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연도 백패킹 & 트레킹 (2일차 트레킹)

가슴 설레는 섬여행 2019. 6. 21. 17:20

가슴 설레는 섬여행.. 황해 외연도 섬여행 2일차.. 상록수림 및 해안선 트레킹!

외연도 상록수림은.. 외연초교를 지나.. 마을 뒷쪽 능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 백패킹 & 트레킹 일시 : 2019. 6. 15(토) ~ 6. 16(일) 1박2일,  (*동행인원: 4 명)
▶ 트레킹 코스 : 상록수림 및 외연도 해안선 (*1일차 백패킹 장소 : 누적금) 

▶ 날씨 : 전날 심하게 불던.. 바람도 안 불고 트레킹 하기 좋은 날 (*기온; 약 20℃)

▶ 일정 : 백패킹 후.. 배낭 등 짐은.. 슈퍼 주인아주머니가 가게 안에 맡겨 두고 가라고.. *^^

 

트레킹(trekking)은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산의 풍광을 즐기는 것으로,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소달구지를 타고 하는 여행'이란 뜻으로 유럽 사람들이

대자연을 찾아 아시아의 고원을 천천히 걸어 여행한 데서 생긴 말이라고 하며,

고원이나 산악지대를.. 짐은 짐꾼에게 맡기고.. 한가로이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08:50 외연도초등학교 가는 길로.. 생수 한 병 들고.. 상록수림부터.. 외연도 트레킹을 시작한다.

         *외연도 트레킹은.. 짐을 슈퍼에 맡기고.  숲과 바다를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ㅎ

 

 

외연도의 상록수 숲은 외연도 마을 뒷산에 있는 당림(堂林)으로서 중앙에 사당이 있어 주변의 숲이 잘 보호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후박나무·동백나무 등의 상록수종이 우거져 높이 20m에 달한다.

 

보령 외연도 상록수림 [保寧 外煙島 常綠樹林]

천연기념물 제136호. 면적 32,727㎡. 상록수림은 마을 뒷면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 서낭당이 있다. 이 상록수림

외곽의 식생은 크게 황폐되어 있으나 이 숲은 원상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는 것은 서낭당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숲을 구성하고 있는 상록활엽수종에는 후박나무·동백나무·식나무·보리밥나무·먼나무·무룬나무·돈나무·자금우·붉가시나무·

개산초나무·마삭나무·황칠나무 등이 있으며, 담쟁이덩굴·국화으아리·방기·사위질빵·계요등·칡·왕머루·청미래덩굴·노박덩굴·

댕댕이덩굴·새머루 등의 상록만경식물이 엉켜 자라고 있다.

또, 낙엽활엽수로서 팽나무·찰피나무·딱총나무·푸조나무·자귀나무·산초나무·누리장나무·고로쇠나무·꾸지뽕나무·산뽕나무·

닥나무·꾸지나무·찔레꽃·참빗살나무·두릅나무·붉나무·초피나무·상수리나무·예덕나무·민머귀나무·까마귀밥나무·회나무·

실거리나무·자작나무·때죽나무·광대싸리·병아리꽃나무·화살나무·새비나무·쥐똥나무 등도 있다.

이 중 큰 나무로서는 팽나무가 높이 20m, 가슴높이의 줄기지름 1.4m로서 가장 크며, 지름이 1m 이상 되는 나무는 여럿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령 외연도 상록수림 [保寧 外煙島 常綠樹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숲의 주변에는 큰 나무가 없으므로 이 상록수림이 유일하게 과거에 자라던 이곳 숲의 유물적인 표본으로 되어 있다.

그중에는 나무높이 20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에 달하는 팽나무의 거목도 있다.

*팽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달주나무·매태나무·평나무라고도 한다. 인가 근처의 평지에서 자란다.  

 

 

'외연도초등학교'  작은 섬 학교지만 큰 인물을 키운다고 하는데.. 올해 신입생이 없다고 하는 것 같다.

 

 

천연기념물 제136호 보령 외연도 상록수림 (保寧 外煙島 常綠樹林)

 

외연도의 상록수림은 마을 뒷쪽 능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상록수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로는 후박나무·동백나무·식나무·

보리밥나무·먼나무·무른나무·돈나무·자금우·붉가시나무·송악·마삭줄·방기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와 팽나무·찰피나무·딱총나무·

푸조나무·자귀나무·산초나무·누리장나무·고로쇠나무·구지뽕나무·산뽕나무·닥나무·꾸지나무·찔레·참빗살·두릅나무·붉나무·

초피나무·상수리나무·예덕나무·민머귀나무·가마귀밥여름나무·황칠나무·회나무·실거리나무·자작나무·때죽나무·개산초나무·

광대싸리·병아리꽃나무·화살나무·새비나무·털갈매·쥐똥나무 등의 낙엽활엽수, 담쟁이덩굴·국화으아리·사위질빵·계요등·칡·

왕머루·청미래덩굴·노박덩굴·댕댕이덩굴·새머루 등의 상록덩굴식물 보춘화·전호·노란장대 등의 풀 종류가 자라고 있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수백년 전에 섬사람들이 남쪽으로 왕래할 때 옮겨 심은 것이라고도 하며, 중국 제(齊)나라 장군으로

한(漢)나라에 쫓겨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피신해 있다가 항복을 강요받자 병사들과 섬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자결하였다는 전횡장군이 심은 것이라고도 한다.

외연도 상록수림은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서낭림으로서 잘 보호되어 왔으며, 우리 나라의 대표적 상록수림의 하나로서

생물학적 연구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상 자료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탈 참조)

 

 

외연도초등학교 왼쪽.. 플래카드가 매여진 길을 지나면.. 상록수림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상록수림 입구.. 수백 년 된 동백나무는 옛날 마을 사람들이 남쪽을 왕래하며 가져다 심은 나무로 전해지고 있다.

 

 

외연도 상록수림은 수백 년 된 동백나무를 비롯해 우리나라 남서부 도서의 다양한 식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당산(堂山)에는 동백나무 800여 그루, 후박나무 200여 그루가 우거져 꽃이 필 때면 붉은 꽃, 노란 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외연도상록수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상록수림 중 하나로 꼽히는 소중한 자연자원이다. 대표적 수종으로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와 낙엽 활엽수인 팽나무 등이 고목으로 자라고 있으며, 그 외 10종의 상록활엽수와 25종의 낙엽활엽수,

10종의 상록 덩굴식물 등이 자라고 있다. 이 숲은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서낭림으로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을 두고

당산이라 하여 이 산에 매년 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고 있다.  

 

 

상록수림에는 중국 제나라를 일으킨 장군인 전횡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은 중국 한나라에 쫓겨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피신해온 중국 제나라 장군이 한나라에 항복을 강요받자 병사들과 섬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자결하였다는 전횡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이곳에서 전횡을 기리는 제사를 지네고 있다.

 

 

전횡장군당신화

외연도의 당제는 매년 음력 2월 14일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날 정오 무렵 끝난다. 처음 뒷산에 올라가 산제로 시작하여

전횡장군사당제를 모시고 나면, 지태라고 부르는 소를 희생 제물로 삼는다. 보름날 새벽 5시경에 당산에 팥떡을 가져가서

올리고, 올렸던 제물을 수습하여 당을 내려온다. 이후 팽나무제와 등장마당제 그리고 용왕제와 띠배 퇴송으로 이어지며,

끝으로 당샘제와 안당제를 모신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 제나라 출신으로 마침내 왕이 되었던 전횡 장군이 지리적으로 인접한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외연도에서 신격화되어 마을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신격화의 바탕에는 지역과의 연고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즉 전횡 장군이 외연도에 들어와서 살다가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역적 연고성을 찾고 있으며,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희생물이 되었던 그의 삶을 위험한 바다에서 삶의 일터를 일궈야 하는 어민들의

위험천만한 삶과 동일시하여 자신들을 지켜 줄 수 있는 신격으로 쉽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횡장군당신화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보령외연도전횡장군사당 [保寧外烟島田橫將軍祠堂]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서 중국 제나라 무장으로서 왕위에 오른 전횡 장군을 모신 사당.

매년 음력 2월 14일에 거행되는 외연도 당제에서 풍어의 신으로 제사하고 있음.

 

형태

전횡장군사당은 당산의 동백나무숲에 있다. 규모는 17㎡ 남짓한 아담한 크기의 목조건물로서 맞배지붕이다.

본래 7㎡ 남짓한 함석지붕이던 것을 최근 당집을 개축하여 기와를 얹었다. 예전의 건물에는 출입문 위에

「전공사당기(田公祠堂記)」가 걸려 있었다. 사당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는 갈당으로 불리는

산제당이 있으며, 그 동쪽에는 ‘김서방바위’, ‘뼈 묻는 바위’, ‘전횡장군놀던바위’가 있다.

