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수로부인헌화공원

박삿갓의 여행 이야기 2019.01.05 17:00

삼척 임원항에서 기해년 해맞이를 하고.. 내친김에 수로부인헌화공원을 돌아본다.

 

朴笠

 

수로부인 헌화공원 (남화산 해맞이공원)

임원항 뒤편 남화산 정상에 위치한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헌화가'와 '해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이다.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 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꺾어다가 바치고, 가사를 지어 바친 것이 4구체 향가인 '헌화가'다.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갔는데,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자

다시 수로부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신라가요인 '해가'다.

 

공원에는 이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조성돼 있다. 이와 함께 산책로, 데크로드,

전망대, 쉼터 등이 갖춰져 있어 탁 트인 동해 바다의 비경을 감상하면서 걷기 좋다.

 

공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수로부인 상은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중량500t에 달하며, 천연 돌로 조성돼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천연오색 대리석 조각상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바다풍경이 장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로부인 헌화공원 (남화산 해맞이공원)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9년 1월 1일 임원항에서 일출을 보고..  울진에서 아침 식사 및 온천.. 다시 임원으로 왔다. ㅎ

임원 삼화산해맞이공원 표지석이 있는.. 산책로 계단 입구는 열려 있으나..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11:20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로 하고.. 매표소 쪽으로 향한다.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된 51m 높이의 엘리베이터로,

동해 바다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삼척시 발행, 수로부인헌화공원 리플릿 내용 참조)

 

 

국가유공자 무료에, 영월군민 65세 이상 감면하니.. 입장료 1,500원이다. ㅎ

 

- 관람시간 : 09:00~18:00(하절기 3~10월), 09:00~17:00(동절기 11~2월)

- 정기휴무 : 매월 18일 (18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다음 평일)

- 주소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항구로 33-17  *문의 : 033-575-1330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바로 내려다보니..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경치인데.. 해안선은 울타리로 막아져 있다.

 

 

임원항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그만이다. *^^ 

 

 

 맑은 하늘에.. 대나무 잎은 싱싱하고.. 선명한 수평선에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 이색적인 엘리베이터.. *^^

 

 

엘리베이터에서 구름다리 통로를 건너오면.. 데크 산책로가 시작된다. (*공원까지는 약 490m) 

산책로를 따라 공원으로 가다 보면 200m 전후로 쉬어갈 수 있는 바다전망대가 있다. (*2개소) 

 

 

동해 바다.. 이름만 들어도 좋은데.. 탁 트인 바다에 흰구름 흐르는 수평선.. 말이 필요 없다. *^^ 

 

 

바다전망대  동해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곳으로.. 산책 중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첫번 째 전망대에서 공원 정상까지는 약 330m 거리로.. 데크도 있고, 야자매트 위에 고무판을 깔아 놓았다.

 

 

파아란 하늘 아래.. 수로부인상이 조금 멀리 보인다. *^^

 

 

수로부인상(像)  신라시대 절세미인인 수로부인을 오색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초대형 조각상이다. (*공원 리플릿 내용)


 

눈부신 태양에 역광이니.. 수로부인 얼굴을 감히 볼 수가 없다. (*촬영 후 역광 보정함)

 

 

수로부인상은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무게 500톤에 달하는 초대형으로, 5가지 색상의 천연 대리석을 구할 수 없어,

중국에서 2년 정도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용암석재 · 중국화봉성석재)  *석상 아래 전면 벽화는' 강릉태수 행차도'가 그려져 있다.

 

 

수로부인상은 용 위에 앉아 바다에서 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석상 아래 석판의 벽화는 '해가 부르는 군중"이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편(紀異篇)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실려있는 해가(海歌)

 

衆人唱海歌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중인창해가사왈 :「귀호귀호출수로. 략인부녀죄하극. 여약패역불출헌. 입망포략번지끽.」

이때 여러 사람이 부르던 해가의 가사는 이러했다.「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공원 안내 리플릿 및 안내판 등에 노래 제목이..)  해가(海歌) 또는 해가사(海歌詞)라고도 되어 있는데..

 

海歌詞曰 풀이는.. 해가사는 이러하다[가라사대 왈(曰)]..보다는, 해가의 가사(詞)는 이러하다.. 같다.

노래 제목을.. 해가(海歌) 또는 해가사(海歌詞)라고 하는 것보다.. 해가(海歌) 한가지로 하면 좋겠다.

 

*曰 (가로 왈) : 1. 가로되, 말하기를 2. 이에 3. 일컫다, 부르다 4. 이르다, 말하다 5. ~라 하다

*詞(말 사, 글 사) : 1. 말, 말씀 2. 시문(詩文) 3. 문체(文體)의 이름 4. 글, 문장(文章)

 

龜乎龜乎出水路  (귀호귀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  (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  (여약패역불출헌)   네 만약 거슬러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  (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龜(거북 귀, 땅 이름 구, 터질 균) : 1. 거북  a. 땅의 이름 (구) b. 나라의 이름 (구) c. 터지다 (균) d. 갈라지다 (균)

※ 거북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로... [龜甲文子(귀갑문자), 龜頭(귀두), 龜船(귀선); 거북선] 등에는 '귀'로, 

    나라 이름, 지명 이름 등에는 '구'로 적는다. [구미시(龜尾市), 龜浦(구포),  龜州(구주); 구주, 땅이름]

    龜裂(균열) : 거북의 등에 있는 무늬처럼 갈라져서 터지는 것.. 등에는 '균'으로 적는다.

*乎(어조사 호) : 1. 어조사(語助辭) 2. ~느냐? 3. ~랴! 4. ~겠지? 5. ~도다.. 8. 아!, 감탄사=呼(부를 호) 

*掠(노략질할 약), *婦女(부녀) : 남의 아내가 된 여자 *何(어찌 하, 꾸짖을 하) : 1. 어찌 2. 어느.. 5. 얼마,

*極(극진할 극, 다할 극), *汝(너 여), *若(같을 약, 반야 야) : 만약(萬若), *悖(거스를 패), *逆(거스릴 역),

*獻(드릴 헌) : 1. 드리다 2. 바치다, *入(들 입), *網(그물 망), *捕(잡을 포), 掠(노략질할 략),

*燔(불사를 번) : 1. 불사르다(불에 태워 없애다) 2. 태우다 3. 굽다 4. 말리다.  *之(갈 지), *喫(먹을 끽)  

  (*이상 한자사전 참조)

 

※ 喫(마실 끽, 먹을 끽) : (字源) 입 구(口와 맞출 계(契)를 합친 자로,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플 때 

   그 입(口)에 맞추어(契) '먹거나' '마신다'라는 뜻으로.. 먹을 끽(喫) 자의 음(音)이 압권임! ㅎ

 

*내놓다 : 2. 붙잡아 두었던 사람이나 짐승 따위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다. (*국어사전 참조)

*'앗다' : 빼앗거나 가로채다,  *네 : ‘너’에 조사 ‘가’ 가 붙을 때의 형태. *어원 <석보상절(1447)>←너+-이)

*'어기다'는 규칙, 명령, 약속, 시간 등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

 '거스르다'는 윗사람의 말이나 가르침, 명령 등을 어기고 다르게 행동하다라는 뜻.

*거스르-어 ㅡ> 거슬러 : 어간에 있는 'ㅡ'가 탈락하고, 어미 '-어'에 'ㄹ'이 첨가되는 

  음운현상이 '르 불규칙 현상'  (*국어 용어사전 참조)

*【어원 : <거슬다<용비어천가(1447)>】 [고려대한국어대사전 : 1.(사람이 형세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그에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다. 2.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않고 그에 반대되는 방향을 취하다]

 

 

수로부인상 뒤편 전망대 쉼터.. 드넓은 동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

 

 

저 아래 해안절벽 쪽으로.. 희게 보이는 뽀족한 것은.. 작은 무인등대이고.. 하늘빛을 담은 바다는 더 푸르러진다. *^^

 

 *참고 사항
 임원항등대 : 임원항 북쪽 해안절벽 맨 끝자락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무인등대로 임원항 인근의 항로표지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쪽 바로 아래의 바위는 대왕바위라고 불리는 곳으로

 꽤 유명한 낚시 포인트이다.

