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센터 - 판아리랑 공연
박삿갓의 여행 이야기 2016. 9. 10. 20:30정선5일장날 아리랑센터에서 오후 2시~오후 3시 <판아리랑>이 공연된다.
<판아리랑>은 아리랑의 연대기를 한판으로 엮어 만든 다큐 연희극이다. *^^
정선5일장 장터에서 아리랑예술단의 소리마당 공연(13:00~ 13:30)을 보고 나서,
바로 택시를 타고 강 건너 아리랑센터로 왔다. 오후 2시에 판아리랑 공연이다. *^^
1층 안내데스크에서 정선아리랑 상품권(5,000원)을 구입하면 입장권을 교부해 준다. ㅎ
공연장인 아리랑홀 객석은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공연 시작 10분 전.. 생각보다 관객이 그리 많지 않다. *^^
공연 시작 전.. 정선을 알리는 회면이 비치어진다.
보고 싶다.. 정선아.. *^^
아리랑홀은 612석 규모의 대형 공연장이다. ㅎ
오후 2시 청사초롱을 든 사회자가 정선아라리와 뗏목의 유래를 간단히 설명하고 공연 시작을 알린다.
1,865년 경복궁 중건, 정선의 낙락장송이 어명을 받았다. 아우라지에서 마포나루까지
물길 천리를 흘러 경복궁의 기둥과 들보가 되었다. 여기 정선 아라리가 함께 흘렀다.
심산유곡 정선에 고인 노래가 그렇게 물 아래 세상을 향한 것이다.
1장 '어명"이오!
낙락장송 앞에 예단을 걸고"어명이오"하고 나무를 벤다. 베어진 나무를 옮기는 "영차하면/ 영차"로 시작하는
<운재소리>와 "차제이/ 차제이/ 어영차 어영차 <목도소리>를 부르며 아우라지에 적재한다.
눈이 녹고 물이 불어나는 봄, 떼를 지어 마포나루로 향한다.
매 순간 죽음이 도사린 험한 물길, 오죽하면 "아침밥이 사잣밥"이란 말이 있갰는가,
오호차 오호차"하는 <뗏목소리>를 하고 점지 받을 때부터 길들여진 <긴 아라리>를 부른다.
무거운 나무를 목도로 지고 발맞추어 나르며 어영차! 어영차! 장단을 맞춘다.
무대 뒤편 대형 스크린에 뗏목을 시연하는 모습이 비치어진다.
한양까지 뗏목이 떠내려가는 동안 사고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제례를 지낸다.
뗏목의 유래는 1867년 대원군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의 중건을 위해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얻고자 이 지역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소나무를 떼로 엮어 서울로 수송한 때부터이다.
그 후 60년대까지 뱃사공들의 숱한 애환과 사연을 싣고 서울로 땔감이나 목재로 떠내려갔다. *^^
2장 아라리 주막
"황새여울 된꼬가리 떼를 무사히 지나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아라" 아우라지에서 영월까지 주막이 1000개였다.
산목숨 거둬가는 무시무시한 여울을 지나면 주막에 떼를 묶는다. 주막집에서는 떼돈 버는 정선 떼꾼을 불러들이기 위해
술을 따르는 젊은 색시들에게 정선아라리를 가르쳤다. 소리를 주고받는 수작보다 더한 장사법이 또 있을까, ㅎ
특히 전산옥(全山玉, 1909~1987)은 빼어난 미모에 입심을 갖추었고, 정선아리랑을 구성지게 잘 불러 인기가 최고였다.
1950년대 정선에서 베어낸 통나무로 만든 뗏목이 정선 조양강(朝陽江)과 영월의 동강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정선을 출발하여 한양에 도착하기 까지는 황새여울, 된꼬까리, 둥글바위, 울여울, 군관여울 등의 험한 뱃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곳 여울목은 굽이가 심하여, 수많은 뗏목들이 뒤로 꼬꾸라질 정도로 심하게 꼬부라진(굽은) 여울목이라
"된꼬까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당시 뗏꾼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가 지금도 거운과 문산리 지방에 전해지고 있다.
눈물로 사귄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 잠시 잠깐이라네
돈 쓰던 사람이 돈 떨어지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
놀다 가세요 자다 가세요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를 띄어 놓았네
만지산의 全山玉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이 노랫가락에 나오는 전산옥은 실제로 있었던 인물이며, 만지(滿池)에서 술을 팔던 들병장수로
특히 아라리를 잘 불러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도 만지나루터에는 전산옥이 살던 집터가 있다.