 

역사

전횡장군사당은 일제강점기 때 처음 건립되었다. 1936년에 사당을 창건하면서 기록한 「전공사당기」에는

전횡의 이력과 그를 신으로 모시게 된 사연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사당기에서 알 수 있듯이 전횡은 외연도와의 연고성(지역성)과 죽음을 불사한 의로운 삶이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외연도에서 풍어의 신으로 좌정할 수 있었다. 1967년에 설문조사한 보고서의 ‘중국에서 역적으로 온

선언[전횡] 장군이 왔다간 것을 추모’하기 위해 당제를 지낸다는 짤막한 유래담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전횡 장군의 신격화는 보령의 ‘유격장군청덕비’에서 나타나듯이 조선 초기의 오랜 관행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별도의 사당이 없어 단지 제단을 당으로 삼아 제를 지내 오다가 1936년에 비로소 전횡장군사당을 짓고

신위를 모시게 된 것이다. 당시 사당 건립을 주도한 사람은 외연도에 거주하는 남궁운선(南宮云先)·

최문일(崔文日, 1866~1942) 등 10명이 기록되어 있다. 최문일은 1936년 당시 70세의 고령이었다.

또한 10명 가운데 8명은 주로 어업에 종사한 외연도 주민이고, 2명은 어업조합의 간부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령외연도전횡장군사당 [保寧外烟島田橫將軍祠堂]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본래 외연도에서는 전횡 장군을 풍어신으로 모시기는 했지만 신당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독지가들이 뜻을 모아 1936년 사당을 짓고 한문으로 된 ‘전공사당기’를 벽에 걸어 놓았다.

 

公姓田諱橫也.. 공의 성은 전씨요 휘는 횡이다.. *휘(諱)란.. 원래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이름을

삼가 부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후에는 생전의 이름 그 자체를 휘라 일컫게 되었다.

 

田公祠堂記


公姓田諱橫也古齊之公族也

공의 성은 전 씨요 이름(諱)은 횡이다. 옛 제나라(齊)의 신분이 높은 집안의 사람(公族)이었다.


當漢興齊亡之時義不屈節與五百人入居于滄海國之半洋山矣

갑자기(當) 한나라가 흥하고 제나라가 멸망(亡)할 시기(時)에 의로운 도리(義)로 절개를 굽히지 아니하고(不屈節),

오백여 명과 더불어(與) 창해국(滄海國; 고대 중국의 동방에 있었던 나라)의 반양산(半洋山)에 들어가 살았다(入居).


漢恐其爲後患遣使招之

한나라가 뒷날의 화근(後患)을 두려워(恐) 하여 사신(使)을 보내어(遣) 부르자(招),


公不得已與二客至洛陽自刲于霜花店嗚呼

공은 하는 수 없이(不得已) 두 사람(二客)과 함께(與) 낙양에 이르러(至)

상화점(霜花店)에서(于) 스스로 베니(自刲).. 오호라~ 슬프도다(嗚呼)! 


公之赴招實非畏漢之威也使島中之人免其兵禍也

공이 부름(招)에 나아간(赴) 것은, 실은(實).. 한나라의 위세(威)가 두려워서(畏)가 아니라

섬에 있는 사람들의 사신(使)으로서 혹여(其) 병화(兵禍)가 생길 것을 막고자(免) 함이다.


二客亦不受漢爵作薤露歌穿公之塚傍而死

함께 간 두 사람(二客) 역시(亦) 한나라의 벼슬(爵作)을 받지 않고(不受)

공의 무덤 옆(塚傍) 구덩이(穿)에서 해로(薤露; 옛 중국에서, 장례식 때 부른 노래)를 부르다(歌) 죽었다.


島中五百人與島樹同日同死于萬古之所未聞也

섬에 있던 오백 명과 더불어(與) 섬의 나무(島樹)도 같은 날(同日)에 같이 죽었(同死)으니(于),

세상()에 비길 데가 없는(萬古) 이러한 곳(所)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聞) 아니(未) 하였다.


公之恩義胡至此極乎雖西山之採東海之蹈亦不踰

공의 의리와 은혜로움(恩義)이 어찌(胡) 여기에(此) 다다르지(極) 않으리오(乎)

아무리(雖) 서산(西山; 북경에 있는 산)을 고르고(採), 동해(대만과 중국 본토 사이의 타이완 해협)로

떠나가려(蹈) 하였으나 역시(亦) 넘어가지(踰) 못(不) 하였다.


此矣半洋山乃今之外烟島也

이리하여(此矣) 반양산(半洋山)에서 뜻밖으로(乃) 지금의(今之) 외연도(外烟島)에 이르게 되었다(也).

 

至于今數千載尙未建祠但以石臺爲享神之堂矣

여태까지(至于今) 수 없이(數千) 떠받들어야(載) 하나 오히려(尙) 사당도 세우지(建祠) 아니하고(未),

다만(但) 너른 바위(石臺) 하나로 신께 제사하는(享神) 당(堂)을 삼았다.

 

居民服其節義感其神明斫伐樹木始建廟宇設牲以祭

주민(居民)들이 그러한(其) 절개와 의리(節義)를 따르고(服) 그러한(其) 정신(神明)을 깨닫자(感) 

나무를 베어(斫伐) 사당(廟宇)을 짓기(建) 시작(始)하고, 제(祭)를 지낼 희생(牲)을 마련(設)하였다.


公之精靈宛然在上豈不盛乎豈不敬哉

공의 혼백(精靈)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宛然) 위에 머물러 계시니(在上) 

어찌 음식을 높이 차리지(盛) 않을 것이며, 어찌 공경(敬)하지 않으리오

 

繼而銘之曰

이어(繼而).. 잊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길 것(銘)을 이른다(曰).

 

一片孤島萬古義魂海若聽令巨靈守閽

한 조각(一片)의 외로운 섬(孤島)에 오랜 세월(萬古) 떠도는 의로운 넋(義魂)을

바다귀신(海若)이 알아듣고(聽), 큰 신령(巨靈)으로 하여금 지키게(守閽) 하니(令),


魚龍古窟風浪不壹居民致富水産盛繁

오래된 굴 속의 물고기와 이무기 등(魚龍)이 바람과 물결(風浪)을 막아주었으며, 

주민(居民)들은 힘을 합쳐(壹) 잘 살게 되고(致富), 물고기가 많이 잡히었다(盛繁).

 

百世欽仰永尊香罇

이에, 대대손손 길이길이(百世) 공경하여 우러러보고(欽仰),

오래도록(永) 향을 피우고(尊香) 술(罇)을 올리기 이르노라.


丙子十一月日  병자십일월일 (1936년 11월 일)

南宮云先 · 崔文日.. (남궁운선, 최문일 등 10명)       -- 영월박삿갓 譯 --

 

*위 전공사당기(田公祠堂記) 우리말 풀이(譯)는..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상이(相異)하거나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음.

 

*계원필경 제20권에 주석에 半洋山(반양산)으로 칭한다 하는.. 嗚呼島(오호도)는 제나라 지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하니,
  半洋山(반양산)은 萊州洋山(래주양산)을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다. (*萊州 : 중국의 산둥성 라이저우)

*영화 '쌍화점(霜花店)'은 고려시대 이름으로 '만두집'이라는 뜻이다. 만두가 마치 꽃 같다고 생각해서 꽃花 자를 붙였다.

*조선시대까지 만두를 '상화(霜花, 床花)'라고 했으며.. 실제로 중국식 만두인 포자(包子)는 끝부분이 꽃 같기도 하다. *^^ 

 

 

사당 옆에는.. 시멘트 재료로 지어진 한 채의 작은 집이 있는데.. 전기가 가설되고 주위에 전등도 설치되어 있다.

이 집은 당제를 올릴 때 제수 음식 등을 준비하는 곳 같다. 오른쪽 옆으로 아궁이와 부뚜막 등이 만들어져 있다. 

 

 

이 건물은 당제를 마련하고 당주, 화장 등이 밥을 먹기도 하는 건물인데 특별한 이름이 없이 제당이라고 부른다.

*당주는 제주가 맡고 화장은 제물 준비를 책임진다. 화장은 일반적으로 배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당제 지낼 때는 시장을 보고, 지태를 잡고, 음식을 만드는 등 당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아래 제물 준비 사진 출처 : 보령시청 웹사이트 '제3장 민간신앙' 외연도 편

 

 

마을 주민이 당산에 모여 풍어와 안전을 위해 당제를 지내고, 띠배를 만들어 마을 앞바다에 띄우는

'풍어당놀이'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그. 역사가 벌써 400여 년을 이어져오고 있다고 한다.