 이 등대는 임원항에서 들어갈 수 있는 수로부인 헌화공원 쪽에서

 조망은 가능하나 등대 자체는 해안경계부대의 작전지역 내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일반의 접근은 불가능하다.

 (*인터넷 검색으로.. '리브레 위키' 자료 참조)

 

 

바다에서 나온 수로부인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석상 아래 측면 석판의 벽화는 '수로부인 귀향도'가 그려져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용 위에 앉아 있는.. 수로부인의 얼굴을 한번 더 훔쳐본다. *^^

 

 

해가를 부르는 군중상(像)  수로부인이 해룡에게 납치당했을 때 해가를 불렀던 군중들의 모습으로

막대기를 들고 바다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설화 속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리플릿 내용)

 

 

한 노인의 말에 따라 백성들을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더니 용이 부인을 내놓았다고 하는데..

스테인리스 봉(조명?)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나, 신선, 장군, 귀족 등 군중들의 설정이 설화와는 거리감이 있다.

수로부인상 뒤쪽의 해가(海歌) 그림같이.. 소년이 불러 모은 마을 사람들처럼 재현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안내판에는.. 수로부인상 작품설명, 공원안내, 수로부인 헌화가설화, 수로부인 해가사설화 등이 적혀 있다..

 

 

애랑아씨((愛灵儿).. 무사귀환을 바라며 해가를 부르는 애랑아씨 (*조각상 아래 명판 내용) 

 

조각상 아래 명판에.. 愛灵儿으로 표기한 것은.. 중국, 일본 등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것 같기도 한데..

애랑(愛娘)은.. 배비장전(裵裨將傳)의 여주인공으로 제주(濟州)의 기생이니.. 삼척까지 올린 없고..?

국어사전에 애랑은 없고, 예랑이 있는데.. 혹시, 예랑아씨를 애랑아씨로 잘못 표기한 것은 아닌지?

愛灵儿(애령인)이라는 단어는, 사전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알 수 없으니.. 어원(語源)이 궁금하다. 

 

*예랑 여랑(女郞) : 남자와 같은 재주와 기질을 가진 여자.(같은 말),

*아씨 : 아랫사람들이 젊은 부녀자를 높여 이르는 말. (*국어사전 참조)

 

*灵(신령 령, 신령 영) : 靈(령)의 속자(俗字). 靈(령)의 간체자(簡體字).

  1. 신령(神靈) 2. 혼령(魂靈), 혼백(魂魄), 영혼(靈魂) 3. 귀신(鬼神), 유령(幽靈)

*儿(어진 사람 인,아이 아) : 兒(아)의 간체자(簡體字). 사람의 두 다리를 본뜬 글자.

  어진 사람, 아이 (아), 명사(名詞)에 덧붙이는 조사(助詞)

 *兒 아이 아, 다시 난 이 예 (본자) : 1. 아이 2. 아기, 젖먹이 3. 젊은 남자(男子)의 애칭

  (*한자사전 참조)

 

*灵 (번체 靈) : 혼백. 혼. 정신. 영혼.   옛날, 신선(神仙)이나 신선에 관한 것.
*儿 (번체 兒) : 1. 아이. 어린이. 2. 젊은이. (주로 청년을 가리킴) 3. 사내아이.(*중국어사전 참조)

*애랑[愛娘·まな娘] : 귀여워하는 딸.  *인[儿·人繞] : 어진 사람인 받침 (*일본어사전 참조)

 

 

수평선 멀리까지 보이는 동해 바다와.. 수로부인헌화공원의 모습이 영화 속 장면처럼 어울린다. *^^

 

 

하얀 조형물 통로는.. '해돋이 터널(tunnel)' 이라고 하는데.. 멀리서 보면 고래 화석(?)이 같기도 하다. ㅎ

 

 

해돋이 터널 뒤편에.. 봉수대를 재현해 놓았다고 하는데.. 공원 안내도 및 리플릿 등에 봉수대가 빠져있으며,

「.. 남화산 봉수대를 재현」했다고 하는.. 봉수대 안내문 표석을 못 보고, 그냥 돌탑인 줄 알고 지나칠 수 있다.  

재현도 작은 돌탑만 쌓아 놓아.. 울릉도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요한 봉수대가 뒷전으로 밀린 것 같다.  

 

봉(烽)은 밤에 봉화(烽火)를 올려 연락하는 것을 말하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봉수대(烽燧臺)는 지형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적의 동태를 조기에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참고로.. 아래에 임원산 봉수지(臨院山烽燧址)에 관한 자료를 덧붙여 쓰며.. 남화산 정상 삼각점이 있는.. 원 위치 부근에,

    원 형태인 ‘연대+방호벽형’으로.. 동서 방향 9.2m, 남북 방향 7.2m, 둘레 27.0m, 높이 약 2.4m 크기로.. 복원하면 좋겠다.

 

▲  남화산 정상(해발 141m)에 있는 임원산봉수지  (*사진 출처 : 인터넷 검색)  

※ "방호벽은 너비 2m, 둘레 50m, 높이 85~90㎝ 정도 규모로 잔존하고 있다.

     동쪽 해안이 절벽이어서 반원형을 띠고 있다"라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臨院山烽燧址]

 

개설

임원산 봉수는 임원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우는 방법으로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 역할을 한 중요 국방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지리지」에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소속 ‘임원산 봉화’라 하여 북으로 초곡산에 응하고 남으로 가곡산에 응한다고 하였다. 이후 편찬된 각종 지지의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임원산 봉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통천의 금란성 봉수(金幱城烽燧)에서 1거 직봉인 회양의 소산 봉수(所山烽燧)와 2거인 영덕 대소산 봉수(大所山烽燧), 안동의 봉지산 봉수(烽枝山烽燧)로 연결되는 보조 봉수 역할을 한 총 38기의 간봉과 연결되어 있다. 형태와 기능면에서 해안 지역에 주로 설치된 연변 봉수라 할 수 있다.

임원에서는 이곳을 남화산 봉화대라 부르고, 봉화대에서 임원초등학교 쪽에 있는 골짜기를 봉골이라 부른다. 당시 연변 봉수는 단순한 통신 기능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체 방어와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다.

 

건립 경위

1446년(세종 28)에는 봉수의 중요성에 비추어 각도 연변 연대의 축조 법식과 중부 봉화의 배설 제도 등이 의정부의 건의로 1447년(세종 29) 연변연대조축지식(沿邊煙臺造築之式)과 복리봉화배설지제(腹裏烽火排設之制)가 동시에 마련되어 시행됨으로써 구체화한 연변 봉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외적 침입이 자주 발생한 삼척 지역 다섯 곳에 연변연대조축지식과 복리봉화배설지제의 지침을 반영하여 연변 봉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통신 편의와 해안 방어를 위하여 임원산에 봉수를 설치하였다.

첫 축조[초축(初築)]은 고려 말~조선 전기로 보인다. 폐지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삼척 지역에 왜구의 피해가 거의 없었고 북변에 있는 여진족[만주족]이 삼척 지역까지 침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과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에 기록된 삼척부사 류시회(柳時會)[1562~?]가 재임하고 있던 1626년[병인년]에 영동 지역의 봉대(烽臺)를 폐지하였다는 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삼척의 봉수는 폐지되었다고 한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인조 때인 1626년(인조 4)에서 『여지도서』가 편찬된 18세기 중엽 사이로 여겨진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번지 일대 해발 141.1m 남화산[옛 이름은 임원산] 봉우리에 위치한다. 동쪽은 동해 연안에 접하여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하며, 남쪽과 북쪽으로 가곡산 봉수와 초곡산 봉수가 육안으로 잘 보이는 위치이다.

 

형태

임원산 봉수는 연대의 형태별 구조에서 ‘연대+방호벽형’으로 볼 수 있다. 봉수대 건물지의 배치 형식 분석에 따른 분류에서 보면 방호벽 내에 연대와 건물이 있는 일곽형으로 볼 수 있다.

 

현황

현재 정상부 능선 상에 연대를 설치하고, 남쪽에는 2칸으로 된 창고지가 있다. 동쪽은 급경사여서 별도의 시설이 없는 자연 방어선을 구축하였고, 남·서·북쪽의 3면으로 방어 시설인 방호벽이 연대와 창고지를 둘렀다. 연대의 서쪽 방호벽 외측 또한 경사가 급하다.

