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정(錦江亭) 江 건너편에서..

박삿갓의 일상사 모음 2016. 4. 18. 21:36

영월 덕포 제방 둑(堤)에서 東江 건너편으로 보이는 봉래산(蓬萊山)과 금강정(錦江亭)!

(* 아래 사진은 클릭하면 좀 더 큰 사이즈로 볼 수 있음)

 

 

江 건너 절벽 위로 금강정(錦江亭)과 그 뒤편에 민충사(愍忠祠)가 보인다.  (*30배 줌)

 

민충사(愍忠祠)는 금강정(錦江亭) 뒤편에 있으며, 단종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낙화암(落花岩)에서 몸을 날려 사절(死節)한 시녀와 시종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금강정(錦江亭)은 1428년(세종 10)에 김복항(金福恒)이 세웠다고 하나 영월제영(寧越題詠)에 의하면

이자삼(李子三)이 영월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사재를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금강정에 들러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정」이라는 시(詩)도 전하고 있다.

 

금강정(錦江亭)은 낙화암 밑으로 흐르는 동강 위로 붉은 단풍잎이 어리어 마치 한 폭의 비단 같아 보인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금강정은 영월8경 가운데 금강추월(錦江秋月), 태화단풍(太華丹楓), 계산숙무(稽山宿霧), 봉소귀범(鳳沼歸帆)의 4경을 모두 볼 수 있는

동강의 빼어난 전망대다. 이곳의 경치가 얼마나 빼어난 지 조선시대의 청백리 황희 정승과 대학자인 이퇴계도 금강정에 이르러

금강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한다. 또한 우암 송시열도 숙종 10년(1684)에 이곳에 들려 「금강정기」를 남기기도 했다.

 

[금강정(錦江亭)]

 

○ 황희(黃喜)

軒高能却暑  집 높아 더위 물리칠 수 있고,

簷豁易爲風  처마 넓으니 바람 쉽게 든다.

老樹陰垂地  늙은 나무 그늘은 땅에 드리우고,

遙岺翠揷空  먼 묏부리는 푸른 빛 공중에 꽂았다.

 

*신동국여지승람 제46권 / 강원도(江原道) 영월군(寧越郡) 편에 나오는 황희의 시.

 (관동지에는 관풍루를 읊은 시로 되어 있다고 한다.)

 

○ 이황(李滉)

鵑啼山裂豈窮年  두견새 울어 산 찢어지니 어찌 한 해를 다할꼬,

蜀水名同非偶然  촉수와 이름 같은 것 우연이 아니지.

明滅曉簷迎海旭  별 깜빡이는 새벽 처마 바다 햇살 맞이하고,

飄蕭晩瓦掃秋烟  쓸쓸한 저녁 기와 가을안개로 쓸린다.

碧潭風動魚遊錦  푸른 못 바람 일자 물고기 비단에서 헤엄치고,

蒼壁苔生鶴踏氈  푸른 절벽 이끼 생겨 학 담요 밟는다.

更約道人携鐵笛  다시 도인과 약속하여 쇠피리 가져와,

爲來吹罷老龍眠  다시 올라 피리 불어 늙은 용 잠 깨우리.

 

▲ 영월 동강변에 있는 이 정자는 세종 10년(1428) 김복항이 건립했으며, 강원도 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錦江亭  退溪  李 滉

 

鵑啼山裂豈窮年。
蜀水名同非偶然。
明滅曉簷迎海旭。
飄蕭晩瓦掃秋烟。
碧潭楓動魚游錦。
靑壁雲生鶴踏氈。
更約道人攜鐵笛。
爲來吹破老龍眠。

 

鵑啼山裂豈窮年。 蜀水名同非偶然。
두견새 울어 산을 무너뜨리니 어찌 세월 모자랄까.

촉나라 물 이름(錦江) 같은 것도 우연은 아니로다.

 

明滅曉簷迎海旭。飄蕭晩瓦掃秋烟。
깜빡 깜빡 새벽 처마끝으로 바다 일출 맞이하고,

우수수 저녁 기왓장에 가을 연기 쓸어가네.