(*외연도 당제는 2017년 12월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됐다.)

 

보령외연도당제 [保寧外烟島堂祭]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서 해마다 음력 2월 14~15일에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례.

외연도당제는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무장 전횡(田橫) 장군을 풍어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역사

외연도당제는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당제이다.

1598년(선조 31) 보령의 충청수영에 건립된 「유격장군청덕비(遊擊將軍淸德碑)」에 따르면

전횡은 이미 조선 전기에 풍어신으로 좌정하여 외연도당제의 주신격으로 치제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외연도 당산에 최초로 모셔진 신은 산신이고 전횡은 그 이후 어느 시점에 신격화된 존재라는 점을 상기하면,

외연도당제는 늦어도 조선 초기 또는 그 이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제나라의 무장으로서 재상의 지위에 오른 전횡은 유방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부하들과 바다로 들어가 섬에서 살았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936년에 건립된 「전공사당기」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데 당시 전횡이 피살될 것을 두려워하여

숨은 섬이 바로 외연도라고 구전되고 있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서산의 옛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전횡의 외연도 피신설은 이미 고려 말기에 식자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는 속설이었다고 한다.

실제 전횡이 은거한 섬은 외연도가 아니라 중국 산둥반도에 위치한 텐헝섬[田橫島]이다. 그런데도 세간에 외연도로 알려진 것은

지리적인 입지상 제나라와 긴밀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전횡은 한 고조인 유방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장수이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자결을 택하였다.

이러한 전횡과 그 부하들의 의로운 죽음은 연고지로 회자되는 외연도 주민들에게 해원(解寃)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이것은 곧 당제의 주신으로 모셔지는 단초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외연도에서는 음력 4월과 11월에 당제를 올리고, 8월에는 간단하게 노구제를 지냈다. 1970년대에는 세 차례 거행하던 제의를

4월 한 번으로 축소하였고, 1987년에 한때 중단되었던 당제를 부활시키면서 음력 2월 14일로 날짜를 고정했다가

2008년 행사부터 다시 2월 14일로 옮겼다.

 

내용

제장은 속칭 갈당으로 불리는 당산과 전횡장군사당, 음식을 준비하는 제당 세 곳으로 구성된다.

갈당에는 산제당, 전횡장군놀던바위, 김서방바위가 있다. 산 정상부에 위치한산제당은 커다란 바위 동쪽에 세개의 제단을

활모양[弧形]으로 배치하였다. 전횡장군사당에는 전횡장군신위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당산신위(堂山神位)와

도당신위(都堂神位)를 안치하였고, 오른쪽 선반에는 소저아지씨신위(小姐阿只氏神位)를 놓았다.  ... 이하 생략 ...

[네이버 지식백과] 보령외연도당제 [保寧外烟島堂祭] (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 2009. 11. 12.)

 

조선 중기부터 전횡 장군의 신명 어린 충절을 기리는 신당이 당산에 자리 잡았다. 해마다 음력 4월과 11월에 마을에서는

소 한 마리씩을 뭍에서 배에 싣고 와 당산에서 제를 지냈다. 그 소를 지태라 한다. 몇 해 전부터는 음력 2월 보름(15일)에

산제, 당제, 용왕제를 지내는 풍어당제가 크게 열린다. 170가구 마을의 안전과 풍어를 기리는 마을의 축제이다.

 

매년 음력 2월 15일 열리는 당제는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전통행사로, 풍어당제는 외연도 상록수림 내

전횡장군 사당에 장군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를 올리는 ‘당제’와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산제’, 용왕에게 제를 올리는

‘용왕제’로 진행하며, 당제를 지내는 동안 당주는 일체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당제에서 한복 3벌을 위패에 걸치는 것과

‘지태’라 불리는 소를 제물로 올리는 것은 다른 당제에서 보기 드문 전통이다.

한복 3벌 중 남자한복 1별은 전횡장군에게.. 여자한복 2벌은 그의 아내와 딸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외연도 당제의 특징은 역시 '소 받침'이다. 소를 신성스럽게 표현하여 '지태'라 부르는데, 이 지태를 잡아 피를 뿌린다.

당제가 열리면 특별히 정해둔 ‘지태 잡는 장소’로 소를 끌고 가 타살하는데, 죽은 고기를 바치는 제사와는 사뭇 다르다.

더러는 죽은 지태를 측은해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절 받고 죽는 소’라며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통념을 뒤엎는 의식이다.

 

희생으로 사용될 지태는 코가 뚫린 중소를 구입하되, 잡털이 박히지 않은 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지태를 구입하러 가는 장배에는 뱃머리에 '상(上)'이라고 쓴 흰색 당기를 부착한다. 

 

14일 저녁이면 옛 풍습대로 제주로 뽑힌 남자들만 신전에 올라 제사 준비를 한다. 이곳에서 당제에 쓸 소를 직접 잡는다.

당제가 남아 있는 섬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당산에 올라 직접 소를 잡아 바치는 곳은 아마도 외연도가 유일할 것이다

밤 12시가 지나고 나면.. 지태는 징소리를 신호로 지태의 정수리를 망치로 내려쳐서 잡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소는 육지에서 장배로 섬으로 데려와 사당까지 끌고 가 제사 직전에 도살해서 올린다. 제물 중 가장 귀한 것이다.

소가 쓰러지면 소의 생피부터 받는데 이 피는 바다에서 지낼 용왕제와 마을 안당 고사에 제물로 쓰인다.

(*이상 풍어당제 관련 자료 출처 : 인터넷 검색으로.. 지방신문 보도 내용 등 참조)

 

지금도 매년 음력 2월 보름에 당제가 열리는데.. 아궁이, 부뚜막, 고정틀, 큰 물통 등.. 지태를 잡고 제물을 준비하는 장소 같다.

 

 

※ 아래 제물 준비 사진 출처 : 보령시청 웹사이트 '제3장 민간신앙'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4호  보령 외연도 당제 (保寧 外煙島 堂祭) - 2017. 12. 10 지정

 

외연도 당제는 서해안의 외딴섬에 행하지는 마을 신앙으로, 매년 음력 2월 15일 거행되는 전통행사이다.

 

외연도 당제는 전통문화의 상징 요소가 다수포함되어 충남 해안의 민속신앙의 전형으로 볼 수 있으며, 당제, 풍어제,

전횡장군 사당제 등 여러 제향행사가 거행되며, 제물마련 절차, 도서지역만의 특색이 담긴 풍물소리 등이 특정이다.

이러한 제향은 유교식 축문 독축 없이 헌작과 재배, 무당의 고사덕담이 추가된 비유고식 제의 절차를 갖추고 있어

보다 민중적인 신앙 양상을 보여준다.

 

당제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외연도에 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행되었다고 추정하며,1970년대 이전까지는

연 3차례 거행되었으나, 이후 1987년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정월제사로 축소되어 복원되었으나

전통을 고수하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유 무형의 문화유산 요소를 갖춘 외연도 당제는 충남 도서지역을 대표하는 마을신앙인 동시에

한국의 민간신앙의 측면에서 볼 때 종교적 욕구의 변화 속에서 산신(山神)과 인물신(人物神)의 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앙자료이므로 한국 민간신앙의 보고(寶庫)로도 평가 할 수 있다.

 

※ 위 보령 외연도 당제 자료 및 아래 사진 4매는.. '오늘 블로그(네이버)' 자료를 인용하여 추가한 것임. 

 

풍어당제는 △노구제(산신께 밥 제사) △기미제(산신께 떡 제사) △전횡장군 제(치마, 저고리 3벌을 제단에 올리고

황소를 잡아 제를 올림) △제사터 제사(복지회관 앞, 본래 내려오면서 팽나무와 바위 등 4개소에서 지냄)

△용왕제 △길지분배(20척) △모형배(띠배) 퇴송 등으로 진행된다.

 

용왕제는 풍악이 신명나게 울리는 가운데 당주와 마을 유지들이 배를 타고 나가 다시 제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린 후에는 제사에 사용한 길지에 제물을 싸서 바다에 던지며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어 마을의 재액과 뜬 귀신들을 바다멀리 내 쫓기 위해 퇴송배(띠배)에 음식(잡귀들의 먹거리)을 실어 바다에 띠워 보낸다.

 

띠배

띠배는 볏짚 등으로 만든 모형의 배로 주로 해안 지역의 마을굿에서 볼 수 있는 무구이다.

우리에게는 위도띠뱃놀이에서 볼 수 있는 띠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남해안별신굿, 제주도의 영등굿,

추자도의 마을굿, 거제도 별신굿 등에서도 제의 마지막 과정에서 띠배를 바다에 띄워 보낸다.

우리와 인접해 있는 일본과 중국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띠배와 유사한 형태의 모형 배를 볼 수 있다.