연대는 평면 원형의 단봉이며, 토석혼축으로 축조되었다. 하단부는 기단이 조성되어 있으며, 상부 연소실을 설치한 곳으로 추정되는 부분에는 국립지리원이 삼각점을 설치해서 현재 함몰되어 있다. 동서 방향 9.2m, 남북 방향 7.2m, 둘레 27.0m, 높이 약 2.4m이다.

연대 남서쪽에는 건물지가 위치한다. 중간은 폭 62㎝로 구획하여 2칸으로 사용하고, 출입구는 창고지 동쪽인 봉수대쪽으로 폭 70㎝ 정도의 중간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크기는 남동~북서 방향으로 5.9m, 북동~남서 방향으로 4.1m이다. 높이는 1.2m 정도이다. 양산 위천 봉수와 인천 축곶 봉수에서도 이러한 창고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방호벽은 너비 2m, 둘레 50m, 높이 85~90㎝ 정도 규모로 잔존하고 있다. 동쪽 해안이 절벽이어서 반원형을 띠고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소규모이며, 흙으로 쌓은 토축이다. 연변 봉수 가운데 방호벽이 있는 대부분의 봉수는 석축이고 인천의 축곶 봉수는 토석혼축으로 되어 있다. 발견된 유물은 숫돌과 옹기편·기와편으로, 조선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임원산 봉수에서 축대가 6단 정도인 창고지가 발견되었다. 반원형인 연대 방호벽형의 형태가 대체로 잘 남아 있는 등 전체 형태 파악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에서 동해안 지역의 연변 봉수 연구 및 분석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김도현, 「삼척의 봉수와 관련 민간신앙」(『강원사학』 19·20, 강원대학교 사학회, 2004)

[네이버 지식백과] 임원산 봉수지 [臨院山烽燧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봉수대 [烽燧臺]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烽]을 피워,

낮에는 연기[燧]를 올려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에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였다.

봉화는 밤에 피우는 횃불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도 포함해서 흔히 ‘봉화’라

통칭하였으므로 봉수대의 이름도 봉화의 ‘봉(烽)’자를 따서

여러 가지로 불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수대 [烽燧臺] (두산백과)

 

 

※ 참고로 바닷가에 설치된 설흘산 봉수대 복원 모습을 소개해 보면.. 임원산 봉수대의 모습도 이와 유사했을 것 같다.

    설흘산 봉수대의 둘레는 25m, 높이 6m, 폭 7m이며, 왜구의 침입과 재난을 알리기 위해 이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네모꼴로 축조되고, 중앙에는 지름 2m의 움푹한 홈을 만들어 봉수불을 피울 수 있게 했으며,

    사방이 잘 보이는 해안 위쪽 산꼭대기(해발 약 490m)에 원 형태로 쌓은 봉수대로.. 2007년 2월에 복원 정비되었다.

 

 

수로부인 포토존  단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된 수로부인의 흉상은

가까이에서 수로부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공원 리플릿 내용)

 

 

당나라 상인(唐 商人) 사람들을 바라보는 당나라 무역상 (*조각상 아래 명판 내용)

 

 

헌화정  맑은 날에는 동해 멀리 울릉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탁 트인 바다의 풍경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리플릿 내용)

 

 

십이지신상(像)  땅을 지키는 12지신상의 나무조각상으로 정교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공원 리플릿 내용) 

*리플릿 내용에서 의미하는 12지신 상(十二地神 像)은.. 12개의 지지(地支) 12지 신상(十二支 神像)을 잘못 해석한 것 같다.

 

*참고로 12지신상(十二支神像)은 십이지를 상징하는 수면인신상(獸面人身像)으로.. 얼굴은 동물, 몸은 사람의 형상이다.

십간(十干)이 하늘을 의미한다고 하여 천간(天干)이라 하고, 십이지(十二支)는 땅을 의미한다 하여 지지(地支)라고 한다.   

 

天干 (천간) 60갑자의 윗 단위(單位)를 이루는 요소(要素). 甲(갑)ㆍ乙(을)ㆍ丙(병)ㆍ丁(정)ㆍ戊(무)ㆍ己(기)ㆍ庚(경)ㆍ辛(신)

ㆍ壬(임)ㆍ癸(계)의 총칭(總稱). 십간(十干)

 

地支 (지지)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아래 단위(單位)를 이루는 요소(要素). 자(子)ㆍ축(丑)ㆍ인(寅)ㆍ묘(卯)ㆍ진(辰)ㆍ사(巳)

ㆍ오(午)ㆍ미(未)ㆍ신(申)ㆍ유(酉)ㆍ술(戌)ㆍ해(亥)의 십이지(十二支)를 말함. 

 

 

십이지신 [十二支神 ]  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

십이신장(十二神將) 또는 십이신왕(十二神王)이라고도 한다.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神將)이다.

이들은 열두 방위(方位)에 맞추어서 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돼지·개·쥐·소 등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도교(道敎)의 방위신앙에서 강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십이지신 [十二支神]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토끼, 호랑이, 돼지는.. 사람 몸의 형상 없이 조각되고, 방위(方位) 및 자(子)ㆍ축(丑)ㆍ인(寅).. 배열 등이 맞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십이지신상(像)' 보다는.. '십이지 동물상(像)' 또는 '열두 띠 동물들'이라고 하면 좋겠다. *^^

 

 

십이지(十二支)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십이지(十二支) 중 첫 번째인.. 쥐의 형상은 그네 위에 있어.. 열두 띠 동물 형상을 다 찾느라 한참 걸렸다. ㅎ

 

 

간지로 연대를 표기할 때 천간(天干)이 앞에 표기되고, 지지(地支)를 뒤에 표기한다.

甲子(갑자), 乙丑(을축), 丙寅(병인)처럼 조합하면, 모두 60개 육십간지(六十干支)가 된다.

기해(己亥)는 육십간지 중 36번째이다. 기(己)는 황(黃)과 연결되니 '황금돼지 해'이다. 

여러 마리 돼지 가족의 모습이.. 화목하고 복스럽지만.. 신상(神像)이라고는 할 수 없다. 

 

 

헌화정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보면.. 수로부인이 용 위에 앉아 바다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헌화정에는 서정주 시인의 시 ‘老人獻花歌’와 신달자 시인의 시 ‘獻花歌’가 걸려 있다.

 

老人獻花歌 / 서정주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날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껶어 드리리다.'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

젊은 여인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햇빛이 포근한 날-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늙은이가

문득 그의 앞을 지나는 어떤 남의 안사람 보고

한마디 건네인 수작이다.

 

騎馬의 남편과 동행자 틈에

여인네도 말을 타고 있었다.

 

'아이그머니나 꽃도 좋아라,

그것 나 조금만 가져봤으면'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

또 공중에게론 듯

 

말 위에 갸우뚱 여인네의 하는 말을

남편은 숙맥인 양 듣기만 하고

同行者들은 또 그냥 귓전으로 흘려보내고

오히려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動鈴하고

도맡아서 건네는 수작이었다.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날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꽃은 벼랑 위에 있거늘,

그 높이마저 그만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여간한 높낮아도

다아 잊어버렸었다.

 

한없이 맑은

空氣가

요샛말로 하면-그 空氣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

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

한없이 親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

 

*서정주(徐廷柱) 전라북도 고창 [1915~2000]

 

 

순정공상  해가사와 헌화가의 주인공인 수로부인의 남편인 강릉태수 순정공으로

강릉태수 부임행차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공원 배부 리플릿 내용 참조)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도중 임해정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불현듯 해룡이 나타나

그의 아내 수로 부인의 미모를 탐내 바닷 속으로 납치해 가는 것이었다.

공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옛날 말에 여러 입은 쇠도 녹인다 하니 이제 바닷 속의 물건인데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하였다.

 

현자(賢者) 수로부인이 돌아오는 비법을 알려준 노인」 (*조각상 아래 명판 내용)

 

 

마을 소년(小男)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소년」 (*조각상 아래 명판 내용)

 

조각상 발 아래 명판의 한자가 小年이 아니고 小男이다. 小男은 일본어 같은데..?