 

碧潭楓動魚游錦。靑壁雲生鶴踏氈。
푸른 못 위에 떨어진 단풍잎 움직임은 고기가 비단 위에 노는 듯하고,

푸른 벽에서 생기는 구름은 학이 양탄자 밟는 듯.

 

更約道人攜鐵笛。爲來吹破老龍眠。
다시 도인과 언약하여 쇠로 된 피리 들고서,

피리 불어 늙은 용의 잠을 깨어 나오게 하세.

 

※ 1573년에 간행된 퇴계집(退溪集)의 자료라고 하는데.. 문집별로 시(詩) 해석이 조금 다르다.

 

錦江亭(금강정)  退溪  李 滉(퇴계 이 황)  

 

鵑啼山裂豈窮年   견제산렬기궁년    두견이는 어찌 한 평생 산이 찢어져라 우는지?
蜀水名同非偶然   촉수명동비우연    촉나리의 강 이름도 한 가지라 우연이 아니구나.
明滅曉簷迎海旭   명멸효첨영해욱    큰 아침 해를 맞으니 가물거리던 처마가 다가오고,
飄蕭晩瓦掃秋烟   표소만와소추연    낡은 기와를 칠하듯 가을 안개 쓸쓸히 나부끼네
碧潭楓動魚游錦   벽담풍동어유금    단풍나무 흔들리는 푸른 물가엔 아름다운 물고기 노닐고
靑壁雲生鶴踏氈   청벽운생학답전    구름이 이는 푸른 절벽엔 학이 융단을 밟고 있네.
更約道人携鐵笛   갱약도인휴철적    도인과의 약속을 바꿔서 날라리 들고서,
爲來吹破老龍眼   위래취파노룡안    남김없이 다 불어 잠자는 늙은 용을 돌아오게 하리라.

 

※ 출처 : 退溪集(퇴계집)  退溪先生文集券之一(퇴계선생문집권지일)  시(詩)  1943년 간행본 인용

 

 

금강정(錦江亭)은 영월읍 영흥리 봉래산 밑에 있는 정자이다. 정자는 1428년(세종10년)에 군수 김복항(金復恒)이 세웠고 그 뒤로 군수 이야중(李野重)이 무너져 버린 것을 다시 세우고 1792년(정조16년)에 부사 박기정(朴基正)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동으로 금장강에 접해 있고 남으로 금봉연(金鳳淵)이 자리잡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금장강 밖으로 상덕촌(尙德村)이 있으며 그 남쪽으로 밀적포(密積浦)가 있어 바라보면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정자 바로 곁에 단종이 죽자 시녀 여섯 명과 한 명의 시조이 몸을 던져 죽은 낙화암(落花岩)이 있으며, 정자 뒤편으로 민충사(愍忠祠)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정자에서 영월 8경 중 4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鵑啼山裂豈窮年(견제산렬기궁년) 두견이 울어 산을 찢어내니 어느 해에 그치려나?
 蜀水名同非偶然(촉수명동비우연) 촉과 강 이름 같음도 우연이 아니어라.
 明滅曉簷迎海旭(명멸효첨영해욱) 달빛 꺼져 가는 새벽 서까래에 아침해 떠오르고,
 飄蕭晩瓦掃秋烟(표소만와소추연) 나부끼는 대 숲에 저녁의 가을 연기 사라진다.
 碧潭楓動魚游錦(벽담풍동어유금) 맑은 못에 단풍 흔들리니 물고기 비단에서 헤엄치듯
 靑壁雲生鶴踏氈(청벽운생학답전) 하늘에 구름이니 흰 학이 양탄자를 밟는 듯,
 更約道人携鐵笛(갱약도인휴철적) 다시 도인과 쇠피리 가져다가,
 爲來吹破老龍眼(위래취파노룡안) 쇠 피리 불어 늙은 용안을 뜨게 하자 약속하네.
  <이황(李滉), 錦江亭>

 