 

띠배의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주로 띄배·떼배·짚배·퇴송배로 불린다.

이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띠배는 주로 짚으로 만들며, 마을의 좋지 않은 액을 실어 바다로 띄워 보내는 역할을 한다.

위도 지역에서는 제의가 끝날 무렵에 배를 바다에 띄워 보낸다는 의미로도 부르지만

띠배를 만드는 주 재료가 띠라는 식물이기에 ‘띠배’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띠배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신앙 편, 2010. 11. 11.)

 

 

 

*띠는.. 볏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가는 줄기 마디에 백색 긴 털이 있다.

 

 

 

※ 아래 사진은 2019년 3월 풍어당제에서 띠배를 띄우는 모습. (*당시 지방 신문 참조) 

 

 

사당이 있는 당산 정상 부위를 지나고 나면.. 깊은 숲속 길로 접어들고..

 

 

숲이 어두워 으스스할 정도로 울창하다. 당산 중턱에 군락을 이루는 상록수림은 지금은 팽나무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새롭게 들어온 동백나무가 우세해지기 시작하는 2차 천이(遷移)가 진행되고 있다.

상록수인 동백나무는 중국의 전횡장군이 이곳으로 들어와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나무이기도 하다.

*천이(succession, 遷移) :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 군집의 변화를 말한다. 

 

 

당제는 산제당에 노구메와 절편의 일종인 지미를 올리는 산제를 먼저 지낸다. 이어서 전횡장군사당에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등을 진설하고 산제와 동일한 절차로 사당제를 지낸다. 이와 함께 육류를 쓰지 않는 소산제(素山祭)인

산제와는 달리 사당제는 희생으로 지태(소)를 도살하여 부위별로 차례로 진설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과정이 자못 성스럽고 엄숙할 뿐만 아니라 섬마을 특유의 원형적인 희생의례(犧牲儀禮)의 성격이 잘 남아 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보령외연도전횡장군사당 내용 중 일부 발췌)

 

당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데.. 고기는 올리지 않고 밥, 떡, 김, 더덕 등 간단한 제물을 올린다.   

밥은 노구메를 올리는데..  노구메는 산천을 제사할 때 신에게 올리기 위하여 노구솥에 정성껏 새로 지은 밥이다.

*노구솥(壚口釜) : 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으로 자유로이 옮겨 따로 걸고 쓴다.

*당산에는 희생(犧牲)의 어느 부위도 올리지 않는다. 이는 산신제가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소산제(素山祭)이기 때문이다.

*희생(犧牲) 제사에 쓰이는 짐승, *牲(희생 생). 제사(祭祀)에 쓰는 소  *犧(희)는 색이 순수(純粹)한 것. (*한자사전 참조)

 

사당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떨어진 곳에는 갈당으로 불리는 산제당이 있으며, 그 동쪽에 ‘김서방바위’, ‘뼈 묻는 바위’,

‘전횡장군놀던바위’가 있다고 하는데.. 그냥 숲길로 스처 지나가며 보니.. 어느 바위가 어느 바위인지.. 잘 모르겠다. *^^

 

오랜 세월을 보여주는 커다란 바위를 지나며.. 양초가 놓여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도 터나 제단 등으로 쓰이던 바위 같다. 

 

 

※ 당산 정상 부분의 동쪽을 통칭하여 갈당이라 한다. 산신당은 큰 바위의 동쪽에 포장을 치고 3개의 제단을 호형(弧形)으로 

   배치하였으며, 각 제단은 상(床)만한 납작한 돌이 놓여져 있다. 이러한 제단을 주민들은 산신당이라고 한다.

   (*위 산신당 내용 및 아래 갈당 모습 및 제 준비 사진 등 출처 : 보령시청 웹사이트 '제3장 민간신앙' 일부 발췌하여 편집)

 

 

 

 

외연도 상록수림은 수백 년 된 동백나무를 비롯해 우리나라 남서부 도서의 다양한 식물들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3만 2295㎡(약 9700평) 규모의 상록수림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보리수나무, 식나무, 돈나무, 붉가시나무 등

난대성 상록수와 활엽수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된 이 숲은 나무 두 그루가 하나로 붙은

연리목이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하지만 이 연리목은 몇 해 전 태풍 곤파스에 부러져 끝내 말라죽었다고 한다.

 

나무 기둥 껍질이 하얗게..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 같은.. 오래된 키다리 나무(?)를 보고.. 신기한 듯 한참을 쳐다본다 *^^

 

 

데크를 따라 조금 더 걸어 가다 보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천연보호구역(天然保護區域)이라는 표지가 보이는데.. 숲의 보호구역 면적은 7만 3731㎡이다.

 

 

동백나무 열매

 
꽃이 없는 겨울에도 동백(冬栢)은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동백은 한자어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말입니다.

겨울에도 꽃이 핀다 하여 동백이란 이름을 붙었는데, 이 나무는 우리 나라 남부지방에 자라고 있으며,

우리 나라를 통하여 중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백을 중국에서는 옛날에 '해홍화(海紅花)'라고 불렀으며, 유서찬요에는 "신라국에서 온 해홍은 천산다로

12월에서 2월까지 매화와 동시에 꽃이 피는데 일명 다매라고도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태백시집주>에는 해홍화는 신라국에서 들어 왔는데 대단히 드물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중국은 식물에다 해(海)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해외에서 들어온 식물의 명칭으로, 수입식물이나

귀화식물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부산 금정구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는 교화(校花)를 산다화라고 지정했는데, 산다화 또는 산다(山茶)는

중국에서 동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산다화(山茶花)'는 중국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동백은 우리 나라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으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우리꽃인 동백을

중국사람들이 쓰는 '산다화'라고 부르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지요.

 

동백나무는 사계절 윤기 흐르는 진한 녹색의 잎이 변하지않는 데다 겨울에 꽃을 피워 옛사람들이 신비함을 느끼고

동백꽃의 아름다움에 도취했다고 합니다. 특히 동백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은 '동백기름'이었습니다.

살구만하게 열리는 동백 열매를 거둬 씻어 말리고 절구에 넣어 껍질을 부수고 키질을 하여 속살을 모으고

곱게 빻아서 기름판에 짜면 동백기름이 나옵니다.

 

동백기름은 맑은 노란색으로 변하지도 않고 굳지도 않고 증발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옛 여인들은 이 동백기름을

머릿기름으로 이용했고, 머릿기름 외에도 식용유·등유·약용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동백기름은

한국 여인의 머리를 맵시있게 해준 머릿기름으로 널리 애용되었는데, 동백기름을 바르면 그 모양새가 단정하고

고울 뿐 아니라 냄새도 나지않고 잘 마르지도 않고 때도 끼지 않아 머리 단장에는 중요한 필수품이었습니다. 

( 이새별 블로그 )

[출처] 동백나무 11 ( ? 동백나무 열매 )|작성자 강산예찬

 

 

팽나무 옆에 묘목장이 있고,. 외연초교 쪽 입구에 플래카드도 보이더니  당산에 동백나무 묘목을 심어 후계목을 조성하고 있다.

 

 

잠시 대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지나..

 

 

마을로 내려가다 보면.. 차가 다니는 길 옆으로 이정표가 있다. [.누적금/돌삭금 (190m,460m)↗, 당산 등산로(520m) →] 

 

 

마을 어귀.. 테마공원 부근에 있는 이정표.. [↖망재산/고라금(1.7Km/430m),  당산/누적금(450m/520m)↗]

 

 

09:50 망재산을 향하여.. '외연도 내연벌전소(도서지역 발전소)'쪽으로 가는데.. 파란색 큰 저장조(액젓)가 엄청 많다. *^^* 

 

 

발전소를 지나 포구 방향으로 조금 더 가니.. 액젓생산지 부근의 폐기물 야적 상태나.. 냄새가 심상치 않다. ㅠ,ㅠ

(*청정 도서지역인 외연도가 방치차량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통신도 보도되었음)

 

 

외연도 수산물은 멸치·장어·볼락·농어 등이 어획되며, 김 생산량이 많은 편이며,

특히 어획량이 많은 멸치를 가공한 멸치액젓과 우럭이 섬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강원도 산골 촌사람들인지라.. 바닷가 액젓 발효(?)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되돌아 나간다.

망재산은.. 이쪽으로 오지 말고, 발전소 오른쪽 샛길로.. 고라금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

 

 

외연도는 한때 서해어업 전진기지로 해마다 파시가 열리는 성황을 이뤘으나 지금은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다.

밤바다를 환하게 밝혀 보령8경으로 꼽혔던 어화(漁火)도 사라졌다. (*2015 충청신문 보도 내용 참조)

 

*파시(波市)는.. 풍어기에 열리는 생선시장으로.. 풍어기에는 어장(漁場)에서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거래가 이루어지던 지역(바다)을 파시(波市)라 하였다.