 *소년 (少年) :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사내아이. (*국어사전 참조)

 *소남 (小男, こおとこ) : 몸집이 작은 남자, 소년 (*일본어사전 참조)

 

 

노인행복일자리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컵을.. 세 명이 나누어 마시고.. (*테이크아웃 한 컵 3,100원, 커피 맛 상급)

 

 

남화산 [南華山, Namhwasan]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에 있는 산이다(고도:141m). 과거에는 임원산(臨院山)이라 불렸는데,

언제부터인가 남화산으로 바뀌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만년원은 삼척부 남쪽 7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원산은 임원리(臨院里)에서 유래하였다.

임원리는 조선 시대에 여행자에게 숙박의 기능을 하였던 만년원(萬年院)이 소재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 산 꼭대기에는 봉수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임원산 봉수는 삼척부 남쪽 80리에 있다.

북쪽으로 초곡산(草谷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가곡산(可谷山)에 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낙동정맥에서 이곳까지 이르는 산세가 잘 묘사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화산 [南華山, Namhwasa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 12., 국토지리정보원)

 

남화산에 조성된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약 1시간 정도 돌아보고 임원항으로 내려가.. 12:40 임원 출발...

 

 

13:50~14:30 태백 어느 메밀 전문 식당에서.. 떡만두국 먹고..  15:30 영월 도착.. 2019 기해년을 멋지게 시작한다. *^^

 

 

 

 

 

수로부인헌화공원 [ 水路夫人獻花公園 ]  강원도 삼척시 임원리 남화산 정상에 위치한 공원.

 

개설

수로부인 헌화 공원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헌화가」와 「해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당시 부인(夫人)이라는 호칭은 왕비, 왕의 어머니, 왕비의 어머니 세 분에게만 내려지는 위호(位號)였다.

수로부인은 삼척이란 지명을 사용하도록 한 신라 경덕왕의 비 삼모부인(三毛夫人)의 친정 어머니였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가다가

동해 바다 절벽에 활짝 핀 철쭉을 보고 꽃을 꺾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만 마침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다 바치면서 ‘자줏빛 바위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라는 내용으로 된 4구체 향가 「헌화가」도 바친다.

부임 행차는 북쪽으로 계속되고, 삼척시 증산동 임해정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수로부인의 미모에 반한 용이 갑자기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다로 끌고 들어간다. 꽃을 꺾은 노인이 다시 나타나더니 백성들을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용이 나타난다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수로부인이 용을 타고 바다에서 나왔다는 설화가 있다.

백성들이 불렀다는 노래가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로 알려진「해가」이다. 수로부인상은 용 위에 앉아 바다에서 나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건립 경위

수로부인헌화공원은 2006년 산책로를 정비하면서 조성이 시작되어 2014년 9월 수로부인상이 건립되고 공원 정상부

경관 개선 공사가 완료되었다. 2015년 7월 승강기가 설치되는 등 2만 6870㎡ 부지에 170억 원[국비 35억 원, 도비 7억 원,

시비 128억 원]이 투자되었다. 시범 운영을 하다가 2016년 4월 1일부터 유료로 전환되었다.

 

변천

최초 공원 이름은 임원 남화산 해맞이 테마공원이었다. 그러다가 2013년 3월 공모를 통하여 5월에 수로부인헌화공원으로

변경되었다.

 

구성

임원항에서 남화산으로 올라가는 높이 51m 승강기를 이용하여 공원에 올라가면 구름다리를 건너 공원으로 연결되는

500m 정도 되는 데크 산책로가 시작된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200m 전후로 바다 전망대가 나오고

「해가」를 부르는 군중상, 순정공 조각상, 해학으로 표현된 12지신 조각, 2층으로 된 팔각정인 헌화정이 나온다.

헌화정 안에는 서정주(徐廷柱)[1915~2000] 시인의 시 ‘노인 헌화가(老人獻花歌)’와 신달자 시인의 시 ‘헌화가(獻花歌)’가

걸려 있다. 헌화정 앞쪽에 세계 최초로 천연 오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중량 500t 규모의

수로부인상이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의 1.5배가 된다. 울릉도·독도와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곳에

독도전망대라 명명한 망원경이 있는 전망대가 있다. 산책로 끝부분에는 봉수대가 있다.

연면적 193.84㎡ 2층 건물로, 사업비 6억 원이 소요된 휴게 전망 시설이 2017년 7월에 준공되어 운영에 들어갔다.

 

현황

임원항은 어항이 발달하여 항구 옆으로 많은 횟집이 형성되어 있다. 남화산이 동쪽으로 흘러내려

동해 바다와 접한 지역은 삼척시 지역에서 동쪽의 가장 끝 지점이다.

이 같은 지리 특성[바다로 가장 멀리 나온 땅]으로 인하여 정상은 바다 전망이 좋아서

수로부인헌화공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마을 주민들의 해맞이 장소로 애용되었다.

 

임원항에서 공원을 오르는 방법은 산책로를 이용하여 산으로 오르거나 51m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임원항에서 산책로를 이용하여 오르는 길에는 임원중앙로에서 우신아파트를 지나 우회전하여 오르는 길,

임원중앙로에서 임원본촌길로 접어들어 올라가는 길, 임원중앙로를 따라 임원항구 북쪽으로 가다가

방파제식당과 남홍민박 사이로 오르는 길 등 3개 길이 있다.

산책로가 너무 가팔라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이후 산책로는 잘 이용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길이 500m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이다. 오르는 중간에 정자에서 쉴 수도 있고 전망대를 통하여

임원항, 동해 바다와 해안선을 감상할 수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법은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1371번지에서 동해쪽으로 난 1차로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통하여

공원 주차장에 이를 수도 있다. 주중에는 300~400여 명, 주말에는 1000여 명이 방문한다.

무료 입장이었다가 2016년 4월부터 입장료를 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로부인헌화공원 [水路夫人獻花公園]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수로부인 [ 水路夫人 ]
원전서지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三國遺事 卷第二 紀異 第二) 
시 대 명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지금의 명주(溟州)이다.] 태수로 임명되어 가던 중,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을 때였다. 주변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는데, 높이 천 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꽃을 꺾어 바칠 사람 그 누구 없소?”
옆에서 모시는 사람이 말하였다.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모두들 할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그런데 옆에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고 노래까지 지어서 바쳤다. 그 노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의 용이 나타나

부인을 납치해서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정공은 넘어져 바닥에 쓰러졌으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자 또 어떤 한 노인이 말하였다.

 

“옛 사람들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하였습니다. 지금 바다 속 짐승이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무서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이 지역 내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막대기로 언덕을 친다면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공이 그 말대로 했더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에서 있던 일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칠보로 꾸민 궁전의 음식이 달고 기름지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서도 이상한 향내가 풍겼으니, 이 세상에서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수로부인은 자태와

용모가 뛰어나서 매번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들에게 납치되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부른 「해가(海歌)」의 가사는 이러하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빼앗아 간 죄 그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바치지 않는다면
그물을 넣어 사로잡아 구워 먹으리라.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러하다.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니,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嶂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躑躅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

聞夫人言 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便行二日程 又有臨海亭 晝饍次 海龍忽攬夫人入海 公顚倒躄地 計無所出 又有一老人 告曰 故人有言

衆口鑠金 今海中傍生 何不畏衆口乎 宜進界內民 作歌唱之 以杖打岸 可見夫人矣 公從之 龍奉夫人出海獻之

公問夫人海中事 曰 七寶宮殿 所饍甘滑香潔 非人間煙火 且夫人衣襲異香 非世所聞 水路姿容絶代

每經過深山大澤 屢被神物掠攬 衆人唱海歌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綱捕掠燔之喫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네이버 지식백과] 수로부인 [水路夫人]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용이 탐낸 아름다운 무녀 - 수로부인

현재까지 전하는 신라 향가 중에서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 「서동요」와 「헌화가」, 「처용가」를 들 수 있다.

