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박삿갓 詩, 태백산 부쇠봉

박삿갓의 漢詩 모음 2018. 2. 20. 10:20

천제단(천왕단)이 있는 영봉(1560.6m)을 가운데로 하여, 북쪽에 장군봉(1,566.7m), 
동쪽에 문수봉(1,517m), 그리고, 영봉과 문수봉 사이에 부쇠봉(1,546m)이 있다. 

 

 

부쇠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태백산맥이 금강산·설악산·오대산·두타산 등을 거쳐

태백산 이곳에서 힘껏 솟구쳤으며,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소백산맥이 분기된다. *^^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출발해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큰 산줄기를 말하며,

부쇠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소백산맥의 시초가 되며, 동쪽은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인 이익(李瀷)은 그의 저술집 성호사설(星湖僿說)의 `백두정간(白頭正幹` 항목에

"일직선의 큰 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태백산이 되었고, 지리산에서 끝났다"고 적었다.

태백산(太白山)은 이렇듯 우리 민족이 애지중지하는 백두대간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산이다. *^^ 

 

        

 

白頭大幹太白中    백두대간태백중     백두의 큰 줄기는 태백산을 가운데로 하여

小白山脈分岐連    소백산맥분기연     소백산맥으로 나뉘어 갈라져 뻗어나가고,

東陵文秀緩慢山    동릉문수완만산     동쪽 문수봉으로 이어진 두루뭉술한 산은,

檀君次子扶蘇峰    단군차자부소봉     단군의 둘째 아들 부소의 봉우리라 하네.. ㅎ

 

 

백두대간 부쇠봉 (해발 1,546.5m)

부쇠봉은 단군의 아들인 부소(扶蘇)에서 따왔다고 하고, 불을 일으키는 부싯돌(부쇠)이 많아서 ‘부쇠봉’이라는 설도 있다.

태백산 천제단 제단 비석에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한배검’이 단군의 다른 말인 점에 비추어 보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천제단이 있는 영봉이 단군께 제사 지내는 장소라면 그 아래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가 그 아들봉일 것이니,

부소의 봉우리라 하여.. 부쇠봉이라 부르는 걸까?  전하는 말에 부소(扶蘇)가 구령탑을 쌓았다고도 한다. *^^

천제단(天王壇) 아래 하단(下壇)이 부소단(蘇壇) 또는 구을단(丘乙壇)으로 불리는 것과도 관련 있는 것 같다.

 

*조선 숙종 2년(1676) 북애자(北崖子)가 저술한 <규원사화揆園史話>를 보면 단군에게 아들이 있었다.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가 그들이다.

*부쇠[명사] : 1. [방언]‘부시(부싯돌을 쳐서 불이 일어나게 ...)’의 방언(강원, 경남, 전남, 제주, 충북).
                     2. [옛말]‘부시(부싯돌을 쳐서 불이 일어나게 하는 쇳조각)’의 옛말.

*부싯돌 : 불을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돌로, 부싯돌은 석영의 일종으로 차돌이라고 한다. 

 

 

천제단은 구령단(九靈壇), 구령탑(九靈塔), 마고탑(麻姑塔)이라 하기도 한다. 천제단은 천왕단(天王檀)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이보다 작은 하단의 3기로 구성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았다.

천왕단은 위는 원형이고 아래는 사각형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 때문이다.

현재 태백시에서 거행하는 태백제(太白祭)는 태백신사에서 제사를 지내던 전통을 이어받은 축제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백신사 [太白神祠]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 국립민속박물관)

 

장군단 (將軍壇) 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가운데 하나로 중앙에 위치한 천제단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다. 지도상에서 해발 1,566m의 「태백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가 장군단이 있는 지점이다.

 

하단(下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중 하나로, 천제단 남쪽 언덕 아래로 0.2㎞ 지점에 있다.

부소단(夫蘇壇) 또는 구을단(丘乙壇)으로도 불린다.

별도로 지내는 제는 없으며, 북쪽으로만 계단이 없고 나머지 세 방향에는 모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백산 천제단 [太白山 天祭壇]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신라시대에 이곳 산마루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릉으로 길이 있어 경상도와 강원도로 통하는 요로(要路)였다고 하며,

고려 때, 혈리의 정거리에서 새길령을 넘어 천평으로, 춘양가는 새 길이 생기자 이 길은 소롯길로 변하였다고 한다.

 

ㆍ샛길재 ― 혈리에서 천평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해발 1,130m이다. 흔히 새길령으로 부르며 한자로는

'신로치(新 路峙)', '조도령(鳥道嶺)', 사길령('士吉嶺)', 사길치('四吉峙)', '서길령(瑞吉嶺)'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고개길은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통하는 큰 길로서 과거 교통의 요로였다.

신라 때에는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가자면 태백산 정 상으로 이어지는 산마루로 나있는 길로 다녔다. 
그 길이 불편하여 고려때 새로이 길을 뚫었는데 지금의 새길재이다. 소도 당골 어귀에 원(院)을 설치하고

새길재를 넘어 온 사람들이 쉬어가게 하였다. 옛길[태백산 산등의 길]대신 새로이 길을 뚫었기에 새길이라 하였고

그 고개를 새길재라 하였던 것이다. 한자로 '조도령(鳥道嶺)'이라 한 것도 새 (鳥) 길(道)을 뜻하는 것이고

 '신로치'는 말할 것도 없이 새길이며 '사길(士吉)', '사길(四吉)', '서길(瑞吉)'도 모두 새로운 길인

새길을 소리나는대로 표기한 것일 뿐이다.  [*태백시의 지명 유래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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