 

특히, 외연도는 가고 싶은 섬 시범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아름다운 섬 경관을 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연안여객선 선착장 앞까지 점거한 불법 어구어망으로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섬으로 전락해 가지고 있다. (*최근 보령신문 참조)

 

 

10:20 망재산은 못 가고 슈퍼로 다시 와서..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먹고, 캔 커피도 마시고.. 다시 힘을 내.. 해안선 트레킹이다.

 

 

대천항으로 가는 웨스트프론티어호의.. 오후 외연도 출항 시각은 16:05.. 시간도 많이 남았다.

 

 

소공원을 지나.. 바닷가로 이어지는 외연도의 해안선 길이는 총 8.7㎞... 가는데 끼지.. 천천히 돌아보자. ㅎ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

 

 

바닥에 떨어져 있는 트레킹주의 안내판.. 칠순기념으로 공룡능선을 종주한 우리 팀은.. 트레킹에 능숙한(?) 노인(?) 분들이다. ㅎ

약간 망설이게 만드는 안내판.. 그러나 실제 그렇게 험난한 코스는 아니고, 조금 조심하면 되는.. 풀이 우거진 산행 코스 정도다. 

 

 

10:55 해안선 트레킹을 시작하며.. 등산로 입구에.. 또 하나의 주의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곳은 뱀이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뱀은 경로(?)도 몰라보니.. 이건 좀 겁난다. ㅠ,ㅠ

뱀은 모르고 밟거나 건드리면.. 발뒤꿈치를 잘 무는 경향이 있으니.. 등산화는 필수다.

 

 

조심조심 올라가 보는데.. 등산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 풀도 깎아내고.. 괜찮은 것 같다.  

 

 

저기.. 노란 바다뱀이.. 깜짝 놀랬지만.. 뱀 보고 놀란 가슴.. 긴 줄만 봐도 겁난다. ㅠ,ㅠ

 

 

 다리도 새로 만들어 놓고.. 등산로를 보강하고 있는데..

 

 

외연도 주민들이 예로부터 나무를 해온던.. 좁고 험난했던 '지게길'을 다듬고 넓혀.. 다니기 편안한 등산로를 만들고 있어, 

예스러운 정취는 많이 사라졌지만.. 난간을 설치하고, 등산로도 넓히고, 오늘도 공사중으로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외연도는 2007년 완도 청산도, 신안 홍도, 통영 매물도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의 ‘가보고 싶은 섬’ 시범사업지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시범사업 덕에 외연도는 크게 달라졌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발길 닿는 곳곳마다

설치된 데크 산책로다. 전망 좋은 바닷가에는 어김없이 데크 전망대와 산책로가 설치돼 있어 다니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마당배를 거쳐 노랑배로 가는 길은 호젓하여.. 뱀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도.. 멋진 경치에 다 잊어버렸다. 

 

 

해양수산부가 아름다운 봄 꽃과 해안 절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봄에 가고 싶은, 꽃보다 아름다운 섬' 7곳을 선정했는데..

인천 옹진군 자월도, 충남 보령시 외연도, 전남 여수시 하화도, 전남 신안군 선도, 전남 진도군 관매도, 경남 통영시 연대도,

경남 통영시 수우도 등 7곳이다.

 

 

팽나무, 후박나무 등 우거진 숲은 깊어지고..

 

 

동백꽃 필 때면 경치가 더 아름답고 좋을 것 같은데.. 내년 봄 4월 초쯤.. 다시 와 볼까?

 

 

숲길을 벗어나.. 한 쪽으로 성터처럼 축대를 길게 쌓아 놓은 산책로.. 길이 좋은 편이다.  

 

 

12:10 꼬깔배 부근을 지나 암괴류가 만든 너덜길에서..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니.. 전속 모델이 그냥 갈 수 없다. ㅎ

 

 

넓적한 박석(薄石)을 깔아 만든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판판하게 가공한 정원석이 다니기는 편해도.. 자연스러운 멋이 없다.

 

 

봉화산 정상 갈림길 부근에.. 트레킹주의 안내판이 또 보인다. 

 

 

소공원 - 마당배- 현위치까지의 등산로는 외연도 주민들이 나무를 해오던 길로.. 비교적 험난한 코스라고 표시되어 있다.

 

 

조금 앞서가던 선두가 발길을 멈추고 뭔가 보고 있는데..

 

 

12:15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다. [봉화산정상 등산로(710m)↗].

 

 

밀뱀도 무서워 하는 대장이.. 무서워 못 가겠다며 그냥 가는데.. 결국, 살모사 새끼 한 마리 만났다.

다행히 새끼라 뱀이 먼저 도망간다.  *독사는 머리를 들고 서서 도망가지 않는 습성이 있다. ㅠ,ㅠ

 

 

조금 내려오면 데크 길이 있다. 정원석을 깔은 길 옆으로 평지에 길게 이어진 데크 길.. 자연스런 경관도 해치고.. 예산 낭비다.

 

노랑배 전망 데크로 내려가는데.. 앞으로 보이는 상투바위, 매바위.. 그 뒤로 대청도, 중청도가 보이는 바다 경치가 일품이다.

 

 

노랑배는 봉화산의 북서쪽 끝에 바짝 다가서 있는 외연도 해안의 기암절벽 이름이다. 해발고도 52m의 절벽 위에 설치된

전망 데크는 유람선의 뱃머리를 연상시키며.. 왼쪽으로 큰 명금, 작은 명금 돌삭금 등 멋진 몽돌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삭금 해안 쪽으로 이어져 나간 상투바위와 매바위.. 그 뒤로 청도(靑島)가 멋지게 조망된다.

노랑배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대청도와 중청도가 일몰과 어우러지면 더 멋질 것 같다.

 

매바위는 외연초교 뒤쪽의 고개 너머 작은 명금과 고라금 사이의 바다에 우뚝 솟은 바위로 매처럼 생겼고,

매가 서로 바라보는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독수리바위, 매배산이라고도 불린다. 

 

 

정면으로 고래를 닮았다는 고래바위가 보이는데.. 실제 이름은 머리에 쓴 관을 닮았다는 '관장도'이며, 

섬의 모양이 갓처럼 생겼기 때문에.. '갓 관(冠)'자를 사용하여 관장도(冠長島)라는 지명이 만들어졌다.

 

 

보령팔경 중 하나인 '외연도어화'는.. 안개 자욱한 외연도 주변에서 고기 잡는 배들이 밝힌 불들이 장관을 연출한다는 것으로,

외연열도에 떨어지는 환상적인 낙조풍경과 고깃배의 불빛이 빚어내는 어화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멋진 장면이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노랑배 절벽 아래로 유람선인가.. 승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절벽이 마치 커다란 노란 배의 뱃머리와 같아 '노랑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개인적 생각으로는.. 노란빛을 띠는 해안 절벽(벼랑,  비렁, 배랑, 배)이 뱃머리를 닮은 곳이다.

 

노란 뱃머리를 닮아 '노랑배'라면.. 마당배, 꼬깔배는 마당이나 꼬깔을 닮은 배가 된다. ㅎ 

'마당배'는 마당처럼 넓은 바위가 있는 절벽이고, '꼬깔배'는 꼬깔을 닮은 바위 절벽 같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노랑배,마당배, 꼬깔배..

 

 

노랑배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멀리 내려다 보이는.. 꼬깔배 부근 해안의 모습..

 

 

매배는 매바위 쪽의 바다로 튀어나온 바위 벼랑(배랑,배)을 일컫는 말이며, 매바위는 매배산이라고도 한다.

매배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된 기암은 상투바위매바위.. 그 사이로 보이는 중청도.. 중청도 뒤로 대청도..

 

 

상투바위는 상투를 튼 머리 모양의 바위로, 여인바위 혹은 중이 바람을 등지고 비는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중 둥글 빈대기 바위라고도 한다. 매바위는 두 마리의 매가 날개를 웅크리고 마주 앉은 모습의 바위이다.

 

 

*사진 왼쪽 위.. 대청도, 중청도.. (*위성 지도 출처 : 네이버 지도 ⓒNAVERCorp./SPOT/국토지리정보원 )

 

 

지도 왼쪽 바위섬이 중청도.. 오른쪽이 상투바위와 매바위.. .

.

 

*위성 지도로 보면.. 썰물때만 드러난다는 소청도가.. 매바위인 것 같다. 

 

 

노랑배 데크를 나서 명금 방향으로.. 박석((薄石)이 깔린 산책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예산도 많이 들었을 텐데.. 구태여 이렇게..