이들 향가는 선화공주와 수로부인,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처용의 부인 등 모두 아름다운 여인들과 관련된 노래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헌화가」는 단순히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신라의 정치적·사상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수로부인이 누구인지 밝혀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다만 수로부인의 남편이 순정공(純貞公)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를 통해 그녀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순정'은 이름이고, '공'은 존칭이다. 공으로 일컬어진 것이나

하서주(河西州)의 장관이었다는 사실에서 그가 신라 진골 귀족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당시 '공'이라는 존칭은

신라 최고위급의 인물들에게만 사용되었고, 주의 장관은 진골귀족에게만 해당되는 관직이었다.

 

문제는 '순정'이라는 이름이 수로부인 설화 이외의 다른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다만 『삼국사기』와 『속일본기』에는 성덕왕대 활동한 인물로 김순정(金順貞)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있다.

수로부인의 남편인 순정공과 김순정은 각각 다른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발음이 같다. 신라의 인명에서는

발음이 같은 한자를 구별 없이 쓰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김씨의 경우에는 성이 생략되기도 하였다.

가령, 경덕왕의 두 번째 장인인 김의충(金義忠)의 경우 『삼국유사』에는 의충(依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의'자를 발음이 같은 다른 한자로 쓰고 성을 생략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정공과 김순정은 모두 신라의 진골귀족이니 순정공과 김순정은 동일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기록에 따르면 김순정은 이찬(伊湌)을 거쳐 상재(上宰)까지 진출하였으니,

이를 통해 그가 신라 최고위급 인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덕왕(742~765) 왕비의 아버지가 이찬 순정(順貞)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경덕왕에게는 두 명의 왕비가 있었다. 첫 번째 왕비는 자식이 없어서 폐위된 삼모부인(三毛夫人)이고,

두 번째 왕비는 만월부인(滿月夫人)이다. 이들 중 만월부인은 743년(경덕왕 2)에 경덕왕과 혼인하였고,

아버지는 서불한(舒弗翰) 김의충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김순정은 경덕왕의 첫 번째 왕비 삼모부인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로부인은 삼모부인의 어머니이며, 경덕왕의 장모가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이 탐낸 아름다운 무녀 - 수로부인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 - 통일신라편, 2008. 3. 25., 경인문화사)

 

※ 위 순정공 행차 이미지(3장) 출처 : 웅진주니어 공식블로그 [삼국유사 그림책 <봄의 여신 수로부인> 이상희 글 | 이경국 그림]

 

 

헌화가 [ 獻花歌 ]
신라 성덕왕 때 한 노옹에 의하여 불린 향가.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조에 실려 있다.>

 

※ 위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헌화가 [獻花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신라 성덕왕 시대 절세의 미인으로 총명함까지 갖춘 여인이다.

복식은 신라 귀부인 기본 복식을 입히고

지적인 이미지를 위해 푸른빛이 도는 녹색으로 포를 입혔다.

*이미지 출처 : 수로부인 - 문화콘텐츠닷컴 (한국콘텐츠진흥원)

 

 

 

 

《삼국유사(三國遺事)》제2권(卷第二) <기이(紀異)>

 

水路夫人

수로부인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성덕왕대, 순정공부강릉태수[금명주], 행차해정주선.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지금의 명주)로 부임하는 도중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赴 (다다를 부, 갈 부), 汀 (물가 정) *晝饍 [주선] 점심으로 차려 먹는 음식

 

傍有石嶂,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躑躅花盛開.
방유석장, 여병림해, 고천장, 상유척촉화성개.

곁에는 돌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두르고 있어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데, 그 위에 철쭉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傍 (곁 방), 嶂 (산봉우리 장), 如 (같을 여), 屛 (병풍 병). *躑躅 [척촉] 철쭉나무. *盛開 [성개] 한창 무성하게 핌.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공지부인수로견지. 위좌우왈 :「절화헌자기수?」

공의 부인 수로가 이것을 보더니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꽃을 꺾어다가 내게 줄 사람은 없는가?"

*謂 (이를 위), 折 (꺾을 절), 獻(드릴 헌), 其(그 기), 誰(누구 수)  *其誰 [기수] 거기 누구 없소? ㅎ

 

從者曰 :「非人跡所到.」皆辭不能.
종자왈 :「비인적소도.」개사불능.

그러나 종자들은, "거기에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고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從 (좇을 종), 者 (놈 자), 跡 (발지취 적), 到 (이를 도), 皆 (다 개), 辭 (말씀 사)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 聞夫人言, 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방유로옹견자우이과자, 문부인언, 절기화, 역작가사헌지, 기옹불지하허인야.

이때 암소를 끌고 길을 지나가던 늙은이 하나가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가사까지 지어서 바쳤다.

그러나 그 늙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傍 (곁 방), 翁 (늙은이 옹), 牽 (끌 견), 牸(암소 자), 折 (꺽을 절), 其(그 기), 亦(또 역), 何許人 [하허인] 알지 못할 어떠한 사람

 

便行二日程, 又有臨海亭, 晝膳次, 海龍忽攬夫人入海, 公顚倒躄地, 計無所出.
편행이일정, 우유림해정, 주선차, 해룡홀람부인입해, 공전도벽지, 계무소출.

그 뒤 편안하게 이틀을 가다가 또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더니 부인을 끌고

바닷 속으로 들어갔다. 공이 땅에 넘어지면서 발을 굴렀으나 어찌 할 수가 없었다.

*便 (편할 편}, 行 (다닐 행), 程 (길 정), 又 (또 우), 臨海亭 [임해정] 바닷가에 있는 정자, 晝(낮 주), 膳 (반찬 선),

*忽 (갑자기 홀), 攬 (가질 람) 顚 (엎드러질 전), 倒 (넘어질 도), 躄 (앉은뱅이 벽), 計 (셀 계), 所 (방도 소)

 

又有一老人告曰 :「故人有言, 衆口鑠金, 今海中傍生, 何不畏衆口乎? 宜進界內民, 作歌唱之, 以杖打岸, 則可見夫人矣.」
우유일로인고왈 :「고인유언, 중구삭금, 금해중방생, 하불외중구호? 의진계내민, 작가창지, 이장타안, 즉가견부인의.」

또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말한다.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바닷 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境內)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강언덕을 치면, 부인을 만나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故 (옛 고), 衆 (무리 중), 鑠 (녹일 삭), 傍 (곁 방), 何 (어찌 하), 畏 (두려워할 외), 宜 (마땅 의), 進 (나아갈 진),

*以 (써 이), 杖 (지팡이 장), 打 (칠 타), 岸 (언덕 안), 則 (법칙 칙, 곧 즉), *矣 (어조사 의); ~리라, ~이다, ~도다.

 

公從之, 龍奉夫人出海獻之.
공종지, 룡봉부인출해헌지.

공이 그대로 하였더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나와 도로 바쳤다.

*從( 좇을 종), 之 (갈 지), 奉(받들 봉), 獻 (드릴 헌)

 

公問夫人海中事, 曰 :「七寶宮殿, 所饍甘滑香潔, 非人間煙火.」
공문부인해중사, 왈 :「칠보궁전. 소선감활향결. 비인간연화.」

공이 바닷속에 들어갔던 일을 부인에게 물으니 부인이 말한다. "칠보궁전에 음식은 맛있고 향기롭게 깨끗한 것이

인간의 연화(煙火)가 아니었습니다."

*饍(반찬 선), 甘 (달 감), 滑 (미끄러울 활), 香(향기 향), 潔 (깨끗할 결)

 

此夫人衣襲異香, 非世所聞.
차부인의습이향, 비세소문.

부인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此 (이 차), 衣 (옷 의), 襲(업습할 습), 異香 [이향] 이상야릇하고 좋은 향내,
*非(아닐 비), 世(인간 세), 所聞 [소문]들려 오는 떠도는 말

 

水路姿容絶代, 每經過深山大澤, 屢被神物掠攬.
수로자용절대, 매경과심산대택, 루피신물략람.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용모가 세상에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려 갔다.

