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부 관아 (寧越府 官衙)

박삿갓의 여행 이야기 2023. 9. 26. 15:00

영월부 관아(寧越府 官衙)는 조선 시대 영월부의 행정관청으로,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 1441~1457)이 비극적인 짧은 생을 마감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었던 객사(客舍)와 누각 건물인 자규루(子規樓)가 남아 있다. 객사는 1396년(태조 5)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1791년(정조 15)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익헌(西翼軒, 정청의 좌우에 날개처럼 잇댄 건물), 중앙 정청(正廳, 관아에서 중심이 되는 본관 건물), 동익헌(東翼軒)이 일렬로 배치된 구조로, 특히 동익헌에는 ‘관풍헌(觀風軒)’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1457년(세조 3)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홍수가 나자 처소를 옮겨 관풍헌(觀風軒)을 침전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단종은 같은 해 10월 사약을 받고 관풍헌(觀風軒)에서 승하하였다고 전해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인 자규루(子規樓)는 원래 명칭이 ‘매죽루(梅竹樓)’였다.

*월중도 (越中圖) : 영월(寧越)에 남겨진 단종(端宗, 1441∼1457)의 유배지 자취와 당시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8폭으로 꾸민 화첩.
(*월중도 관련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월중도』는 「장릉도(莊陵圖)」, 「청령포도(淸泠浦圖)」, 「관풍헌도(觀風軒圖)」, 「자규루도(子規樓圖)」, 「창절사도(彰節祠圖)」, 「낙화암도(落花巖圖)」, 「부치도(府治圖)」, 「영월도(寧越圖)」 등 총 8폭으로 그리고, 각 화면의 우측 상단에 관련 지지(地誌)를 기록하였다.

*제7폭 「부치도」는 관아와 창절사, 관풍헌, 자규루를 중심으로 한 영월부의 치소(治所)를 그린 회화식지도이다. 제8폭 「영월도」는 영월부의 치소를 중심으로 영월 경내의 지리적 형세를 그린 지도이다. 해당 화면의 지지에는 민호(民戶)는 2,635호로 남자는 4,387명이고, 여자는 4,563명으로 기록하였다.

제3폭 「관풍헌도」는 단종이 1456년 이후 거처하다 이듬해 사약을 받고 숨진 관풍헌의 건축 도면이다. 관풍헌은 객관인 나성관(奈城館)의 우측에 있으며, 1791년(정조 15) 영월 부사에 의해 대규모 중수가 이루어졌다. 

제4폭 「자규루도」는 관풍헌의 동남쪽에 있는 누각인 자규루를 그린 것이다. 자규루는 1605년(선조 38) 홍수에 의해 무너져 유실되었으나, 1791년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매몰된 자규루의 터를 찾아 중건하였다.

*영월부 관아(寧越府 官衙)는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영월 객사와 관풍헌 및 자규루가 있던 터이다.
 2015년 9월 25일 문화재 지정 예고를 거쳐, 2016년 3월 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34호로 지정되었다.

*객사(客舍) 건물군(群)의 기본 구성은 정청, 동익헌, 서익헌, 내삼문, 외삼문 체제이다.
 정청(正廳) : 전패를 모신 공간이다. 객사 본청 건물의 중앙부이며, 전청(殿廳)이라고도 한다.
 동익헌(東翼軒) : 객사 본청의 왼쪽 건물이다. 문관(文官) 관원의 숙박 용도로 활용되었다.
 서익헌(西翼軒) : 객사 본청의 오른쪽 건물이다. 주로 무관(武官) 관원의 숙박 용도로 활용되었다.
 내삼문(內三門) : 객사 정문에서 객사 정청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있는 문이다.
 외삼문(外三門) : 객사 정문이다. 객사 위치 또는 규모에 따라 내삼문과 비슷한 솟을삼문 형태로 건축되거나
 한층 규모가 큰 2층 문루(門樓) 형태로 설치되었다. (*객사 자료 위키백과 참조)

*전패(殿牌) : 임금을 상징하는 ‘殿’ 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세운 나무패. 공무(公務)로 간 관리나 그 고을 원이 절을 하고 예(禮)를 표시하였다.
*솟을삼문 : 세 칸이 맞배지붕의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좌우 대문보다 한 단 높게 세운 대문.

영월부 관아 객사는 정청(正廳)인 내성관(奈城館), 서익현(西翼軒)인 망경헌(望京軒), 동익헌(東翼軒)인 관풍헌이 나란히 붙어 있다.
현재 중앙 건물인 정청(正廳)에 약사전(藥師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조계종 보덕사에서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는 것 같다.

*지규루(子規樓)는 관풍헌(觀風軒)에 머물던 단종이 이곳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시(자규시)를 읊었다고 하여 ‘자규루(子規樓)’라 불리게 되었다. 2013년과 2015년에 시행된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박석시설, 내삼문 터를 비롯하여 객사 건물로부터 내삼문 터에 이르는 보도시설과 관풍헌으로부터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시설 등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영월부 관아는 조선 후기에 고쳐 지을 당시의 터와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운의 왕 단종의 애달픈 삶이 전해지는 역사적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관아 배치 : 우측인 서쪽부터.. 서익현, 정청, 관풍헌(동익현), 입구인 남쪽부터.. 외삼문, 내삼문(지)

*관풍헌(觀風軒)은 1392년(태조 1)에 건립된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지방 수령들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건물이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한 곳이 관풍헌 앞마당이다. 현재 보덕사 소유로 되어 있으며 포교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觀風 : 1. 사태를[상황을] 살피다. 전망하다. 2. 풍속의 좋고 나쁨을 살피다.
*軒 : 창문이 있는 복도 또는 작은 집. (*중국어사전 참조)

※ 영월부 관아 (관풍헌) 정문인 외삼문 입구  (*현재 안쪽 문인 내삼문은 터만 남아 있음)
*한국건축에 있어 문은 단순히 평면적인 문짝이라기 보다는 공간적인 문간(門間)의 성격을 가진다.