 

 

해안으로 내려가면 100m 전방에 큰 명금, 작은 명금, 돌삭금 등 몽돌해변을 잇는 섬 북부의 해안 산책로에 접어들게 된다.

길 아래 해변으로 내려설 수 있는 길은 작은 명금으로 내려서는 길. 작은 명금 북동쪽 큰 명금해안은 여인바위와 매바위

풍경이 다가온다.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형상이 뚜렷한 여인바위와 매바위의 형상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이상 자료 출처 : 보령시 문화관광홈페이지 > 이야기가 있는 여행 > 함께하는 여행3 > 외연도 둘레길)

 

 

12:45 박석(石)을 깔아놓은 산책로를 따라 돌삭금으로 바로 가다가 되돌아.. 명금으로 가는 길이 보여 내려가 본다. 

 

 

12:50 팽나무 그늘 아래.. 쉼터에서.. 여기 경치 좋다고 하니.. 덩달아 좋아한다. ㅎ

 

 

13:10 큰명금으로 내려가는 길.. 꿈에 그리던(?).. 바닷가로 다가선다. 

 

 

갯메꽃

해안사구의 대표적인 식물로 전국의 모래해변에 분포한다. 환경적응력이 높아 바위해변과 자갈해변에서도 자라며

모래해변에서 가까운 공터나 민가의 담장 등에서도 자란다. 염저항성이 강해 침수되었던 해변에서도 빨리 복원된다.

해안사구에서는 흔히 갯씀바귀, 사초류, 갯완두, 순비기나무 등과 섞여 자란다.

땅속줄기가 모래 속에서 옆으로 길게 뻗어나가면서 잎과 뿌리를 낸다. 대부분 지면 위로 줄기를 길게 뻗으며 자라나

낮은 높이까지는 위로 곧게 자라기도 하며,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가기도 한다. 잎은 메꽃과는 전혀 다른 두툼한 다육성이고,

대부분 작은 심장꼴이나 거의 둥근 모양도 있으며 잎맥이 선명하다. 가지나 줄기를 자르면 흰 액체가 나온다.

꽃은 메꽃과 같이 나팔꽃 모양인 분홍색이며 늦은 봄부터 피고 나팔꽃 열매와 비슷한 둥근 열매가 달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갯메꽃 (한국의 염생식물, 2013. 5. 27., 김은규)

 

'갯'자가 붙으면.. 바닷가(갯가)에 사는 식물이라.. 여기 핀 메꽃은 갯메꽃이다. 흔히 나팔꽃과 메꽃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꽃은 여러해살이풀이고, 나팔꽃은 한해살이풀이다. 메꽃은 한낮에 피고, 나팔꽃은 이른 아침에 피는 점이 또한 차이점이다.

메꽃과는 꽃으로는 구분이 어렵고.. 잎이 유난히 두껍고 윤기가 나며.. 잎의 모양이 뽀족한 살촉같은 메꽃과는 확실히 다르다.

 

 

큰명금으로 내려서니.. 작은명금, 돌삭금으로 멋진 해변이 이어지고.. 담쟁이덩굴이 바닷가 바위를 덮고 있다.

 

 

일행 한 명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어 보는데.... 다리 아픈 사람들은.. 바위 턱에 걸터앉아 바다만 바라본다. *^^*

 

 

외연도의 노랑배, 꼬깔배, 마당배 등 '배'는.. 뱃머리처럼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벼랑(절벽)' 같기도 하며,

명금, 돌삭금, 누적금, 고라금 등 외연도의 '금'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온 작은 '만'을 이르는 말 같다. 

 

만(灣, Bay, Gulf)은 아산만, 영일만, 순천만, 광양만 등과 같이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해안을 말하고,

곶(串, cape)은 호미곶, 간절곶, 장산곶(황해도) 등과 같이 바다 쪽으로 돌출된 육지를 말하는 것이다. *^^  

 

주민들이 해안 절벽을 따라 땔감을 구하고 낚시를 하러 다녔던.. 벼랑 길이 외딴 섬마다 만들어졌고,

바닷가 절벽인 '벼랑'이 해안가 지역에 따라 '비렁', '배랑'이라거나, '배', '애(崖)'라고 부르는 것 같다.

 

금오도비렁길도.. 순우리말인 '벼랑'의 사투리로 해안절벽과 해안단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다.

참고로 강원도 영월에서는 동강, 서강 등.. 강의 절벽을 '병창'이라고 하며, '뼝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지역에 따라.. 강의 절벽을 "배랑창'이라고도 하고, 절벽 위로 난 길을 '배랑길', '빼랑길'이라고도 한다.

 

'노랑바위절벽'→ '노랑배랑'이 발음하기 어려우니→ '노랑배'로.. '마당바위절벽'→ '마당배랑'→ '마당배'로,

'꼬깔바위절벽'→ '꼬깔배랑'→ '꼬깔배'로 되었나? 아니면, 외연도 바위절벽(배랑)이 모두 뱃머리를 닮았나?

 

또한, 청산도의 장기미해변을 이르는.. '장기미'의.. '기미'가 ‘금’의 방언 (전라, 충청)인 것을 감안하면,

햇빛에 반짝이는 몽돌들이 금처럼 보인다고 해서 '명금'이라기 보다.. '몽돌이 많은 기미'라 생각된다.

 

'금'이 반짝이는 금처럼 보여.. 금(金)이라면.. 돌삭금, 누적금, 고라금의 금(金)도 다 반짝거려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기미, 끄미, 금이, 금' 등의.. 행정 지명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금(金)으로 적은 것 같다.

 

▲ 사진 : 청산도 장기미해변 (*2010년 3월 청산도 트레킹시 촬영)

 

* 섬지방의 지명 등을 좀 더 알아보면.. *거금도(居金島, 전남 금산에 속하는 섬) 옛지명 참고

 잉기미(공고지와 익금 앞의 바다), 고라기미(상동 부락 뒤 고라금) *거금도에도 '고지', '금'이 있음

 청석금이(청석금).. 푸른 돌이 많이 있는 금이

 고라금이(신금).. 고라('소라'의 옛이름)금이로 추정됨.

*거금도 금진선착장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고라금해수욕장'이 있는데..

 간만의 차가 큰.. '금이'로.. 썰물 때 갯벌에서 조개·소라 등을 주을 수 있다.

 

외연도의 '고라금'도.. 고라(고동, 소라)가 많이 나는 바닷가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돌삭금'은.. 잔-돌이 많이 쌓이는 기미.. 돌쌓기미→ 돌싹금→ 돌삭금이라 한 것 같다.

 

'명금'은.. 몽돌이 많은 바닷가→ 몽돌기미→ 몽돌금이→ 몽돌금→ 몽금이라 하다가,

다시, 몽금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소리나는 그대로.. 명금(明金)이라 적은 것 같다. 

 

아니면, 몽돌이 금(金)처럼 반짝거려 밝아진다고.. 밝을 명(明).. 명금(明金)이라 했나?

앞에 있는 금이.. 앞금을.. 암금으로 부르다.. 어두울 암(暗)보다 밝을 명(明)으로 했나? 

 

'큰명금'은.. '작은명금'보다 몽돌의 크기가 커서 '큰명금'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뭔가 좀 그렇다.

몽돌이 있는 기미.. 몽돌기미(몽금).. 바다와 접할 수 있는.. 기미(명금)의 크기가 크고 작은 것 같다.  

 

지형이 튀어나온 부분을 '배', 바다가 육지 쪽로 들어온 작은 만을 '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바다에 접하기 어려운 바위 벼랑이 '배(배랑)'이고, 바다와 접할 수 있는 곳이 '금(기미)'인 것 같다.

 

하여간, 금, 금이, 끄미, 기미는.. 몽돌이든, 바위든, 사람이 바다와 접할 수 있는 바닷가 같고,

배, 배랑, 비렁, 벼랑은.. 바닷가 바위 절벽 등으로.. 사람이 바다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 같다.

 

(*이상 외연도의 '배'와 '금'에 대한 해석은.. 개인적인 추론이므로 확실한 근거는 없음)

 

기미, 금이, '금'을 한자로 쓰면 '金'이 되니.. 바닷가 기미의 '금'을 대부분 반짝인다고 풀이하여,

거금도 익금(益金)도 바다에서 해가 뜨면 마을 앞 모래에 햇빛이 반사되어 금빛이 난다고 한다.

 

거금도의 지명 유래를 찾아보면.. 조선 중기의 문헌에 ‘거억금도(巨億金島)’라고 기록되어 있어,

진막금·전막금·욱금·청석금·고락금 등의 마을 지명이 금광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거금도 동정(桐井) 마을은.. 산골 안에 금(金)이 매장된 마을이 있어.. 古羅金(고라금)이라 부르다가,

마을 앞 연못가에 오동나무가 있고, 그 밑에 있는 바위에 샘이 있어 동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고..