*姿 (모양 자), 容 (얼굴 용), 經 (지날 경), 過 (지날 과), 經過 [경과] 때의 지나감, 일을 겪음,

*深 (깊을 심) 澤 (못 택)* 屢 (여러 루),  被(입을 피), 掠(노략질할 략), 攬 (가질 람)

 

衆人唱海歌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중인창해가사왈 :「귀호귀호출수로. 략인부녀죄하극. 여약패역불출헌. 입망포략번지끽.」

이때 여러 사람이 부르던 해가의 가사는 이러했다.「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龜 (거북 귀), 掠 (노략질할 략), 何 (어찌 하, 꾸짖을 하), 極 (극진할 극), 汝 (너 여), 若 같을 약),
*悖 거스릴 패), 逆 (거스릴 역), 網 (그물 망), 捕 잡을 포), 燔 (불사를 번), 之 (갈 지) 喫 (먹을 끽).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邊希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로인헌화가왈 :「자포암호변희집음호수모우방교견. 오힐불유참힐이사등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러했다.

「(철쭉꽃이 만발하여) 자줏빛(이 된) 바위 가에  손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紫 (자줏빛 자), 布 (베 포) *紫布; 딛배(짓붉은), 지뵈  *岩乎; 바회(*訓讀字) *邊(가 변) *邊希; 가해, 가새

*가새 : 가장자리 (명사) 둘레나 끝에 해당되는 부분 (비슷한 말), 곧디 (*네이버 오픈사전 참조)    

*執 (잡을 집) *執音乎手; 자바온손  *母牛; 암쇼(*訓讀字)  *放(놓을 방), *敎 (기를칠 교), *遣 (보낼 견),

*吾 (나 오), 肹 (소리울릴 힐) *吾肹; 나흘 *喩 (깨우칠 유) 慚 (부끄러워할 참) *慚肹伊賜等; 붓그리샤든

*花肹; 곶흘, 折叱可; 것가, 것거 *獻 (드릴 헌)  *獻乎理音如; 받자오리다, 바도림다

 

*부인 [夫人] 

①제후(諸侯)의 정처(正妻). 귀인(貴人)의 처(妻). ②황후(皇后). 왕후(王后). ③임금의 첩. 후궁.

④부인(婦人)의 봉호(封號). ⑤남의 아내에 대한 존칭.

*溟州 [명주] 통일 신라의 구주 가운데 지금의 강원도 강릉 지역에 둔 행정 구역

*不知何許人 [부지하허인] 알지 못할 어떠한 사람 (*한자사전 참조)

  不知何許人은 대개 세속을 초월한 사람을 이르는 표현이다.

*연화 [煙火]  불에 익힌 음식. 즉 숙식(熟食)하는 사람들이 사는 속세를 뜻함 (*한국고전용어사전)

*신물(神物) : 신령스럽고 기묘한 물건 (*국어사전 참조)

 

 

※ 삼국유사에서 <해가사>는 한역(漢譯)되어 전해지고, <헌화가>는 향찰로 전해졌다.  
    문자를 가지지 못한 신라는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차용하여 말을 기록하였다.

    향찰은 차자(借字)표기 중 하나로 향찰로 기록한 가요를 향가(鄕歌)라고 한다.

 

 

딛배 바회

온손 암쇼 노시고

 안디 붓리샤

 것가 받오리이다. (양주동 해독)

               ▽▽▽

딛배 바회 가해

자바온손 암쇼 노해시고

나흘 안디 붓그리샤든

곶흘 것가 받자오리이다. (양주동 해독)

 

지뵈 바희 imagefont

imagefont몬손 암쇼 노히시고
imagefont 안디 붓그리샤imagefont

imagefont 것거 바도림다 (김완진 헤독)

 

붉은 바위 끝에(제4구 꽃으로 연결),
(부인께서)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정연찬 현대어 풀이)

 

 

향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표기하는 방법. 신라 시대에 사용하던 표기법으로 구결이라는 명칭도 있다.

향찰식 표기는 한자의 음부분과 뜻부분을 하나씩 빌려 적던 표기법인데,

예를 들어 향가 중에 <서동요>의 '서동(薯童)'은 '맛둥'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맛'은 한자 '薯'의 뜻부분을 가져 왔고, '둥'은 한자 '童'의 음부분을 빌려 표기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향찰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2007. 8. 25., (주)신원문화사)

 

 

「서동요」

善花公主主隱  (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  (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  (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  (야의묘을포견거여)  

 

선화 공주 니믄            선화공주님은

남 그지 얼러 두고    남 모르게 배필로 삼아 두고

맛둥바알                     맛둥 서방을

바뫼 몰 안고 가다.       밤에 몰래 안고 간다 

 

*他 (다를 타) ; 남  *密 (그윽할 밀), 只 (다만 지)  *密只 : 그

*현대 국어 ‘그윽이’의 옛말인 ‘그기’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그기’는 어근 ‘그’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합한 것이다. (*국어사전 맞춤법/표기법 참조)

*嫁 (시집갈 가)  *良 (어질 량) : 1. 어질다 2. 좋다.. 12. 남편(男便)  *置 (둘 치), *古 (옛 고) 

*嫁良置古; 얼러 두고,   *어르다3 ( 활용형: 얼러 ) : 옛말 배필로 삼다.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房 : 방, 서방 (현대국어 뱅이: 습관, 모양, 성질 등으로 사람을 낮추어 표현하는 접미사로 쓰임)

*뱅이 : ‘방’의 방언 (전라, 충남) *서방3 : 벼슬이 없는 사람의 성 뒤에 붙여 이르는 말 (*국어사전 참조)

*夜矣 (바뫼) : 밤에, *卯乙 (몰) : 몰래   *抱 (안을 포), 遣 (보낼 견), 去 (갈 거) (*한자사전 참조)

 

*서동(薯童)은 서여(薯蕷, 마)를 비롯한 산약과 산나물을 캐어 살아가던 약초꾼 아이들을 이르던 말로,

  초동(樵童; 나무하는 아이, 나무꾼), 목동(牧童; 소 치는 아이, 소몰이꾼)과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선화공주주은”

일단 1구의 선화공주와 3구의 서동방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신라 향가는 현대 시의 ‘행’에 해당하는 것을 ‘구’로 부릅니다.) 어차피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니까요. 1구의 한자를 읽으면 “선화공주주은”이 됩니다. 이때 ‘主’는 ‘주인 주’ 자이지요. 따라서 ‘主’는 높은 사람을 가리키는 ‘님’, 아니면 존경과 사랑의 대상을 가리키는 ‘임’과 통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主’는 ‘주’라는 소리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임’이라는 뜻을 빌려 온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隱’은 ‘숨을 은’ 자인데, 여기서 뜻을 빌리면 의미가 이상하게 되겠지요. 따라서 이 글자는 뜻을 빌린 것이 아니라 ‘은’이라는 소리를 빌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1구는 ‘선화공주님은’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타밀지가량치고”

두 번째 구까지만 살펴볼까요? 두 번째 구는 한자를 “타밀지가량치고(他密只嫁良置古)”로 읽을 수 있습니다. ‘他’는 남이라는 뜻을, ‘密只’는 ‘그윽할 밀’과 ‘다만 지’인데, 이 중에서 ‘密’ 자는 뜻을, ‘只’ 자는 음을 빌려 왔습니다. 그래서 ‘그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지’라는 단어로 해석했지요. ‘그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지’라는 말은 ‘그윽하게’의 옛 표현이며, ‘몰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嫁’는 ‘시집가다’라는 의미이고, ‘置’는 ‘두다’라는 의미이므로 두 글자는 모두 뜻을 빌린 글자입니다. 나머지 글자는 모두 한자의 음을 빌려 왔지요. 여러분이 익히 아는 쉬운 글자 ‘古(고)’의 의미는 ‘옛’이지만 작품에서는 ‘옛’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로지 ‘고’라는 음만 사용되었지요.

이처럼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쓰는 것이 향찰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글 이전에도 우리말 표기법이 있었다고요?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2013. 9. 15., 북멘토)

 

서동요 [ 薯童謠 ]  한국 최초의 4구체(四句體) 향가(鄕歌).  
백제의 서동(薯童: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민요 형식의 노래이다. 이두(吏讀)로 표기된 원문과 함께 그 설화(說話)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조(武王條)에 실려 전한다. 즉, 무왕이 어릴 때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사모하던 끝에 머리를 깎고 중처럼 차려 신라 서울에 와서 마[薯]를 가지고 성 안의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며 이 노래를 지어 그들에게 부르도록 하였다.

