모로 복원[復元]하였다.

 

 

봉수대 이정표( ← 장안사 0.5Km, 회룡대 0.2Km, 용포대 1.0km, 원산성 1.9km →)

 

 

장안사에서 걸어놓은 '법구경'의 말씀.. *아래 부분은 안동 봉정사 '고금당'에서도 보았던 글귀다. *^^ 

 

未生之前 誰是我  (미생지전 수시아)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我生之後 我爲誰  (아생지후 아위수)    세상에 태어난 후 내가 과연 누구던가?

長大成人 讒是我 (장대성인 재시아)    자라나서 사람되어 잠깐 동안 내라더니,

合眼朦朧 又是誰  (합안몽롱 우시수)    눈 한 번 감고 나면 내가 또한 누구련가?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의 출가시  順治皇帝 出家詩 일부

 

 

16:10 장안사 출발.. 16:50~18:10 오랜만에 예천온천에 들린다.

*예천군청에서 운영하는 예천온천은 물도 좋고 흘러넘쳐 깨끗하다.

  특히, 냉탕은 직접 올린 온천수라 차지 않아 좋다. (*일반 6천 원, 경로 3천 원)

18:10 예천온천 출발.. 제천으로 가는 길.. 정월 대보름 크고 둥근 달이 떠오른다.

19:10 제천 어느 한식 뷔페에서 간단히 저녁 먹고.. 20:20 영월 도착함. ㅎ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회룡포

 

 

굽이 돌아가는 물길이 한 폭의 그림이다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물길인 내성천이 휘감아 만들고 있는 육지 속의 섬, 회룡포이다. 멋진 풍경으로 반짝이는

하얀 모래 백사장을 감싸며 돌아가는 옥빛 물길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으로 영월의 청령포와 함께 유명한 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길목은 폭이 80m에 수면에서 15m 정도 높이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면

정말 섬 아닌 섬이 되어 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회룡포로 바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지만 먼저 전망대에 올라보도록 하자.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보통 장안사를 거쳐 회룡대로 오르는 길을 택하는데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거리이다.

내려와서 회룡포 안으로 들어가 보는데 멀리 돌아가는 목으로 난 차도를 이용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회룡마을 끝에 놓인 다리를 건너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동네 사람들이 아르방다리로 부르는 간이 다리인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걸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해서

‘뿅뿅다리’라고도 부른다. 회룡포 안 의성포마을은 열 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로 앞으로는 강이 돌아가고

뒤로는 야트막한 언덕이 놓인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회룡포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마로니에북스)

 

 

회룡포는 내성천이 예천군 용궁면에서 태극무늬 형태로 흐르면서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은 곳이며,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 일대에 분포하는 감입곡류(嵌入曲流) 지형 중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어서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것을 용의 형상에 비유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의성포(義城浦)라고 하였는데, 이곳의 하천이 성처럼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의성포라고 하면 의성군에 있는 지명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회룡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룡포의 물돌이 지형은 S자형으로 흘러가는 감입곡류하천의 지형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곳은 맑고 푸른 강물, 은모래가 쌓인 백사장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급경사의 지형, 울창한 식생,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 Daum백과 참조)

 

예천 [禮泉]

《택리지(擇里誌)》에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라 했다.

따라서 물맛이 감주(甘酒)처럼 달 경우 예천이 된다. 감주를 예주(醴酒)라는 말로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경북의 예천(醴泉)은 물이 감주와 같이 단 데서 나온 이름이다. 《예기(禮記)》에 쓰기를

‘하늘은 감로수를 내리게 하고 땅은 감주처럼 단 샘물을 솟게 한다(天降甘露 地出醴泉)’고 했다.

예천에서 솟아나는 것이 후자와 같은 단물이다. 그러나 예천은 당 태종(唐太宗)에 의해서 발견된

섬서성의 실재 지명이므로, 경북의 예천 역시 처음으로 출현한 땅 이름이 아니다.

다만 신라 때에 수주(水酒)라 이름 지은 것을 보면 물이 감주처럼 단데서 출발한 것이 틀림이 없다.

주변에는 5층 석탑과 석조여래상 등 문화재급의 수많은 불교문화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샘물의 질과 용출 상태에 따라 지명은 달라지고 있다. 경북 예천의 감천(甘泉)은 물이 단 데서, 전남 화순의

한천(寒泉)은 샘물이 차가운 데서, 전남 해남의 옥천(玉泉)은 구슬과 같이 맑고 투명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천 [禮泉] - 감주처럼 단 샘물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부연사)

 

회룡포 등산로
* 제1코스 : 용주팔경시비→장안사→정상(회룡대)→봉수대→원산성→제2전망소→용포마을→용주팔경시비(2시간 30분)
 * 제2코스 : 용주팔경시비→장안사→정상(회룡대)→봉수대→제2전망소→용포마을→용주팔경시비(1시간 50분)
 * 제3코스 : 용주팔경시비→장안사→정상(회룡대)→봉수대→원산성→성저마을→성저교(2시간)
 * 제4코스 : 용주팔경시비→장안사→정상(회룡대)→봉수대→원산성→삼강앞봉→의자봉→적석봉→사림봉→용포마을
                  →강변길→용주팔경시비(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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