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슬픔"이 어린 청령포

박삿갓의 일상사 모음 2012. 5. 16. 15:20

청령포(淸冷浦)

청령포는 조선 6대 단종 임금의 유배지로 서강을 경계로 하여 영월읍 방절리 청령포와 남면 광천리 청령포로 나누어져 있다.
사시사철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르는 포구 이므로 '청령포(淸冷浦)'라 한다. 방절리 청령포에는 왕방연 시비가 있고,
광천리 청령포에는 단종의 유지비각, 금표비(禁標碑), 망향탑(望鄕塔), 노산대(魯山臺),관음송(觀音松) 등의 유적이 있다.  

보통 청령포라 하는 광천리.. '청령포'는 이곳은 3면이 푸른 강으로 싸여 있고 남쪽 한 면만이 층암절벽과 연결되어있는 유배지로,  
어린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 뒤 이곳에서 2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그 해(1456년)에 있었던 큰 홍수로 인하여
영월에는 사나흘간이나 장대 같은 빗줄기가 떨어지면서 단종의 유배지로 가는 뱃길마저 끊어지고 큰 물난리가 났다.
이에 단종은 영월동헌의 객사(客舍)인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17세의 어린 나이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하였다. 


오랫만에 청령포를 찾아 나룻배를 타고 건너간다.. 근년 수차례 서강의 큰물로 앞쪽 자갈밭이 많이 높아져 있다. 



이곳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이 물로 둘러 쌓이고 서쪽으로는 여섯봉우리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산의 암벽이 가로막아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친구들과 함께 청령포의 울창한 송림으로 들어서자.. 솔향과 더불어 진한 우정이 느껴지고.. 



상큼한 공기와 푸르른 숲의 기운에 마음까지 맑아진다. 



왼쪽으로 보이는 초가집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모습을 재현하고자 만든 행랑채이다. 



행랑채 마당을 지나 담 뒤쪽으로 가본다. 기와집인 단종어소 담 뒷편의 모습. (* 여행 팁 : 데크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화장실이 있슴.) 



초가인 행랑채 담 뒤편에서 보이는 모습.. 강 아래쪽으로 청령포 철교가 보이는 이곳은 예전 그대로이다,
우거진 잡초속에 휘어진 소나무가 서있고 서강은 단종의 슬픔을 아는 듯 소리없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다가  영월 청령포로 귀양을 오게 되었는데... 
단종의 유지비각 앞에 작은 마이크를 들고 서있는 문화관광해설사의  해박한 설명이 유창한 목소리로 한참동안 이어진다.



단종은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 송현수(宋玹壽)의 딸과 결혼 한 후, 정순 왕후로 책봉된 부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결국 일년 반만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단종은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 어득해(魚得海)와 군자감정(軍資監正) 김자행(金自行)
그리고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홍득경(洪得敬) 등 군사 50명의 호송 속에 서울 광나루에 있는 화양정을 발하여 일주일만에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 도착하였다. 청령포는 3면이 푸른 강으로 둘러싸이고 칼날 같은 산들이 얽히고 설킨 유배지로
밤이면 피를 토하듯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두견새의 울음소리와 밤새도록 흐르는 거친 물소리만 들려오는 첩첩산중이다.
이곳에서의 어린 임금의 귀양생활을 생각하며  정순 왕후는 매일 아침 유배지인 동쪽의 영월을 향하여 통곡하였고,
단종은 한양 땅이 바라보이는 노산대(魯山臺)에 오를때 마다 정순 왕후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기도 하였다는.......

문화광광해설사의 애절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는 친구들.. '단종의 사랑' 그리고.. '단종의 슬픔'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친구들이 앉아 있는 쪽인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집안은 인형등으로 꾸며 놓았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생 거송들이 들어찬 청령포 수림지 중심에 위치한 단종비각을 향하여 소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비각내의 단묘재본부시유지는 영조 39년(1763)에 세워진 것으로 총 높이 162cm 크기의 오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앞면에「端廟在本府時遺址 (단종이 이곳에 계실때의 옛터이다)」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이 비석은 전면 측면 각 1간의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각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금표비가 있다.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관음송(觀音松)은 1988년 천연기념물 제 34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하여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운다.




소나무의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m이다. 지상 1.2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 동서로 약간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각각 3.3m, 2.95m이며, 수관 폭은 동서 23.3m, 남북 20m이며, 수령 600년으로 추정하는데,  
조선조 단종(端宗:1441∼57)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청령포 뒷산 육육봉(六六峯)과 노산대(魯山臺) 사이 층암절벽위에 돌을 쌓아 만든 망향탑(望鄕搭)은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주위에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고 하며,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고 한다.



단종이 슬픔이 쌓인 망향탑(望鄕塔)..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은 망향탑에 얽힌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눈시울을 적신다.



망향탑을 내려와 다시 노산대(魯山臺) 쪽으로 올라가는데.. 모두들 나이탓인지..계단 오르기가 힘이 드는 모양이다. ㅠ,ㅠ 



노산대(魯山臺)는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격하되여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자주 올라가 생각에 짐기곤 했던 장소이다.
그 옛날.. 단종 임금이 서 계셨던 노산대 바위 위에서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 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



아마도... 노산대 위로 올라오기는 했는데..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났던 것 같다. ㅎ



한 여자 친구가 '거기 위험한데.. 머하러 올라 갔어요, 어여 내려와요'하고 소리치자.. 두 남자가 엉금엉금 기어 내려온다.



 노산대를 내려와 나서는 길에 만난 금표비 뒷면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 泥生亦在當禁 崇禎九十九年 」
「 동서로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숭정 99년 」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영조2년(1726)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기 위헤 세운 금표비(禁票碑), '淸冷浦禁票'라 새겨져 있는 글귀가 아직까지도 또렸하다.




육지속의 작은 섬 청령포(淸령浦 )는 2008년 12월 16일 명승 제 50호로 지정되었다.   

청령포(명승 제50호)
영월 청령포는 어린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형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청령포를 휘감아 흐르는 서강물에는 산그림자와 함께 '단종의 슬픔'이 어리고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읊은 시조이다. 


     

    1.왕관을 벗어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년 세월 
       아- 애달픈 어린 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2.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구비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 오백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 있네

    3.동강물 맑은 곳에 비춰주는 달을 보고
       님 가신 뒤를 따라 꽃과 같이 사라진 
       아름다운 궁녀들의 그 절개가 장하구나 
       아~ 낙화암 절벽에는 진달래만 피고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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