 

내용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는데, 이 노래가 대궐 안에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게 되었다.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동요 [薯童謠] (두산백과)

 

 

훈독자 [訓讀字]

훈독자는 한자의 훈을 빌리면서 그 한자의 본뜻을 살려 쓴 글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한자의 훈을 빌린다’는 것은 적어 놓은 한자를 음으로 읽지 않고 훈(=새김)으로 읽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봄이 오다”라는 문장을 차자 표기로 기록하면 “春是 來多”라고 적을 수 있다.

여기서 ‘春’과 ‘來’는 각각 그 글자의 훈에 해당하는 명사 ‘봄’과 동사 어간 ‘오-’를 적은 것이고,

이것을 읽을 때에도 [봄]과 [오]라고 읽는다. 따라서 여기에 쓰인 ‘春’과 ‘來’는 문장 안에서 그 글자의 본뜻을 유지하면서

문장을 읽을 때 음이 아닌 훈으로 읽는 글자이므로 훈독자로 파악되는 것이다.

 

한자어나 한문 문장을 읽을 때에는 기본적으로 그 안에 있는 한자를 모두 음으로 읽는다.

그러나 차자 표기에서는 한자를 음으로 읽기도 하고 훈으로 읽기도 하므로 읽는 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훈으로 읽는 글자의 경우에는 훈의 끝소리를 같이 적어 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夜音’이라는 표기는 ‘夜’자의 음인 [야]로 읽지 않고 훈인 [밤]으로 읽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밤]의 끝소리 [ㅁ]을 표시하는 ‘音’자를 ‘夜’자에 덧붙인 것이다.

이러한 표기 방식을 말음첨기(末音添記) 또는 받쳐적기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훈독자 [訓讀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음독자 [音讀字]

음독자는 한자의 음을 빌리면서 그 한자의 본뜻을 살려 쓴 것이므로, 한문 문장을 구성하는 한자의 용법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한문에서 사용되는 한자어가 한국어에 차용되어 차자 표기로 쓰였을 때

그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들이 음독자로 분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성이 훈민정음을 학습하다”라는 문장을

차자 표기로 기록하면 “百姓是 訓民正音乙 學習爲多”로 적을 수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한자어 “百姓, 訓民正音, 學習”을 구성하는 “百, 姓, 訓, 民, 正, 音, 學, 習” 등은 모두 음독자로 분류된다.

따라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한 차자 표기 문장은 차자의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음독자의 사용 빈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음독자 [音讀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원항 위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항구로 26  문의: 원덕읍사무소 033-572-6011

 임원항은 예부터 원덕지역의 물물거래로 유명했다. 동해안에서는 울릉도와의 거리가 가장 까워

 1980년 5월 27일 임원항과 울릉도를 오가는 192톤급 정기 여객선이 취항하였으나 현재는 운행되지 않는다.

 임원항은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바닷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해 사계절 싱싱한 생선이 많이 잡힌다.

(*임원항 자료 출처 : 삼척시청 홈페이지 > 문화관광 > 수로부인헌화공원)

 

 

※ 추기 (참고 자료)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0권1호(2014년 02월 발행)
삼국유사 기이편 "수로부인"조에 근거한헌화가(獻花歌)와 해가(海歌) 배경지 추정에 관한 연구

 

초록 보기

삼국유사 ``수로부인``에 나오는 ``헌화가``의 배경 설화를 토대로 헌화가와 해가의 배경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추정해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헌화가 배경지는 경북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 지경천 골곡포(骨谷浦) 부근 암석단애지 일대로 판단된다.

2) 해가 배경지(임해정 옛터)는 헌화가 배경지인 골곡포에서 이틀거리(약 60km)에 위치하는 울진의 월송정 일대로 판단된다.

3) 일부 지자체에서 주장하는 헌화가 배경지와 해가 배경지는 지자체들의 장소 마케팅(place marketing) 차원에서 설정된

   경향이 강해 설득력이 없다.

*위 학회지 자료 출처 : 인터넷 검색 (네이버학술정보)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놓아라
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어서 먹으리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가락국기 中 구지가(龜旨歌)>

 

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  네 만약 거슬러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편 수로부인 中 해가(海歌)>

 

「구지가」는 사구체(4언4구)로 되어 있고,

「해가」는 사구체지만 7언으로 되어 있어 내용이 「구지가」보다 구체적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해가」를 「구지가」의 풍자적 개작(改作)으로 보기도 한다.

 

 

해가

『삼국유사』 권2 기이2 수로부인조에 따르면,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수로부인을 바다의 용이 갑자기 끌고 바다로 들어가버리자, 남편 순정공이 한 노인의 도움으로 사람들을 모아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를 “해가(海歌)”라고 했다고 한다.

 

해가는 구지가(龜旨歌)와 같은 패턴의 노래이면서도 그 배경이나 상황이 다른 작품이다. 구지가가 임금을 맞아들이기 위해 사전에 준비된 행위를 재현하는 것이었다면, 해가는 겉으로는 용이나 거북과 같은 신격을 들먹이고 있지만 그 신격을 절대적으로 외경하거나 그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입장에서 꾸짖거나 오히려 수하(手下)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해가는 주술적 성격의 노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해가가 이용된 목적에 따라 원시신앙을 기조로 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정치적 의도를 지닌 노래로 보는 견해, 사상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원시신앙을 기조로 한 것으로 보는 연구에서는 이 노래가 원시신앙의 유풍을 이어받아 노래를 통해 주술적 힘을 발휘하게 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양주동, 1965)

 

다음으로 정치적 목적 아래 이루어진 굿에서 불린 노래로 보는 연구에서는, 당시 민심이 흉흉하고 흉년이 자주 들었다는 『삼국사기』권8 신라본기8 성덕왕조의 기사에 주목하면서 해가 또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불려진 굿노래라고 보았다.(조동일, 1994)

 

마지막으로 사상적 관점에서 본 연구에서는 인간과 악신의 갈등을 해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것을 본 견해(홍재휴, 1981)와 해가의 배경을 샤머니즘적 사고체계와 유교적 사고체계의 갈등으로 보고, 수로부인을 되찾았다는 것은 순정공이 속해 있는 유교적 사고체계가 승리한 것으로 본 견해(예창해, 1982), 해가의 배경기사를 모권체제의 말기적 현상으로 보고 해가를 부권체제의 이행을 시도하는 노래로 보는 견해(정상균, 1984)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가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삼국유사 사전/박물지 시범개발), 2007., 한국콘텐츠진흥원)

 

 

 

 

《삼국유사》권2 가락국기조에 전하는 구지가.

구지가는 작자, 연대 미상의 고대가요로 영신군가, 구하가

또는 구지봉영신가라고도 부른다. 원가는 전하지 않고

관련설화와 4구체의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삼국유사》권2 가락국기조에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지가 [龜旨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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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가 [ 龜旨歌 ] 작자 ·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발표년도
40∼50년경 

《영신군가(迎神君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한다. 가락국(駕洛國)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강림신화(降臨神話) 가운데 곁들여 전하는 신화 중의 삽입가요(揷入歌謠)인데, 4구체(四句體)의 한역가(漢譯歌) 형태로 전한다(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출전문헌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가락국에 아직 임금이 없어 9명의 추장(酋長)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42년(후한 건무 18) 3월, 김해(金海) 구지봉(龜旨峰)에서 신(神)의 소리가 들려 추장들은 모든 백성들을 구지봉에 모아 놓고 신의 계시대로 흙을 파헤치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노래를 합창시켰다. 이 노래를 300여 명의 군중이 춤추며 불렀다. 이윽고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6명의 귀공자(貴公子)로 변하여 각각 6가야(伽倻)의 왕이 되었는데,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었다.