 

거금도의 명천(明川) 마을은.. 마을 앞으로 내(川)가 있어.. 앞내(前川).. 암(暗)내로 발음하다가,

마을에 어두운 일이 생긴다하여.. 행정구역 개편시 암(暗)자를 명(明)자로 고쳐 명천이라 한다. 

 

거금도(居金島)는.. 한자로 그대로 풀이하면.. '큰 금맥이 있는 섬'이지만.. 실제 금은 나지 않는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익금해수욕장 같은.. 큰 금이(금, 기미)가 있는 섬.. 큰금이섬.. 居金島이다. 

(*위 거금도 지명 유래에 관한 자료 출처 : 거금도닷컴 등 참조)

 

※ 관련 단어 사전 참조

*비렁 : [명사] [방언] ‘벼랑1(낭떠러지의 험하고 가파른 언덕)’의 방언(함경). (*국어사전 참조)
*배랑 : "벼랑"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병창; [명사} [방언]  ‘절벽’의 방언(강원). (*국어사전 참조)

*기미 : ‘금’의 방언 (전라, 충청)  *그미 : ‘금’의 방언 (전남)  *끄미 : ‘금’의 방언 (전남) (*국어사전 참조)

*崖(언덕 애) : 1. 언덕 2. 벼랑, 낭떠러지 *斷崖(단애) :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 (*한자사전 참조)

 

 

몽돌해변. 파도와 몽돌이 서로 쓰다듬을 때 쏟아내는 해조음(海潮音)이 시원하니 듣기 좋다.

몽돌은 다른 말로 모오리돌이라고도 하는데..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이다. (*국어사전 참조)

 

 

곶(串)이란.. 호미꽂, 간절곶 등과 같이 바다로 돌출한 육지로, 이어진 규모가 크면 반도라고 하며,

바다로 튀어나온 부분은 일컫는 말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곶(串)으로 곶이, 고지라고도 한다.

 

[cape, 串]

곶은 육지에서 바다를 향하여 돌출된 경우 붙여지는 이름이다. 규모상으로 보면 반도보다 다소 작다.

침수 해안의 경우는 물에 잠기지 않은 산줄기 부분이 곶으로 발달하여 아름다운 경관인 해식애를 볼 수 있으며,

그곳에 등대를 설치하여 항해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는 사취가 발달하여 바다의 돌출부로 자리잡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황해안에 ‘곶’이 들어간 지명이 많다. ‘곶’ 지명 중에 비교적 사용빈도가 높은 지명은 갈곶(갈고지)·돌곶(돌고지)·

배곶(배고지)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갈곶 또는 갈고지(갈구지)라 불리던 마을은 갈곶이(葛串里)·갈곶리(乫串里)·

갈화리(葛花里) 등의 행정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어원상으로 보면 곶이란 돌출은 의미하며, ‘곧’에서 변하였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지명으로는 장산곶·호미곶 등이 있다.

이 지역들은 반도의 끝 부분인 곳에 남아 있으며, 한자에서 곶(串)이라고 차용하고 있다.

본래 우리나라에서는 반도라는 말이 없었고 육지가 바다로 튀어나간 곳이면 ‘곶(串)’이나 ‘갑(岬)’과 같은 한자를 사용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端)·각(角)·취(嘴)·말(末) 등을 쓰기도 하였다. 옛 지명에서도 곶의 뜻이 들어간 곳이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곶 [cape, 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갈고지(葛串里) 등 지명이..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1913년 12월 29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적이고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안을 공포하고, 1914년 4월 1일부로 시행하였는데.. 이때 우리말이었던 지명이.. 한자로 무리하게 바뀌게 되었다.

 

만일 '곶의 안쪽'에 마을이 형성되면 '곶안'이 되고 오래 부르다 보면 고잔이 되고 한자로 고잔(古棧, 高棧)으로 표기하게 된다.
이를 '고단-역사가 오랜 마을' 또는 '오래된 잔교' 또는 '높은 잔교' 등으로 풀이하여.. 이름의 유래가 잘못 전해진 경우가 많다.

또 곶의 바깥쪽에 마을이 형성되면 곶밖이 되고 오래 부르다 보면 '꽃밭이 되는 바, 이를 다시 한자화 하여 花田(화전)이 된다.

만일 곶(고지,구지)에 배가 닿게 되면 배곶이 되고, 이는 다시 배꽃이 되어.. 한자로 이화(梨花).. 배꽃 피는 엉뚱한 마을이 된다.

 

 

망재산에 이국적 초원을 이룬 '고래조지'도.. 개인적 생각으로는 '고래고지' 또는 '고래곶'이 짓궂게 변한 말 같다.

길쭉한 초원 능선 아래.. 바닷가 절벽에 고래의 성기를 닮은 바위가 있어 '고래조지'라고 부른다지만.. 좀 그렇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예절을 중시하던 옛사람들이.. 이렇게 심한 말을.. 지명에 사용했을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당산도 있고, 피부정 방지를 위한 해막도 있고, 제물 만들때 근도 함부로 만지지 않았다는.. 외연도에서..


고래의 등같이 바다로 길게 뻗은.. 왼쪽 곶(串) 지형 전체를.. 고래곶이 → 고래고지 → 고래조지라고 불렀을 것 같다.

아래 사진이 고래조지 초원, 오른쪽이 그.. 바위라면.. 매바위, 상투바위처럼.. 바위만.. '고래남근바위'라고 해야 맞다. 

 

*곶(串, cape)은.. 곶이, 고지라고도 하며, 호미곶, 간절곶, 등과 같이 바다 쪽으로 돌출된 육지를 말하는 것이다.  

*해막은.. 주민들이 당산에 제를 올릴 때.. 임신부나 생리중인 여성들이.. 피신해 있던 산막(피막)을 말한다. *^^

 

 

*바다에서 바라다 본 망재산.. 고래곶(串).. 고래곶이.. 고래고지.. 고래조지.. 고래초지.. 과연 어떤 이름이 맞는 것인지..??

 

 

13:35 까무스름한.. 잔- 돌 쌓인 기미(금이, 금).. 돌삭금까지 둘러보고.. 경로(?)답게.. 뒷짐 집고.. 지팡이 짚고.. 마을로 Go..

 

 

몽돌해변을 나서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돌삭금 데크는 5면.. 내년엔.. 다섯 팀으로..? 분리수거 통도 있다. (*모기도 많다고 함)

 

 

14:30경 늦었지만 푸짐한 밥상.. 외연도에서 거래되는 해산물은 모두 자연산이다. 먼바다의 고도라서 양식장이 없기 때문이다.

 

 

출항후.. 여객선에서 바라본 외연도. 가까이 외연도의 봉화산과 망재산이, 그 뒤로 오도, 외오도, 외횡견도, 횡견도 등..

외연도는.. 청섬(대청도), 수수떡섬(수도), 밧갱이(횡견도), 느래(황도) 등.. 외연열도 중심에 자리한 주섬[主島]이다.

 

 

*외연도는 주변의 횡견도(橫見島)·대청도(大靑島)·오도(梧島)·수도(水島)·황도(黃島) 등과 함께 외연열도(外煙列島)를 구성한다.

 

 

제1열에는 대청도(大靑島)·중청도(中靑島)·외연도·수도(水島) 등이, 제2열에는 횡견도(橫見島)·외횡견도(外橫見島)·

외오도(外梧島)·오도(梧島) 등이 위치한다. 그 밖에 황도(黃島)·당산왕도·무마도(貿馬島)·석도(石島) 등이 산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외연열도 [外煙列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외연도▶대천 16:15 출항  웨스트프론티어호 *일반실(경로) : 13,500원

*웨스트프론티어호 : 총톤수 - 180톤, 선종 - 쾌속선, 여객정원 - 180명  

 

 

18:20 대천항 입항.. 배낭 하나 메고.. 배낭 하나 더 안고.. 텐트 가방 들고.. 휴..

 

 

20:30~21:30 저녁은 못 먹어도 온천은 해야 한다며.. 초정약수에 들렸다가..

22:00 증평 어느 분식점에서 야식 먹고.. 밤 12시가 다 되어서 영월 도착. ㅎ

 

 

※ 아래 NAVER 외연도 지도는.. 사진을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볼 수 있음.