*자규루는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잠시 지내던 곳이다.
*자규루 및 관풍헌(子規樓 및 觀風軒)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 누각은 매죽루(梅竹樓)라고 하였으나, 단종이 이 누각에서 외롭고 슬픈 심정을 자규시에 담아 읊었던 것이기에 자규루라고 부르게 되었다.

※ 단종의 그 유명한 어제시(御製詩)는 아래와 같다.

子規詞 (자규사)
月白夜蜀魂啾     달 밝은 밤에 두견새 울어
含愁情依樓頭     시름겨운 사람 다락에 기대었소
爾啼悲我聞苦     네 울음소리 하도 슬퍼 내 듣기 괴롭구나
無爾聲無我愁     네 소리 없다면 내 시름 잊으련만
寄語世上苦榮人  이 세상 괴로운 이에게 이르니
愼莫登子規樓     행여 춘삼월에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子規詩 (자규시)
一自寃禽出帝宮     원한 맺힌 새 한 마리 궁궐을 떠나오니,
孤身雙影碧山中     외로운 몸 그림자 하나 산속을 떠도네.
假眠夜夜眠無假     잠시 졸 뿐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窮恨年年恨不窮     해마다 쌓인 한 원통함을 풀 길이 없네.
聲斷曉岑殘月白     소리 그친 새벽 산봉우리 남은 달빛은 희고,
血流春谷落花紅     피 흐르는 듯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이 붉네.
天聾尙未聞哀訴     하늘도 귀먹어 애달픈 하소연 듣지 못하고, 
何乃愁人耳獨聰     어찌하여 시름겨운 사람 귀에만 들리는가?

*孤身隻影 「외로운 몸과 하나의 그림자」라는 뜻으로, 몸 붙일 곳 없이 떠도는 외로운 신세(身世)를 이르는 말
*假眠 : 잠시 졺  *年年 : 해마다  *殘月 : 1. 새벽의 희미(稀微)한 달. 2. 거의 져 가는 달  *哀訴 : 슬프게 하소연함

※ 위 子規詩 (자규시) 풀이(譯)는.. 한자사전 등을 참조한 개인적 견해로, 기존의 해석과 상이(相異)할 수 있음.

두견이 little cuckoo, 杜鵑   뻐꾸기목 두견과의 중형 조류
우리말로는 접동새라 하고, 한자어로는 두우(杜宇)·자규(子規)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에는 소쩍새라고도 되어 있는데, 소쩍새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로
두견이와는 그 생김새가 다르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견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졉동새
접동새는 졉동새(『두시언해(杜詩諺解)』, 1481년), 졉동이(『신증유합(新增類合)』, 1576년), 자규(『청구영언(靑丘永言)』, 19세기) 등으로 나타나다. 접동새의 슬픈 울음소리는 계모의 구박을 받다가 죽어서 우는 누이의 울음이고, 우렁각시를 뺏긴 총각이 접동새가 되어 우는 소리이다. 접동새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한(恨)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가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고려 정서(鄭敍)의 〈정과정(鄭瓜亭)〉에는 “내 님을 그리사와 우니나니 산접동새와 난 비슷하요이다.”라고 하여 유배지에서의 외로운 신세를 산접동새에 비기어 노래하고 있다.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에도 자규가 등장한다. 한편, 접동새와 비슷한 것으로 소쩍새가 있는데, “소쩍소쩍.” 하고 주로 밤에만 운다. 소쩍새와 관련해서는 적은 솥에 많은 식구들의 밥을 짓느라고 갖은 고생을 하지만 구박만 하는 시어머니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죽은 며느리의 혼이 “솥적 솥적.” 하고 우는 소쩍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접동새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자규루[子規樓]
자규루(子規樓)는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과 『매산집(梅山集)』에 의하면 1428년(세종 10) 영월군수 신권근(申權根)이 창건한 것으로 처음에 이름은 매죽루(梅竹樓)였다. 그 후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어 누각에 오르기도 하고 자규시(子規詩)를 지은 바도 있어서 누각의 이름을 자규루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자규루는 허물어지고 민가가 들어섰는데, 1791년(정조 15) 강원도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이 자규루를 중건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규루 [子規樓]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지규루(子規樓)는 관풍헌(觀風軒)에 머물던 단종이 이곳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시(자규시)를 읊었다고 하여 ‘자규루(子規樓)’라 불리게 되었다. 2013년과 2015년에 시행된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박석시설, 내삼문 터를 비롯하여 객사 건물로부터 내삼문 터에 이르는 보도시설과 관풍헌으로부터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시설 등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영월부 관아는 조선 후기에 고쳐 지을 당시의 터와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운의 왕 단종의 애달픈 삶이 전해지는 역사적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중앙로 61 (영월읍, 관풍헌)

'박삿갓의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 금강정(錦江亭)  (0) 2023.10.12
영월 월기경춘 순절비  (0) 2023.10.01
수승대 명명시(命名詩)  (0) 2023.01.02
거창 수승대  (0) 2022.12.30
2020 경자년 해맞이 (울진 나곡바다낚시공원)  (0) 2020.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