 

이 노래는 임금을 맞이하기 위한 민중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무가적(巫歌的)인 주술성(呪術性)을 지니고 있는 서사시의 하나이다. 즉, 집단적 주술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간에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잡귀를 쫓는 주문(呪文)으로 보는 견해, 둘째 거북을 신으로 풀이하여 “신이여, 신이여, 우리에게 머리(곧 우두머리:군주)를 내놓아라”라고 하는 견해, 셋째 거북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희생무용(犧牲舞踊)에서 가창(歌唱)된 노래라는 견해, 넷째 거북의 머리와 목은 남성의 성기(性器)를, 구워 먹겠다(燔灼而喫也)는 여성의 성기를 은유(隱喩)한 것으로 보고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가사의 뜻과 표현형식이 이 노래와 비슷한 것으로 《해가사(海歌詞)》라는 것이 전해지는데, 《구지가》를 40∼50년경의 작품이라 본다면 《해가사》는 그로부터 약 700년 후의 작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지가 [龜旨歌] (두산백과)

 

 

구지가 [ 龜旨歌 ]
연대  42년[유리왕(儒理王)19] 
저자  작자미상

 

1. 작품

원문                                    현대역
龜何龜何 (귀하귀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2. 배경설화

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액을 덜기 위해 목욕하고 술을 마시던 계욕일에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봉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2,3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사람 소리는 있는 것 같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하는 말소리만 들렸다.
구간 등이 “우리들이 있습니다.”하자,
“내가 있는 데가 어디냐?”
“구지입니다.”
“하늘이 내게 명하여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시므로 여기에 왔으니,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서 모으면서 노래를 불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하면서 춤을 추면 이것이 대왕을 맞이하면서 기뻐 날뛰는 것이리라.”

구간 등이 그 말대로 즐거이 노래하며 춤추다가 얼마 후 우러러보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늘어져 땅에까지 닿았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을 싼 것이 있었다.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있는데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났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기뻐하며 백 번 절하고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모셔 두고 흩어졌다가 12일쯤 지나 그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남자로 변하였는데, 성스러운 용모를 가졌다. 이어 의자에 앉히고 공손히 하례 하였다.

 

3. 성격 및 주제

 (1) 성격 : 주술적, 집단적, 의식적.
 (2) 명칭 : 영신군가(迎神君歌), 영신가, 「가락국가(駕洛國歌)」.
 (3) 형식 : 4언 4구의 한역시.
 (4) 감상 :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의 강림 신화 속에 삽입된 노래이다. 신에게 소망을 비는 주술적 노래를 통해 우리 민족의 원초적 삶의 모습과 문학의 생성을 알 수 있다.
 (5) 주제 : 새로운 생명(신령스런 임금)의 강림 기원.
 (6)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2, 「기이ㆍ가락국기(駕洛國記)」.

 

 

4. ‘거북’과 ‘머리’의 상징적 의미

(1) 거북은 장수하는 동물로, 신령스런 존재를 상징한다.
 (2) 머리는 우두머리이자 남성 생식기의 모습이다.

5. 다양한 해석

(1)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2)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犧牲舞踊)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3)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적 욕망을 표현한 노래 - 「해가」와 연결해 볼 때,

     원시 주술적 집단 욕망을 노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음.  -- 이하 생략 --

[네이버 지식백과] 구지가 [龜旨歌] (외국인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2010. 1. 29., 도서출판 하우)

 

 

고대시가

향가 이전의 노래로서 구전되다가 한역시의 형태로 후대에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으며

특별한 양식적 모습을 보인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들다. 다만 노래의 내용이 짧고, 양식적인 전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노래가 불린 내역이 함께 전해지고 있어 그 성격을 짐작할 수는 있게 해 준다.

〈구지가〉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전하는데 거북에게 머리를 내놓으라고 위협하는 주술적인 노래이다.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놓아라)
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어서 먹으리.)

 

가락국기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땅을 구르면서 이 노래를 불렀더니 가락국의 시조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구지가〉는 신의 강림을 소망하는 주술적 노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거북이 머리가 남성의 성기와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고, 이 노래를 매개로 하여 사람이 태어났다는 점으로 비추어 볼 때 출산 기원의 노래로 볼 수도 있고,

동요와 비슷한 놀이의 노래로 보기도 한다. 다만 이 노래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해가〉와 노랫말의 짜임이나

그 배경 설화에서 일을 이루어 내는 경위가 유사한 것에 주목해 보면 이 노래는 원시종합예술인 집단 가무와 관련이 있는

주술적인 성격을 가진 무요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해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대시가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청서출판)

 

 

향가

향가는 신라시대에 생겨나 고려 때까지 이어진 노래로 현재 전하는 것은 모두 25수이다. 이 중 14수는 〈삼국유사〉에 전하고 11수는 〈균여전〉에 전하는데, 〈삼국유사〉에 전하는 14수는 내용이 다채로운 반면, 균여전에 전하는 11수는 〈보현시원가〉 한 편으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11수 각각의 노래가 지어진 것이다.

 

향가라는 명칭은 중국 노래에 대한 ‘우리 노래’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인데, 기록에 따르면 향가를 ‘사뇌가’라고도 적고 있어, 향가라는 명칭 대신 사뇌가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사뇌가라는 명칭을 십 구체 향가에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향가 중 십 구체 향가만을 사뇌가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향가의 작자나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향가의 작자를 살펴보면 현전하는 25수의 경우에도 충담사나 월명사와 같은 승려도 있고, 견우노옹과 같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도 있으며 서동처럼 왕족도 있고, 아예 작자가 미상인 경우도 있다. 내용도 기원을 담은 것도 있고, 산화공덕과 관계된 것도 있으며, 서정적인 것도 있고, 노동을 위한 것도 있다.

 

따라서 향가의 양식적인 특성을 살펴보려면 내용이나 작자층 보다는 그 형식이 중요시 되는데, 향가의 형식은 주로 한 작품을 이루는 행수에 따라서 4구체, 8구체, 10구체 향가로 나눈다.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는 4구체 향가이고, 〈처용가〉, 〈모죽지랑가〉는 8구체 향가이며, 〈혜성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원가〉, 〈우적가〉, 〈제망매가〉, 〈원앙생가〉, 〈도천수관음가〉 그리고 〈보현시원가〉 11수는 모두 10구체 향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향가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청서출판)

 

 

삼국유사 [ 三國遺事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로, 삼국시대의 불교 관계 설화, 단군의 고조선 건국 신화, 향가 14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삼국 사기에 빠진 고기(古記)의 기록들을 원형대로 모아 놓은 데에 그 특색과 가치가 있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고려 후기 일연(一然, 1206~1289)의 역사서.

현존 가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판본이다.

조선 전기, 1394년경, 3권 1책, 국보 제306호. 개인 소장. (ⓒ문화재청)

 

*이미지 출처 : 삼국유사 [三國遺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국유사》의 체재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에 <왕력(王曆)> 제1과 <기이(紀異)> 제1을, 권2에 <기이> 제2를, 권3에 <흥법(興法)> 제3과 <탑상(塔像)> 제4를, 권4에 <의해(義解)> 제5를, 권5에 <신주(神呪)> 제6과 <감통(感通)> 제7과 <피은(避隱)> 제8 및 <효선(孝善)> 제9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왕력>은 연표(年表)로서, 난을 다섯으로 갈라 위에 중국의 연대를 표시하고, 아래로 신라·고구려·백제 및 가락(駕洛)의 순으로 배열하였으며, 뒤에는 후삼국(後三國), 즉 신라·후고구려·후백제의 연대도 표시하였는데 《삼국사기》 연표의 경우와는 달리 역대 왕의 출생·즉위·치세(治世)를 비롯하여 기타 주요한 역사적 사실 등을 간단히 기록하고, 저자의 의견도 간간이 덧붙여 놓았다.

 

<기이>편에는 그 제1에 고조선 이하 삼한(三韓)·부여(扶餘)·고구려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여러 고대 국가의 흥망 및 신화·전설·신앙 등에 관한 유사(遺事) 36편을 기록하였고, 제2에는 통일신라시대 문무왕(文武王) 이후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까지의 신라 왕조 기사와 백제·후백제 및 가락국에 관한 약간의 유사 등 25편을 다루고 있다. <흥법>편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 전래의 유래와 고승(高僧)들에 관한 행적을 서술한 7편의 글을, 다음의 <탑상>편에는 사기(寺記)와 탑·불상 등에 얽힌 승전(僧傳) 및 사탑(寺塔)의 유래에 관한 기록을 30편에 나누어 각각 실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국유사 [三國遺事]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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