황새여울 뉘룬(臥雲, 누운: 문산리 동쪽에 있는 강변 마을) 밑에 있는 여울이다.
이곳은 물이 앝고 물살이 센 여울목으로 정선에서 덕포로 오던 골뗏꾼들이 두려워하던 곳으로
황새, 두루미,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서 모여드는 곳이므로 '황새여울'이라고 한다.
된꼬까리 정선읍 가수리를 지나 영월읍 거운리(巨雲里)의 어라연(魚羅淵) 밑에 있다.
물살이 거칠고 굽이가 심하다. 뗏목꾼들은 구비가 심한 이곳 여울을 두려워했다.
만지 나루터는 어라연을 지나 된꼬까리 아래쪽에 있는 만지에서 길운으로 건너가는 나루터이다.
지금도 만지나루터에는 뗏꾼들을 상대로 술장사를 했다는 전산옥의 집터와 돌담이 그대로 남아있다.
정선 조양강에서 내려오는 골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집을 운영하던 그의 집은 1936년 병자년
가락으로 떠내려갔다. 지금 그가 살던 집터는 무성한 잡초와 흩어진 돌담만이 뒹굴고 있다.
노랫가락에 나오는 전산옥은 만지나루터에서 떼꾼들을 상대로 술장사를 했으나
1936년 병자년 가락때 주막집이 떠내려 가자 북면 마차로 이사를 했다가
노년에는 덕포리의 큰딸집에서 임종을 했다.
(*이상 도서출판 대흥기획 발행 / 엄흥용 저 '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내용 인용)
정선에서 영월에 이르는 물길의 많은 주막들 가운데 이곳 만지의 전산옥 주막은 뗏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쉼터였다. ㅎ
※ 지금도 만지나루터에는 전산옥(全山玉)이 살던 집터가 있다.
(*아래 주막터 안내문은 클릭하면 좀 더 크게 볼 수 있음)
※ 아래 사진은 수 년 전 영월 잣봉 산행후 어라연 강변 트레킹 시 찍은 된꼬까리 여울 사진임.
화면에서는 아득한 시간을 더듬는.. 나이 든 어느 주모의 아라리 소리가 들려온다.
제3장 경복궁아리랑
경복궁 중건에 팔도의 인부들이 모여 일한다.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놀이판도 벌어지기에 팔도의 광대들도 몰려온다.
이중 여사당 바우덕이는 대원군에게 옥관자를 하사받아 광대들의 꿈이 되기도 했다. 굳이 광대의 소리가 아니더라도
경복궁은 노래로 가득했다. 팔도의 인부들이 부르는 노동요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이중 '아리랑'이란 인상적인 후렴이 있는 <정선아라리>가 유행한다. 이로 인해 서울 사람들이 부르는
<아리랑타령>이 생겨났고, <진도아리랑>이나 <밀양아리랑> 같이 지역에 맞는 아리랑이 생겨난다.
그리고 서울의 <아리랑타령>은 나윤규의 영화 <아리랑>의 모태가 된다.
2012년, 마침내 <아리랑>은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정선을 통해 한양에 간 강원도의 일노래 아리랑이 세계인의 노래가 된 것이다.
(*이상 1장, 2장, 3장에 대한 설명은 정선군이 발행한 판아리랑 리플릿 내용을 인용한 것임)
투전판에서.. 엿장수의 소리로.. 전해지고...
광대들이 주고받는 노래로도..
아라리 가락으로 이리저리 퍼져 나간다.
한양 기생은.. 깍쟁이같이.. 간단 명료하게 짧은 아라리다. ㅎ
경복궁이 중건되고.. 흥겨운 농악패가 등장한다.
소고를 치는 아이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ㅎ
이렇게 인부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며 전해진 아라리..
150년 전 경복궁 중건을 위해 뗏목을 통해 흘러간 노래 아리랑이. 오늘날 세계인의 노래가 되었던 것이다.
판아리랑 공연을 마치고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래 사진 2매는 사진을 클릭하면 좀 더 큰 사이즈로 볼 수 있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아쉬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선다.
아리랑센터 외부 계단으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아리랑박물관으로 간다. ㅎ (*박물관은 이어서 포스팅 예정)
아리랑센터는 한민족 아리랑의 시원(始原)이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전승·보존과 창조적 계승을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아리랑 전문공연장과 아리랑박물관을 갖춘 아리랑센터는 국내외 아리랑을 포용하고
아리랑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아리랑 문화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 위 이미지 및 자료 출처 : 정선아리랑문화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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