 

 

 

*위 운항 시간표 출처 : 보령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섬 > 외연도 > 사진정보 - 일부 캡처

 

 

참고 사항  (*인터넷 검색 자료 참조)

 

외연도(外煙島) 전횡(田橫) 장군제(將軍祭)

 

이민족의 인신을 부락집단 신앙의 수호신으로 하여 그 신에게 그들의 생활안정을 의탁해 오고 있는 섬마을이 있다. 즉 옛날 제국의 전횡이라는 장군신을 봉안하고 그 신(神)에게 온갖 정성을 바쳐 그들의 안심입명을 기해 오고 있는보령시오천면 외연도리 주민들에게서 그러한 생활의 일면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민족신에게 집단생활의 안정을 의탁해 온 예가 전혀 없지않으나 충남지역내에서 흔치 않은 민간 생활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외연도는 충남의 도서중 내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섬이다.

 

근 100호의 가구에 5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이곳 당산의 동백수들로 천연기념물 제136호의 상록수림은 이 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여기 당산에는 산신단과 당사가 있어 주민들은 이 숲속 전체를 극히 신성시하여 왔다. 그리하여 6ㆍ25직후 이곳의 민속조사를 왔던 국립조사단원들 조차 이 숲속에 접근을 못하고 되돌아 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제는 주민들의 의식도 변해서 10년전 육지의 모인(서면 정면에 전횡장군신위의 위패가 보이고 그 곁에 전횡이 팔이라 일컫고 있는 소저아씨의 신위가 보인다.

 

그리고 좌우로는 당산신위 도당신위등의 위패가 보인다. 한편 이러한 신위의 면전을 스친 느림(왼새끼줄)위에는 여인의 저고리와 길지(창호지)가 걸려있고 그 아래에는 코티분을 비롯 나이롱, 머 리빗, 거울, 댕기 등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당내의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고 그속에는 수십점의 여자옷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원래 이곳의 당제는 4월 11월등 연 3회에 걸쳐 실시 되었으나 5년전부터는 4월제 한번만 을 거행해 왔고 이 제를 이곳 주민들은 전횡 장군제라 부르고 있다.

 

제일은 4월중 길일을 택하여 거행되며 늦어도 제15일전까지는제주를 선정해야 한다. 선정된 제주는 그날로부터 몸의 부정을 금해야하며 특히 제물을 만들때는 절대 부정한 일이 있어선는 안된 다 하여 해방전까지만해도 제물을 만들 때 소변을 보려면 나무젓가락으로 근을 꺼내 변을 보고 목욕을 해야 하였다 한다.

 

제의는 제일의 오전에 제주가 당산입구「하밭」이란 곳에서 몽둥이를 곁에놓고 당사를 향하여「미련한 인간들이 잘못하는 일이 많지 잘하는 일이 많겠으리까마는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하는「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 제주는 그 몽둥이를 들고 산신단으로 올라가 그 물로 단을 정결히 닦고 이어 사당으로 내려와 역시 동이의 물로 그곳을 깨끗이 닦아내면 이어 제물이 진설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초야에 산신제를 거행하고 자정이 되면 전횡장군제를 지낸후 다음날 새벽 하산길에 옛날 제물을 훔쳐먹고 즉사했다는 총각 김서방을 위하여 고기 한점, 떡 한쪽, 술 한잔을 부어 놓은 후 곧장 하산 하여 부락앞 해변의 방파제끝에와 용왕제를 거행한다.

 

용왕제가 끝나면 김밥 세덩이를 바다에 던지는 허식이 있고 이어 파제에 들어간다. 파제는 온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온종일 먹고 마시며 춤을 추고 노래하고 농악을 울려대는 즐거운 놀이로서 노소를 불 문하고 흥을 돋울 일이면 서슴없이 진행된다. 따라서 이 파제는 주민들의 가장 고대하는 년중행사이다. . (*이상 보령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외연도 전횡 장군제 자료 참조)

 

 

외연도 풍어당 놀이


종 목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 풍어당 놀이>외연도리에 전승되는 <서낭굿>이다. 약 300여 년 전 조선 중엽부터 마을 뒤 당산 동백수림 (천연기념물 제136호)내에 중국 제나라 전횡장군의 사당을 모셔놓고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섬주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당제를 올린 후 용황제와 함께 주민전체가 모여 화합을 다짐하는 행사이다. 전횡장군은 제나라가 한나라에 망하자 의로운 군사 500명을 이끌고 배를 타고 동으로 밀려오다 외연도에서 정착하게 되었고 당시 섬 주민들이 그들의 신명에 감동, 사당을 세우고 제를 지냈는데 그것이 풍어당 놀이로 발전을 했다.


외연도 풍어당 놀이는 300년 전부터 이 마을 뒷산 상록수림 속에 사당을 짓고 섬의 수호신을 모셔 매년 풍어와 섬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며 협동과 단합을 도모하고자 온 섬 주민들이 정성을 모
아 풍어당 놀이를 하고 있다.


대동회를 열어 기금을 마련하고 당주 1명과 화장 8명을 엄선한다. 당주는 제주가 맡고 화장은 제물 준비를 책임진다. 제물구입 날짜를 정하여 제물 구입 당일 화장이 모두 목욕재개하고 우물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봉한다. 이때부터 언행을 조심하고 해물을 제외한 고기를 먹지 못한다. 화장들이 우물에서 제사 때 쓸 물 2일분을 미리 길어다 저장하고 당주와 화장 6명 정도가 배를 정하여 제물을 구입차 보령에 나간다. 보령에서 1박 후 다시 목욕 재개하고 제물 구입하여 귀향 후 당주집에 보관한다. 다음날 목욕재개하고 제물 준비함에 있어 마스크를 쓰고 길어다 놓았던 물을 사용한다.


풍어당 놀이는 크게 산제, 당제, 유황제(풍어제), 용황제, 농악놀이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당제 첫날 오후 당주와 화장은 각종 제물과 한복 3벌(남1벌, 여2벌) 황소 1마리를 가지고 당산에 오르고
산 정상에서 예로부터 전하는 3곳의 돌제단에 불밭이 쌀을 놓고(3곳 중 중앙은 산신, 양쪽은 지신) 초를 꽂는다. 제단 뒤에 각각 나무를 꽂고 길지를 매놓고 전횡장군 사당에 내려와 옷 3벌을
제단에 올리고 촛불을 켠 다음 분향한다. 저녁식사 후 기미(흰떡)를 만든 다음 당주와 화장 2명은 목욕 재개 후 시루떡을 안치고 고두뫼(술밥과 비슷함)를 찐다. 노구쌀을 깨끗이 가려서 산제
장소에 가 젯밥을 한 후 김, 더덕나물을 같이 산신단에 올린다. 새벽 4시까지 쉰 다음(자기도하고 농악을 치며 놀기도 함) 당주와 회장이 목욕한 후 떡, 과일 등으로 산신제를 올리고 제를 올린 후 징을 세 번 울려 제가 끝났음을 알린다.


그 후 자태(황소)를 잡아 고기를 익혀 사당에 올리고 제를 지내며 산신단에도 고기를 올린 후 모든 당제 행사가 끝나면 식사를 한 다음 산신단 옆 바위밑에 소머리 1쪽, 족, 물골, 고기 일부를 넣어 놓고 하산한다. 당주는 입산 시부터 하산 시까지 금식을 해야 한다. 당산입구에는 선박에 사용하는 오색 깃발을 들고 선주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하산하는 당주 및 화장들과 합류하여 농악을 치며 같이 하산한다. 백사장으로 가면서 마을 중간 바위가 있는 4곳에 술을 따라 올린다.


유황제는 백사장에 제단을 마련하고 제를 올리고 산에서 가지고 온 제물을 사용하며 지태(소) 선지를 뿌린다. 선주들에게 당주가 길지를 나누어주면 선주들은 그것을 자기의 뱃기에 묶어 각자 자기 배로 달려가 꽂는데, 이때 1등하는 선주가 그 해 가장 많은 고기를 잡는다는 전설이 있다.


용왕제는 당주와 화장들이 선창 뒤 바닷가로 가서 제상을 마련하고 제를 올린 다음 길지에 제물을 3뭉치로 싸서(짐싼다고 함) 한 뭉치씩 바다에 던지며 "풍어를 기원합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한 후 준비한 띄배에 음식을 실어 바다에 띄운다.


안당제는 당주의 집 마당에 제상을 마련하고 제를 올리며 농악 및 여흥은 모든 제례가 끝나면 마을 주민이 한데 모여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풍어당놀이의 특징은 황소(코뚫은) 1마리를 제물로 쓰며 제물에 해물은 없고 쇠고기, 쌀, 고두밥, 흰떡, 시루떡, 더덕, 밤, 곶감, 대추, 약주 등으로 단순하고, 축문이 전해 내려오지 않아 축문이 없이 제를 지낸다.


섬마을에 대동회를 개최하여 마을 어른 중 흠이 없고 품행이 바른 자를 매년 엄선하여 당주로 뽑고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마을 축제로 마을 사람 전체가 재현행위자가 되며 주민의 결속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섬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고 지역특성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주민의 화합과 결의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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