시는 퇴계 이황 선생의 시로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러 지은 듯하다. 시인은 단종의 비극적 삶을 두견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시의 서두를 열었다. 그러나 그 울음은 예사롭지 않아 산을 찢어내고 있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그 두견이와 연결된 촉나라의 강(錦障江) 이름과 같다고 하여, 단종의 애처로운 역사적 사실을 중국의 역사와 닮은꼴임을 드러내어 그 슬픔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간다. 달빛 희미해 질 때 아침해는 어김없이 지붕의 서까래 위로 떠오르고, 다시 대나무 숲에 바람이 일고 가을의 저녁 마을 연기는 비로 쓸어낸 듯 사라진다. 이는 무한히 시간의 반복이 계속되고 있음을 아침과 저녁이라는 시간의 대비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그 다음 5, 6구절에서는 회화적 수법을 통해 정자의 아름다운 경치를 잘 표현하였다. 정자 아래의 맑은 강으로 흔들리는 오색의 단풍나무 잎들이 마치 물고기가 비단에서 헤엄치 듯 한다고 하여,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과 단풍나무 잎의 움직임을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다. 또한 하늘에 흰 구름 일어나는 것을 흰 학이 양탄자를 사뿐사뿐 밟으며 날아가는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 퇴계 선생의 뛰어난 회화성의 일면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구절이다. 마지막 7, 8구절에서는 도인(道人)과의 약속을 통해 나이가 들어 이치를 바라보는 시각의 무딤을 쇠피리 소리를 통해 일신해 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었다. 도학자다운 끝맺음이라고 할 수 있다.
 <청연서당>  
 

※ 출처 : 강원도민일보 문화 연재(2004. 11. 23) 게재 내용 (* 인터넷 검색)

             [허준구의 新한시기행] <37> 영월 금강정(錦江亭)

 

 

금강정(錦江亭)과 낙화암(落花巖)으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절벽(병창)!

* 아래 사진은 클릭하면 좀 더 큰 이미지로 볼 수 있음.

 

 

금강정에서 포도밭을 지나 낙화암쪽으로 가면 절벽 위에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라고 쓴 이끼 낀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비석은 영월 부사 신광수의 수청을 거절하고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절개를 지킨 영월기생 고경춘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19년(1795), 순찰사 손암의 후원으로 세운 것이다.


이 비석에서 동쪽으로 가면 낙화암이라는 절벽이 나온다.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들도

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는데 절벽에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낙화암(洛花巖)'이란 글씨를 새겨 놓았다.

 

낙화암((落花巖)은 금강정 쪽 동강의 높은 절벽 위에 있는데 1457년 10월 24일 단종이 관풍헌에서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 그리고 시종들이 모두 이곳 절벽에서 투신 순사하였다.
이들이 투신 순사할 때의 모습이 마치 꽃이 떨어지는 것 같다 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두 곳의 낙화암이 있는데 그 하나는 백제의 수많은 궁녀가 몸을 던진 부여의 백마강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이곳 영월의 낙화암이다. 금강정 절벽에 동쪽으로 있는 마지막 절벽이 낙화암이다.

 

 

절벽 어딘가에 '落花巖' ' 彰烈巖'이라 새겨진 암각문이 있다는데.. 어디인지..? 강 건너라 멀어서 찾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금강정을 조금 지나서 대각선으로 벼랑 층을 따라 낙화암 아래 강가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있었는데..  

 

 

※ 아래는 낙화암 부근 절벽(영월 말로 뼝창)에 '落花巖'이라 새겨진 암각문으로,

    글자 한 자의 크기가 가로 X 세로 약 1m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 검색 자료)

 

▲ 1742년(영조 18) 영월부사 홍성보(洪聖輔)가 낙화암 절벽에 새긴 ‘落花巖’ 세 글자

 

금강정 주위의 벚꽃은 주말부터 내린 비와 태풍급(?) 봄바람에 다 떨어졌다. ㅠ,ㅠ

 

 

벚꽃은 졌지만.. 東江에는 푸른 신록이 물들고 있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갈대는 새로운 싹을 키우고 있다.

 

 

다리 건너편으로 동강의 전망이 보인다는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덕포 제방길에서는 영월 5일장(4일, 9일)이 열리고.. 동강다리에는 단종문화제를 알리는 청사초롱이 달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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